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밥- 강희근
- 기사입력 : 2010-02-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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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락원에 가서
노인들 속에 끼여서 노인밥을 먹는다
서너 가지 반찬에 게된장국
잘 단련된 내 입에도 숟가락으로 들어와
제 밭뙈기 이랑인 양 스며드는구나
노인은 입으로부터 오는가
식탁을 사이하고 한끼 에우는 노인들
표정이 등걸에 핀 매화 같다
은퇴와 소외와 정년의 그늘
어깨에서 내려놓은 자리 거기, 맞춤 같은 바겐세일 같은
무위의 안락 하나씩 얹어 놓고
서너 가지 반찬에 게된장국이 성찬이다
노인들 속에 끼여서 노인밥을 먹는다
정년 한 사람처럼
하루의 스케줄 따로 없는 사람처럼
기다려라 노인시설 군데군데 짚어 다니는 사람처럼
어디에나 있는 같은 모양 숟가락 들고
오늘
생애의 물레질, 밥 한끼 에운다
☞ 노인들 속에 끼여서 노인밥을 먹는 이른바 ‘시의 몸’에 눈을 찔린 탓일까. ‘표정이 등걸에 핀 매화 같다’는 시인의 뛰어난 언술에 발목이 잡힌 까닭이라고 슬쩍, 건너뛰려 해도 ‘제 밭뙈기 이랑인 양 스며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은 밥이 아니라 ‘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절 없이, 도대체 어찌할 수 없이 게워내야 할 꽃, 그리하여 ‘어디에나 있는 같은 모양 숟가락 들고’ ‘생애의 물레질, 밥 한끼 에운다’는 이 울림 앞에 어디 한번 울어나 볼까. 문득 몸 바깥으로 여행을 떠난 영혼의 안부가 걱정되는 그런,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2월인데 벌써 봄이 다녀간 듯 그렇게 아픈, 오늘! -김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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