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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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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류의 무늬 - 정푸른 시인

  • 기사입력 : 2013-05-2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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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류의 무늬



    내 얼굴은 물결의 방향을 본뜬 가면이다

    무늬의 가장자리에 기거하고 있는

    굴곡은 안으로만 유연한 음감을 지니고 있다

    시퍼런 물결을 한 겹씩 벗기면

    품기 좋은 살결을 가진 바다가 와락 들이친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허기를 가지고 사는 건

    수많은 현으로 만들어진 폭우를 소화하는 일

    바다에 빠진 거세된 현들을 이어 표정을 만든다

    패각의 둥근 힘살을 벌려 가늘고 긴 수평선을 베어 물던 날

    세상은 가장 큰 공명통이었다

    시간과 맞바꾼 수평선의 악력은 외로움의 힘이다

    잇몸을 숨기고 벌어지는 입술 사이에 걸쳐진 긴 음계,

    혼자 태어나 굳어지는 고독의 거처를

    얼굴에 숨기고 나는 웃는다 한 겹 덮이는 물결

    투항한 흔적을 지우는 모래처럼

    시간이 음을 버린다 절룩이는 것들이 없는

    바다 한가운데 나는 홀로 기우뚱하다 실핏줄이 당기는

    방향으로 파고는 높아지고 돋을새김으로 올라오는

    비대칭의 자화상

    - 계간 ‘미네르바’ 2012.겨울호


    ☞ 사람마다 성장 과정이 다르고 표정이 다르고 성격과 취미가 다르다.

    시인의 감성에 젖어들면 모든 오감이 예민해진다. 정푸른 시인은 ‘패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시적 상상에 빠진다. 화자는 바쁜 와중에 거울을 보듯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화장을 지우고 ‘가면’을 벗겨 자존심과 온갖 사회적 가식을 벗어 던진다.

    살아가면서 ‘굴곡’ 없이 성장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이 드는 동안 ‘시간과 맞바꾼’ 주름살을 보듯, 생의 주도권은 이미 생활 자체에 넘어가 마음이 가도 어쩌지 못할 때가 있다. 문득 고개를 돌아보니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보이지 않고 ‘홀로 기우뚱’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성과 감성이 ‘비대칭’이고 현실과 이상이 ‘비대칭’인 세상에…. 박우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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