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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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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정조대왕의 왕 노릇- 정옥자(서울대 명예교수)

최고통치자 자리는 누리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힘겹고 고달픈 자리

  • 기사입력 : 2013-01-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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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조 22대 왕 정조대왕은 조선의 스물일곱 명의 임금 중에서도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왕이다. 전기의 세종대왕, 후기의 정조대왕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 그는 어느 사대부 못지않은 방대한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겼다. 다른 임금들도 시문이나 글씨 등 족적을 남겼지만 이렇게 방대한 단독문집을 남긴 이는 정조대왕뿐이다. 또한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만들었듯이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만들었다. 둘 다 인재양성과 문화정치를 위한 싱크탱크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같다. 세종대왕이 형님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는 일이 순탄치 못했음에 견주어 정조대왕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험난했다.

    정조대왕은 11세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는 불행을 당했다. 그는 아버지의 구명을 위해 대신들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아비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호소했지만 결국 그의 아버지는 비명에 갔다. 이 사건은 정조대왕 일생일대의 트라우마가 됐다. 그 이후 그의 생애는 이 사건의 극복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우선 그는 군사(君師)가 되기 위한 고된 훈련에 들어갔다. 조선왕조는 왕들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세자 때는 당연히 서연을, 왕이 되어서도 정사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조강(아침) 주강(낮) 석강(저녁) 세 번이나 경연을 했으니 왕들의 하루는 참으로 고된 것이었다고 하겠다. 그 결과 18세기에 이르면 숙종 영조 등 임금이면서 스승을 자처하는 군사들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17세기 세도(世道)를 담당했던 산림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산림은 17세기 붕당정치의 영수로서 학계와 정계를 아울러 통섭하는 스승 같은 존재였다. 18세기 탕평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학계와 정계를 아우르는 산림의 역할까지 한 군사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할아버지들을 계승해 군사가 되어야 할 운명이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이런 사명에 충실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건까지 겪었기에 그의 분발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신하들을 능가하는 학자가 되기 위해 밤새도록 공부에 열중하고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린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암살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1776년 25세의 청년왕이 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추모의 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요절한 큰아버지 진종(추존)을 계승하는 위차(位次: 왕위계승의 차례)로서 세손으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 계승에서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사라졌고 그에게 사도세자는 사친(私親)에 불과했다. 그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할아버지 영조의 처분은 공정한 천리(天理)의 문제이고 자신이 애통해 하는 것은 인정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규장각을 설치해 문화정치의 산실로 삼았다. 기존의 굳어진 관료체제로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판단이었다. 그곳에서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인재를 양성하면서 문화정책을 추진했다. 경연을 주도해 밤늦도록 신하들과 토론하고, 새로운 시대사상으로 부상하던 북학사상도 수용하여 조선왕조의 개혁과 변화를 유도했다.

    그렇게 정사에 몰두한 지 20년이 경과한 1796년 45세의 장년의 정조대왕은 측근의 신하 김조순에게 “나는 왕 노릇 하기를 즐기지 않았다…나는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 하루가 지나면 마음속에 스스로 말하기를 ‘오늘 하루가 지났구나!’ 하고 이틀이 지나면 역시 그렇게 여기며 하루 이틀 살얼음 밟듯이 20여 년이 되었다”라고 고백했다.

    최고통치자의 자리는 누리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힘겹고 고달픈 자리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언사다. 학자군주 정조대왕이 숙종, 영조에 이어 군사가 돼 탕평정치를 계승 성공시킨 비결이 이 한마디 말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 아닐지 싶다.

    정옥자(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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