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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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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날의 명상- 황영숙 시인

  • 기사입력 : 2013-05-3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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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린 날의 명상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장갑을 낀 우수가

    베란다의 창밖에

    기대어 있다



    아무래도 나는 오늘

    저 정체 모를 구름 속으로

    걸어가게 될 것 같다



    깊게 일렁이는 슬픔들이

    그윽한 풍경 속으로 젖어들고

    감출 수 없는 마음의 끝 하나

    잡지 못해

    온종일 목이 아프다



    짙은 수묵화처럼

    내려앉은 산기슭에

    구름은 느리게 지나가고

    생의 한가운데를

    숨 가쁘게 날으던 새 한 마리

    오늘은

    조용히 구름 속에 잠긴다

    -시집 ‘은사시나무 숲으로’ 한국문연, 2012


    ☞ 황영숙 시인은 야생화 가꾸기와 등반을 취미생활로 하고 있다. ‘우수’와 ‘슬픔’을 형상화해서 시인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베란다’에 놓인 야생화가 시들어져가는 모습을 보다가 슬픈 감정을 느낀다. 새로운 슬픔은 다른 슬픔에 촉발되어 생겨난다. 시인은 네팔에서 본 셰르파의 신발을, 공원에서 소일하고 있던 노인의 주름진 얼굴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흰머리카락 등의 기억들을 새록새록 떠올린다. 이처럼 기억은 강렬한 체험에 의해 질량을 가진다.

    수많은 사건들이 가슴 속에서 망각되지만 특수한 체험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서 머물다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삶에 투사된다.

    그래서 우리가 살다 보면 특히 슬픈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오랫동안 가슴에 머물고 있지 않을까.박우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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