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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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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流産- 정푸른

  • 기사입력 : 2010-01-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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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산流産- 정푸른

    검은 혓바닥의 커서가 횡으로 늘어진 자궁 안에 웅크리고 있다 전생과 후생이 맞닿아 있다 애를 밴 여자의 엉덩이와 가슴처럼 다른 방향을 향해 부푸는 불룩함이 난산을 숨기고 있다 Back Space키가 지난 시간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Delete키가 미래의 젖꼭지를 빨아 당겨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커서가 깜빡거리는 만큼 나는 육탈하고 있다

    나는 아직 전생의 연(緣)을 찾지 못한 빈문서다

    ☞ 컴퓨터 앞에서 먼저 두 시인을 불러들인다. ‘나는 육탈하고 있다’는 1연의 마지막 구절 때문이다. 고비사막에서 생명체의 피와 살과 가죽을 육탈시켜버린 바람이 연주하는 ‘뼈의 음악’을 독자들에게 선물한 최승호와 빨래판을 육탈한 어머니의 갈비뼈로 본 유종인. 잔잔하면서도 울컥, 하는 순간의 미학을 절창으로 선보인 두 시인과는 이미지의 결이 다르지만 정푸른의 유산 또한 아프게 읽힌다. ‘아직 전생의 연(緣)을 찾지 못한 빈문서’의 시인이 컴퓨터로 부르는 ‘뼈의 음악’이기 때문일까. 그렇다. 어쩌면 모든 생(生)이 뼈의 음악인 줄 모른다. -김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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