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6일 (목)
전체메뉴

[부모와 함께 보는 그림책] (64) 공부는 왜 하나?(조은수 글·그림/해그림)

실학자들이 말하는 공부의 이유

  • 기사입력 : 2012-05-18 01:00:00
  •   




  • 택배로 날아온 우편물의 포장지를 풀고 ‘공부는 왜 하나?’라는 책 제목을 본 순간, 맞은편에 앉아 이 책 저 책 뒤적거리고 있는 딸에게 “공부는 왜 하니?”라고 물었다.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해야 하니까, 안 하면 안 되니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10년 넘게 교편을 잡고 있는 부부 교사의 딸에게도 공부는 해야만 하는 의무 말고 다른 것은 아니었나 보다. 순간적인 상념에 잠겨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딸은 “내가 더 훌륭해지기 위해서”라는 한마디를 더 보탠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바뀐 건 없다. “엄마가 시켜서” 라던가 “혼나지 않으려고”라는 답변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위안을 삼을 뿐….

    이제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져 본다. 어른이자 선생인 나조차도 별다른 건 없다. “가르치는 애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서”라는 공식적인 답변만 머리에 맴돌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슨 마음을 먹고 ‘공부는 왜 하나?’라는 심오한(?) 말을 표지에 걸었을까? 작가가 믿는 구석은 조선 후기 실학자였다. 좋은 자리를 얻는 도구로 전락한 과거 시험을 과감히 그만두고 실제적이고 근본적인 학문을 들이파던 공부벌레들의 입을 통해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해 나름의 이유를 이야기한다. 장난 삼아 공부한다는 성호 이익, 돈이 돌게 하려고 공부한다는 김육, 책밖에 모르는 바보이기 때문이라는 이덕무, 굴레를 벗기 위해서라는 박제가, 양반이 잘사는 게 기분 나빠서라는 유형원, 의심하기 위해 공부한다는 한백겸, 내가 어디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는 홍대용, 큰 나라가 신경 쓰여 공부한다는 유득공, 선입견을 깨기 위해 공부한다는 박지원, 쓸데없는 공부보다 칼 쓰는 걸 배운 박동수, 남 주기 위해 한다는 정약용 등….

    그들은 실학이라는 공통된 학문을 공부했지만, 저마다 자기만의 이유와 방식으로 다양하게 공부했다. 공부는 각자의 이유와 방법이 있고 공부를 통해 그것을 찾아야 하리라. 그러고 보면 딸이나 내가 들었던 이유도 ‘틀린 말은 아니었구나’라는 위안 아닌 위안도 가능한 것 같다. 작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교류했던 실학자에게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 규격화되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과학 정신이 녹아있는 조선 건축, 특히 창덕궁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매력적인 실학자들을 아름다운 창경궁에 모셔오고자 많은 궁리를 했단다. 궁리 끝에 창경궁을 모태로 하는 나무꾼과 물고기 도서관(실학서당)을 설립하고 실학자들이 와서 공부하게 만들었다. 이런 설정은 꽤 성공적인 것 같다. 콜라주 기법으로 각자의 특징을 비유적으로 잘 살려낸 실학자들의 그림과 단순화된 그림을 오려 붙인 창경궁 배경이 퍽이나 잘 어울린다. 거기에 주인공인 고만두와 뚱보새 캐릭터가 얹어지면서 재미있는 화면이 완성됐다. 그림책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두꺼운 60페이지 가까운 내용과 상당히 많은 글 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있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공부하기에 짜증나고 공부시키기에 지칠 때 아이와 부모가 한자리에 앉아서 읽어 봄직한 책, 그리고 가장 치열했던 시기에 가장 치열하게 공부했던 실학자들의 생각과 삶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해주는 책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추사 김정희가 고만두에게 써 준 實事求是(실사구시)라는 글을 한자로만 적어놓고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알아보라고 숙제까지 내주는 작가의 꼼꼼함에 경의를 표한다.

    강동훈(의령 궁류초 교사)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