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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금지곡- 양영석 문화체육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2-12-0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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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래는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과 의지, 그리고 꿈을 담는 그릇이다. 어깨가 빠지는 고된 노동의 고통도 달래고 죽을 것 같은 실연의 상처도 어루만지는 노랫가락의 신묘한 힘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런데 통제하고 금지하면 그 노래의 힘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군사독재정권이었다.

    ▼1975년 5월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의 부정, 반대, 왜곡, 비방, 개정 및 폐기의 주장이나 청원, 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한다는 내용의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9호 이후 정부는 대중예술의 퇴폐성도 국가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그해 6월 ‘공연활동의 정화대책’을 발표한 후 옛 노래, 최신 노래를 가리지 않고 심의를 실시해 금지곡을 선정한 후 음반까지 폐기하는 강력한 방침을 내렸다. 그 결과 국내가요 222곡을 금지곡으로 선정, 방송국 등 각계에 통보 조치했다.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왜색풍이 강하다고, 신중현의 ‘미인’은 가사가 퇴폐적이라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창법이 저속하다고, 송창식의 ‘왜 불러’는 반말을 한다고, 이장희의 ‘그건 너’는 책임을 남에게 떠넘긴다고 해서 금지곡이 됐다. 그 이면에는 유신체제에 대한 괴로움 호소, 장기집권 및 공약에 대한 불신 조장 등을 막겠다는 꼼수가 숨겨져 있었다.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 킴’은 단신인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황당한 이유로 금지곡 대열에 올랐다.

    ▼우리가 금지곡들을 다시 듣게 된 것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덕분이었다. 그해 8월 18일 문공부의 공연금지 해제조치를 통해 금지곡 186곡이 해금됐고 7080세대의 애창곡이 됐다. 올해는 유신 40주년이며 동시에 제18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이기도 하다. 서슬 퍼렇던 시대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금지곡들처럼 유신의 망령도 죽지 않고 되살아난 것일까. 새 시대를 열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 할 대통령 선거판에서 박정희란 말이 자주 들리니 마음이 편치 않다.

    양영석 문화체육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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