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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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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에 오른 월급쟁이 이야기 (7) 웃는 듯 거칠게 호흡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 미친 짓이다 … 그럼에도 가야만 한다
마지막 등반 전 라마제단에 엎드렸다
이제 시·공간은 내 영역이 아니다

  • 기사입력 : 2016-03-0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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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달 만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무표정하게 보다가 웃어 보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했다가 결국 표정 없이 한참을 본다. 흉했다. 안 그래도 굵은 입술은 부르트고 터져서 군데군데 피가 말라 있다. 코는 직사광에 타버렸고 얼굴은 만년설에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다. 여기저기 껍질이 일어나고, 거칠다. 손톱 사이의 더러운 때, 추위에 불어터진 눈두덩이, 봐 줄 수 없는 몰골이다. 허벅지는 팔뚝 크기로 가늘어져 있고 피부는 노인처럼 주름지고 늘어져 있다. 내 몸에 살아 있는 것이라곤 심장뿐인 것 같다. 그랬다. 심장, 저 큰 산이 내 심장을 갈수록 뛰게 한다. 활짝 웃어 보였더니 부르터진 입술 사이로 드러난 치아는 유난히 하얗다. 마지막 배낭을 꾸려라.

    에베레스트 등반은 캠프와 캠프 사이를 지겹도록 오르내린다.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인간의 몸을 고산에 서서히 맞춰가는데 이른바 극지법 등반이라 부른다. 고산등반의 고전적 방식이다. 이와는 달리 고소 적응 기간을 따로 두지 않고 단번에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알파인 스타일이 있다. 우리 팀은 극지법을 채택했다. 우리가 오른 에베레스트 남동릉 루트는 총 4개의 캠프가 있다. 캠프1을 올랐다가 다시 베이스캠프로 하산하고 다시 캠프2, 캠프3을 오르내리는 일을 한 달여간 반복한다. 이후 고소에 대한 적응이 대체로 끝났다고 판단되면 후방(베이스캠프 아래)으로 완전히 후퇴해 체력과 의지를 재충전해 단번에 정상까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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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옐로 밴드를 등반 중인 원정대. 옐로 밴드는 캠프3과 캠프4 사이에 있는 바위지대, 난도가 높은 구간이다.

    우리는 이틀간의 재충전을 끝내고 마지막 등반을 위해 베이스캠프로 다시 입성했다. 캠프1을 생략하고 곧장 캠프2로 가로지를 것이다. 날씨 정보에 더욱 예민해지고 베이스캠프에 운집한 각국 원정대의 정보를 수집한다. 모두들 비장하다. 후회는 없다. 마지막 등반에서 신을 새 양말은 침낭포켓에 넣어 두었고 뜨거운 물을 수통에 받아 놓았다. 정상에 가져가 함께 찍을 가족 사진과 라마제단에 걸린 각종 깃발을 챙겼다. 새 내복을 입고 고글을 배낭 헤드에 넣었다. 여벌 옷가지와 우모복을 챙기고 아이젠과 낮 동안 잘 말린 삼중화는 텐트 옆에 고이 두었다. 애써 특별하지 않으려 애썼다. 후회는 없다.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간다. “나는 셀파다. 나는 셀파다. 나는 셀파다….”

    날이 밝았다. 날씨는 쾌청하다. 몸도 가볍다. 태풍의 부동의 중심에 있는 기분이다. 에베레스트 정상부에 갓을 쓴 것처럼 버섯구름이 선명하다. 신의 현현(顯現)일까. 출발 전 라마제단에 엎드렸다. 부끄럽지 않은 등반을 하겠노라 길게 고했다. 베이스캠프에 남아 등반을 총지휘할 원정대장님과는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 서로가 굳은 표정에 뜨겁고 짤막한 포옹을 했다. 출발이다. 8시간이 족히 넘어 걸리던 캠프1까지를 5시간 만에 주파한다. 모두들 체력은 바닥이지만 정신력 하나만큼은 베스트다. 곧장 캠프2로 달렸다. 2시간여 만에 캠프2에 도착한다.(처음 캠프1에서 캠프2로 오를 땐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 다음 날 원정대는 쉬지 않고 캠프3으로 진출했다. 여전히 먹는 것은 곤욕이다. 오직 스프만 삼킬 수 있었다. 욕심이 목숨을 앗아가는 장면을 무수히 보아 왔다. 이제부터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기로 한다. 나에게 혹시 모를 위험이 닥치면 미련 없이 돌아설 것이다. 날씨가 썩 좋진 않다. 밖에 나가 오줌을 누는데 오줌이 수평으로 날아갔다.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혔다.

    자고 일어나 캠프4(8000m)로 향했다. 이 시간 이후의 시·공간은 내 영역이 아니다. 최선을 다했으니 될 대로 되라.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높이를 경신하지만 죽음의 위험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야만 하는 길이다. 길은 가는 자의 몫이라 하지 않았나. 희뿌연 고글 너머로 까마득한 만년설이 보인다. 이리저리 불어 젖히는 눈보라가 길을 지우지만 사자의 아가리에 머리를 처넣듯 한 발 한 발 오른다. 산소마스크를 쓰면 갑갑함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미칠 것 같다. 그러나 쓰지 않으면 죽는다. 죽는 것보다 미치는 편을 택한다. 불편한 호흡으로 수직의 암벽을 오르고 또 오른다. 오르는 발 디딤은 천근만근이어서 누군가 붙잡고 놓지 않는 듯하다. 이내 체력은 바닥을 보인다. 답답함은 Yellow band(캠프4와 캠프3 중간지점에 있는 바위지대. 노란색 지층이 만년설 밖으로 노출돼 있는데 이 지역은 경사가 급하고 바위와 눈이 혼합된 구간으로 체력소모가 극심하다) 직전 극에 달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미친 짓이었다. ‘이건 미친 짓이다’를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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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스캠프 앞 라마제단에 걸린 깃발, 마지막 등반에 모두 가져간다.

