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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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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분노하지 않으면 또 당할 수밖에 없다- 이순원(소설가)

  • 기사입력 : 2014-05-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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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 하던 일도 어떤 때는 참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하는 칼럼의 주제가 그렇습니다. 저는 국가안전시스템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국가적 차원의 재난방지시스템에 대해서는 더욱 모르고, 선박의 안전운행이라든가 해상사고 대처방법 등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압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우리 사회가, 아니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오랜 기간 동안 마치 무르익히기라도 하듯 준비해온 가장 ‘한국적인 사고’라는 것입니다.

    사고가 있기 얼마 전 이런 농담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어느 날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직감적으로 테러인가 떠올리고, 일본에서는 지진인가 떠올리며, 한국은 부실공사인가 떠올린다는 얘기였습니다. 오래전 성수대교가 그랬고, 삼풍백화점이 그랬으며, 가깝게는 경주리조트 참사가 그랬습니다.

    그냥 농담으로만 받아들이기엔 너무 자조적이고 씁쓰레한 농담은 이제 이렇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떤 건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미국은 여전히 테러를 떠올리고 일본은 지진을 떠올리는데, 한국은 건물이든 배든 비행기든 도로에서든 장소불문하고 어떤 형태로든 사고가 나면 한국인가를 떠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 역시 그렇지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결정적인 사고원인만도 열 가지가 넘지요. 선장이 어떻게 했으면, 승무원들이 어떻게 했으면, 해운회사가 어떻게 했으면, 화물을 어떻게 했으면, 평소 무엇을 어떻게 했으면, 관리감독기관이 어떻게 했으면, 정부가 인허가를 어떻게 했으면, 그렇게 열 가지도 넘는 사고 원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그중에 단 한 가지만이라도 바로잡혀 있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바로 잡혀 있는 것이 없었던 거지요. 모든 것이 ‘늘 해왔던 대로’였습니다. 정부도 늘 해왔던 대로 기업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물배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관리기관도 늘 해왔던 대로 업주와 한통속으로 고물배의 증설을 허락하고, 탐욕스러운 회사 역시 늘 해왔던 대로 이윤만 앞세워 안전을 뒷전으로 내팽개치고, 선장과 승무원 역시 늘 해왔던 대로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던 거지요.

    누군가 ‘한국적인 사고’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대형사고는 늘 있어 왔던 것처럼 필연적으로 터질 수밖에 없고,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만 그때그때 자신의 불운으로 그 사고에 선택된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똑같은 사고가 똑같은 방식으로 터지는 걸까요. 국가가 관리를 허술하게 하고 방비를 허술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나라의 주인으로 국민은 책임이 없는 건가요. 이제까지 사고 때마다 내가 당한 사고가 아니니까, 나와 내 가족은 운 좋게 그 사고에서 벗어나고 피했으니까, 국민들 역시 늘 해왔던 대로 그걸 남의 일처럼 여겨 왔던 것이지요.

    성수대교 붕괴 때 우리가 정말 그것을 나와 내 가족의 일처럼 분노했더라면 뒤이어 일어난 삼풍 사고와 씨랜드 사고, 그리고 얼마 전 경주리조트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21년 전 292명의 생때 같은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사고 때 역시 우리가 늘 해왔던 대로 그것을 내 일이 아니라며 가슴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 온갖 부정과 부실에 대해 국민의 이름으로 분노했다면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방송도 신문도 치유라는 말 함부로 꺼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치유가 아니라 우리 삶을 흔들고 나라를 흔들 듯 제대로 분노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늘 해왔던 대로 분노하지 않으면 절대 고쳐지지 않고, 고쳐지지 않으면 다시 터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고에 다음 차례로 나와 내 가족이 선택됩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분노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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