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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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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을 찾아서] (2) 자영업자 공정배·이경미씨의 워라밸

“삶의 가치 확실히 한다면 자영업도 균형찾기 가능”

  • 기사입력 : 2019-01-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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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맞추기 위한 노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감지된다. 최근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육아휴직 장려 등의 문화가 더디지만 서서히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에게는 조금 먼 얘기로 들린다. 현장에서는 ‘몰라서 안 하는 사람이 있나?’는 반문이 나올 정도다. 이들은 일하는 시간이 곧 이윤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일을 놓으려고 해도 쉽사리 놓지 못한다.

    여기에 일보다는 삶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커피집이 있다. 김해 대청천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지고잉(Easygoing) 커피하우스’다. 은은한 커피 향이 풍겨 나오는 것은 여타 커피집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곳의 영업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저녁 매출의 피크(Peak) 시간을 잡기 위해 밤 11시까지 문을 여는 가게들과는 사뭇 다르다. 저녁 6시부터는 오롯이 가족들의 시간을 가진다는 이지고잉 커피하우스의 부부 사장님, 공정배(43)씨와 이경미(40)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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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배·이경미 부부가 김해시 대청동 이지고잉 커피하우스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커피는 커피다워야 한다’는 야무진 자신감을 가진 공씨 부부지만 처음부터 커피에 푹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공씨는 대학 졸업 후 도내 한 조선업체 영업파트에 공채 1기로 입사한 ‘영업맨’이었다. 조선업 경기도 좋았던 터라 실적도 좋았고, 그만큼 승진도 빨랐다. 회사 생활하며 결혼도 했고 3명의 자녀도 낳았다. 고마운 직장이었다. 켜켜이 호봉은 쌓여 갔지만 회의감도 몰려왔다.

    “차장까지 올라가면서 일이 점점 재미있었어요. 밤 10시까지 야근을 밥 먹듯이 했죠. 가족이 생기면서 회사의 소중함도 커지는 반면 회의감도 느껴졌어요. 직급이 높아질수록 저의 의견은 배제되고 조직에 맞춰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죠. 부장 승진을 앞두고 회사를 떠났어요. 더 앉아 있다가는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퇴사 후 치킨도 튀겨 봤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해 시골 땅을 보러도 다녀봤다. 커피집을 염두에 둔 것은 퇴사 후 2년 6개월이 지나서다. 해외 영업을 하면서 세계 각국의 커피를 마셔 봤던 것이 계기였다.

    ‘이지고잉 커피하우스’의 상호에서 공씨 부부의 지향점이 묻어난다. ‘Easygoing’은 직역하는 대로 ‘쉽게 간다’는 뜻이 아니다. 영어권에서는 사람들의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로 느긋하다는 말이다. 지난 2016년 커피집을 운영할 당시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기로 했지만, 손님들의 요청에 현재의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십분 양보했다. 주변에서는 ‘먹고살 만하니 저렇게 일찍 마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려온다. 그러나 공씨 부부는 아파트를 판 조금의 돈에 큰 은행 대출을 얹어 마련한 커피집이라 검소하게 생활해도 좀처럼 대출이 줄지 않는다고 웃으며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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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배·이경미 부부. /성승건 기자/

    “물론 11시까지 영업하면서 이윤을 조금 더 남길 수는 있어요. 우리나라 커피문화는 식후에 커피를 마시는 경향이 있어 6시 이후에 상당 부분 매출을 올릴 수 있어요. 단골 손님들도 영업시간을 연장하기를 바라고요. 그렇지만 가족들과의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상실감이 큰 것 같아요.”

    오후 6시부터는 오롯이 공씨네 가족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저녁 피크타임을 잃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더 많다. 독서, 운동, 휴식, 커피 연구 등 많은 활동이 이어지지만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가족과의 저녁 식사와 자녀들의 교육지도다. 공씨 부부에게는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과 1학년 3명의 자녀가 있다. 3명 모두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학교 교과에서 부족한 부분은 공씨와 아내가 번갈아 가며 자녀들의 학습을 돕는다. 한 달 교육비는 도서관 수업에 들어가는 5만원이 전부다. 공씨 부부는 자녀들에게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가치 있는 목표로, 일 이외의 시간을 자녀 교육에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다른 학부모들을 만나면 조금 흔들릴 때도 있지만, 자녀들에게 스스로의 공부법을 찾아준다는 원칙만은 변함이 없다.

    이경미씨는 “커피집을 하기 전에는 시립 어린이집 교사였어요. 주변에서는 ‘니 애를 키우라’는 조언이 많았죠. 아이들의 과제를 지도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 큰 장점이에요. 아빠, 엄마가 인생을 살아보니 성적이 무언가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자녀들 성적이 뛰어나지 않지만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게 목표예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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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씨 부부는 커피집을 열면서 하나의 원칙을 정했다. 1년에 두 번, 해외로 커피 탐방을 가는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금전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더 좋은 커피를 손님들에게 내놓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커피 탐방으로 가게 문을 닫는 날에는 매출의 90%를 올려주는 단골 손님들의 항의가 거세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커피는 커피다워야 한다’는 나름의 철학을 손님들도 이해해 주기 시작했다. 지난 2016년 문을 연 이후 커피 소비의 선진국인 호주, 커피문화가 일찍 자리 잡은 타이베이, 이탈리아, 일본 등지를 다녀왔다.

    공씨는 “커피의 맛과 질이 더 훌륭한 커피숍을 찾아내기 쉽지 않아요. 커피 머신의 성능도 향상되고 다들 좋은 원두를 쓰면서 커피 맛은 상향 평준화됐다고 생각해요. 이제 커피 맛을 결정하는 것은 주인의 정성과 기술, 즉 인적 요소예요. 그 부분에 투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하루 11시간만 일하면 쫄딱 망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워라밸은 쉽사리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나 삶의 가치관을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 나갈 수 있다고 공씨는 조심스레 조언했다.

    그는 “워라밸, 단순히 일과 그 이외의 시간을 구분 짓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곧 생계와 직결되는 자영업자들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죠. 그렇지만 일 외의 시간 가운데 인생에서 더 가치 있는 목표를 생각해본다면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 가족들의 시간과 아이들의 교육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박기원 기자 pk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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