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7일 (금)
전체메뉴

[열린포럼]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 산다- 최환호(경남은혜학교 교장)

  • 기사입력 : 2013-02-12 01:00:00
  •   



  •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 (유흥준 ‘사람 쬐기’).

    사람을 일컬어 사회적 동물이라 하는 까닭은 가슴의 훈김을 더불어 쬐어야 살 수 있다는 의미일 터.

    19세기는 신을 죽인 세기요, 20세기는 인간을 죽인 세기다. 그 결과 ‘현대의 인간성은 거대하고 음침한 피라미드 한구석의 말라비틀어진 미라’에 불과하다고 개탄한 것은 에리히 프롬일 터.

    바야흐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버렸는가. 악명 높은 고스트와 악령, 좀비들이 일거에 뛰쳐나온 형국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인, 성폭행, 폭력, 방화 등의 뉴스가 연일 터진다.

    가정과 학교에서 버려진 청소년들이 거리를 헤매며, 혼자 남은 노인들은 외롭게 죽어간다. 한국인의 45%가 ‘나는 하층민’이라 생각하고, 58%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될 대로 되라(QueSeraSera)’는 세상만큼 무서운 지옥이 또 있을까.

    확실한 대비책은 아무리 힘들고 아프더라도 ‘본인 스스로 갖고 있는 도덕성을 재는 저울의 영점을 조절하는 것이다(댄 애리얼리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실존의 제1원칙은 사람이란 스스로 인간성을 형성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음을 쬔다면 모두가 친근한 이웃이요, 마음이 얼어붙으면 모두가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한 70세 거지 노인이 밥도 빌지 못하는 불우한 사람을 먹여 살린 것이 시초가 되어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끼리 상부상조하는 음성의 ‘꽃동네’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 쬐기 발전소가 아닐는지.

    최근 ‘마음가짐에 따라 유전자(DNA)의 좋은 형질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가 있다. 세계적 유전공학자인 무라카미 가즈오는 저서 ‘유전자 혁명’에서 인간에겐 30억 개의 유전자가 있는데, 이 중 5~10%만 작동되고 나머지는 잠자고 있다고 한다. 마음이 신체에 명령해서 실행을 하려면 유전자의 작동이 필요한데, 이때 좋은 유전자를 켜고 나쁜 유전자를 끄면 선행과 나눔을 활기차고 순조롭게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잠자고 있는 90~95%의 유전자를 깨우면 인생을 혁신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로지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一切唯心造).

    점점 사람 쬐기가 숨 가쁘다. 천민자본주의 정글사회에서 사람다운 사람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리라. 두보의 시 “다만 차가운 꽃이 잠깐 향기를 피운다”는 구절처럼, 사람의 향기는 살아온 대로, 마음먹은 대로 저절로 풍겨 나온다. 그 향내는 숨길 수 없기에 멀리 가고 오래 남는다. 꽃향기는 잠시 바람결 따라 떠다니지만 사람의 향기는 마음을 따라 움직인다.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인간을 향해 던지는 엘뤼아르의 통렬한 질타. “인간은 서로 화합하기 위해 태어났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고로 사람 쬐기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부터 보여야 한다. 곧 ‘애인(愛人)’이다. 우리 민족의 경전, 천부경(天符經)에 ‘천지 간 사람이 으뜸이다(人中天地一)’라는 경구가 있다. 유교의 ‘경천애인(敬天愛人)’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와 궤를 같이한다.

    그러니까 “누구든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려고 하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라고 일찍이 시인 존 던이 경책했음을.

    누군가의 죽음은 나의 삶으로, 누군가의 고된 노동과 눈물은 나의 안락한 생활과 기쁨으로 이어져 있음을 깨쳐야 할 터. 아, 그리운 순정이여! 순수여! 타는 목마름이여!

    최환호(경남은혜학교 교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