    캠프4로 가는 중에 셀파 서너 사람이 모여 있다. 가지런히 누워있는 한 등반가의 시신을 앞에 놓고 운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로체(8516m, 세계 4위봉) 등반 중 대(大)설벽에서 추락했다고 한다. 돌돌 말려 있는 옷가지 사이로 허옇게 드러난 얼굴을 보았고 나는 곧 그를 기억해냈다. 일주일 전 베이스캠프에서 그를 만났다. 그와 날씨에 대해 몇 마디를 나눴고 그의 가족과 그가 사는 마을에 대해 물었다. 서로에게 건투를 빌었고 장난끼 섞으며 주먹을 맞대었었다. 강단 있었고 참으로 강한 사내였다. 그리고 오늘, 주검이 된 그를 보았다. 두려움이 엄습할 새 없이, 나는 아… 한마디를 토해내고 힘없이 무릎 꿇었다. 잘 가시라. 그의 영면을 비는 것도 잠시, 동료 등반가의 주검을 앞에 두고 내 호흡이 흐트러질까 노심초사한다. 그의 주검에 엎드려 절을 해줄 힘도 없다. 죽음 앞에 내 걱정만 한다는 부끄러움조차 이젠 남지 않았다. 나는 비열했지만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두렵고 부럽다. 느닷없이 여기 모든 사람이 미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거지 같은 에베레스트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

    미친 짓은 끝나지 않았다. 캠프4를 가기 위해서는 직전에 시커먼 바위 암벽(제네바 스퍼)을 넘어야 한다. 처음 겪는 호흡통에 가슴이 조여온다. 마음 속으로 욕을 4절까지 부른 뒤 South Col(캠프4 지역, 에베레스트와 로체 사이의 넓은 안부, 이곳에서 원정대들은 마지막 캠프를 설치하고 정상등정을 기다린다. 바람이 평균 44m/s 속도로 분다. 2003년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의 중심 강풍과 맞먹는다)에 다다랐다. 나는 타 대원들에 비해 캠프4 도착이 두세 시간 늦었다. 원래 계획은 캠프4 도착 직후 4시간여를 쉬었다가 곧바로 밤 8시경 정상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었다. 만약 날씨가 좋아 오늘 곧바로 정상 공격을 감행한다면 지금 내 체력으로는 오르지 못할 것이다. 수술한 왼쪽 발목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있고, 눈은 설맹 초기 단계라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다. 오르는 동안 화이트아웃으로 인해 눈앞의 스텝이 보이지 않아 쓰고 있는 고글을 썼다 벗었다 했더니 곧바로 설맹 증세가 시작됐다. 고소 증세도 심각해져 간다. 최악의 상태다. 이대로라면 등정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저녁 8시, 원정대는 정상을 향해 출발하려 했으나 텐트를 찢을 것 같은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댄다. 캠프4에 운집한 원정대들은 텐트 안에서 죽은 듯이 꼼짝을 않는다. 고도 8000m에서 하루를 대기하는 것은 휴식이 아니라 서서히 죽는 일이다. 이곳은 체류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하지만 물러설 수도 등반을 강행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고민 끝에 원정대는 캠프4에서 하루를 더 대기한 후 등정을 시도하기로 결정한다. 만약 내일도 날씨가 좋지 않다면 철수해야 한다. 오직 신이 결정할 일이다. 테라마이신을 눈에 떡칠하듯 발랐다. 등반대장님이 건넨 비아그라 한 알도 급하게 털어 넣었다. 기온은 영하 40~50도. 텐트 안인데도 몸이 떨렸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희박한 산소와 낮은 기압. 8000m 캠프4 지역은 만년설도 날려버리는 강풍이 하루 종일 불어댄다. 종일 먹은 거라곤 멀건 스프와 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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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바 스퍼. 1952년 스위스 원정대에서 처음 돌파해 명명했다.


    그럼에도 대책 없이 나오려는 똥을 마다하지 못했다. 다들 말렸지만 나조차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피켈(얼음도끼)을 한 손에 꼭 쥐고 심호흡 크게 하고 나갔다. 난생처음의 강풍에 텐트를 나서자마자 얻어 맞고 주저앉았다. 상상 이상이었다. 몸을 지탱하려 피켈을 땅에 박았는데 똥을 누기도 전에 숨이 차기 시작했다. 바보같이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왔고 더 심각한 건 맞바람 방향으로 앉았다. 엉덩이와 그곳 감각이 사라졌지만 똥 누다 죽긴 싫었는지 본론은 얼른 진행됐다. 이제 나는 지구별 어느 곳에서도 똥을 눌 수 있는 인간이 됐다. 정상공격을 앞두고 긴장이 극에 달한 대원들은 오랜만에 얼굴을 무너뜨리며 웃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8000m에서 바라보는 붉은 황혼. 붉고 푸른 전리층의 전쟁, 천둥같이 각인된 붉은 아름다움. 지구가 숨겨 놓았다 생각했다. 조물주가 혼자 즐기는 비경을 인간이 보았다 생각했다. 죽어도 좋으리.

    날씨가 다시 좋아졌다. 오후 8시를 갓 넘기자 벽래형(등반대장)은 정상공격을 명령했다. 우리는 득달같이 텐트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두운 밤, 벽래형은 출발 직전 마지막 영상 기록을 남긴 뒤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재용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오를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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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재용(STX조선해양 혁신추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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