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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0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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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원전 수출에 거는 과학자들의 기대- 조경목(창원 재료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10-03-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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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국가적인 경사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이는 1956년 원자력 발전에 관심을 가진 지 5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리 원자력발전 1호기가 가동된 지 32년 만에 이뤄낸 쾌거이다.

    또 이달 초 한국전력과 터키 국영발전회사(EUAS)가 ‘터키 원전사업 협력 공동선언문’에 최종 합의, 서명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현재 20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고, 설비 용량 기준 세계 6위인 우리나라가 명실공히 원전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로 원전을 수출하기까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많은 과학자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들어갔다. 원전 기자재와 핵연료의 국내 생산 및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 활동이 꽤 오랜 기간 이어졌다.

    과학자들은 원자력을 국산화하기 위해 미국, 독일 등에 파견돼 허드렛일을 하면서 기술을 연마했다. 또 국내에서는 많은 연구비를 들이고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않는다며 포기를 종용하는 눈치를 주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우리나라가 원자력 기술 독립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연구 활동이 아닌, 반드시 이뤄야 할 사명으로 여기고 묵묵히 연구 활동에 전념한 과학자들이 있었기에 원전 수출이라는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부나 국민들로서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어 의미 있을 것이고, 원자력 관련 자재나 부품, 기술 등을 보유한 기업은 하나의 사업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자나 연구자들은 아직 국산화되지 않은 기술들을 국산화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 외에도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원전 수출에 거는 기대가 하나 있다. 바로 과학기술에 대한 인내이다. 이번 원전 수출 사례만 보더라도 1~2년 만에 이뤄낸 성과가 아니다. 몇 십 년을 투자했기에 가능했다. 또 많은 실패에도 끝까지 밀어붙였기에 성공했다.

    지금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대표주자이지만 원자력 기술에 대한 안전성 논란과 투입된 연구비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한때 우리의 손으로 개발된 원자력 기술은 가치가 없다는 말을 들었으며, 과학자들의 사기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때 연구자들을 독려하고 연구 활동에 더욱 매진할 것을 주문하며 실패를 성공의 발판이라 지지한 선배 연구원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원전 수출의 영광은 없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과학기술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고 한 번에 성공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연구자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많은 인내심이 요구된다.

    포스코에서 제조원가를 절감하면서 동시에 친환경적인 파이넥스 공법을 개발하기 위해 자그마치 17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뭐든지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다. 패스트푸드(fast food)에 이어 패스트 패션(fast fashion)까지 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해갈 수 있도록 하는 많은 기술 뒤에는 오랜 시간과 실패를 견딘 ‘인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장 1~2년 만에 성과를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연구 활동을 실시해야 한다. 또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것 역시, 오랜 시간을 두고 투자해야 한다. 즉 어렸을 때부터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뛰어난 연구 성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그 시간 동안 반복되는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도 필요하다. 우리가 과학기술에 대한 조급함을 버릴 때 제2, 제3의 원전 수출 소식이 나올 것이다.

    조경목(창원 재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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