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성자(聖者)- 조오현
- 기사입력 : 2010-05-20 00:00:00
- Tweet
하루라는 오늘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는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聖者)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조오현 스님의 시조다. 흔히 하루살이라고 하면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속성 때문에 ‘무상, 소인배’ 등으로 은유된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하루살이’는 성자를 은유하고 있다. 하루살이가 어떻게 성자가 될 수 있을까? 상상을 뛰어넘는 이 비유는 ‘아득한 성자’가 주목받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뜨는 해도 다 보고/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라는 진술은 우주가 창조되는 순간부터 우주를 마무리하는 찰나까지의 운행 이치를 모두 터득한 하루살이의 하루를 의미한다.
하루살이는 하루 동안 탄생과 성장, 사랑으로 종족을 보존하는 모든 행위를 성취하는 압축적인 삶을 산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가 ‘성자’라는 생각에 이른다.
반면, 수행정진하고 있다는 시적 자아는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나는 살아있지만/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이라는 시적 진술로 미루어 하루살이에서 성자의 모습을 발견한 스님 또한 성자가 아닐까? 우리 범인이야말로 “천년을 산다고 해도/성자는/아득한 하루살이 떼”가 아닌가.
무산 조오현 스님은 밀양 출생이다. 백담사 회주스님으로 ‘만해 축전’을 주도하고 있다.
김연동(시조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