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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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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맹모(孟母)와 신사임당- 허만복(전 경남교육삼락회장)

  • 기사입력 : 2021-03-10 2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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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자(孟子)는 편모슬하에 자녀교육의 귀감이 되는 어머니 밑에서 훌륭하게 자랐고 이이 율곡은 우리나라의 대표 여성상으로서 신언서판을 겸비한 신사임당의 3남으로 자라 조선의 대유학자로 유명하다.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로서 7남매와 남편의 과거시험을 위해 온갖 정성을 쏟았지만 일곱 자식들은 훌륭하게 키워도 남편의 교육 뒷바라지는 자식 농사만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어린 맹자의 참다운 교육을 위해 힘을 쏟았다. 처음 살던 집이 공동묘지 근처였는데 맹자는 틈만 있으면 무덤 파는 인부 흉내만 내며 노는 것을 보고 맹모는 자식의 앞날을 생각해서 시장 근처로 이사를 했다. 이번에는 장사꾼의 여러 가지 모습을 흉내는 것을 보고 아니다 싶어 세 번째 이사를 한 곳이 학교 근처였다. 그러자 맹자가 학교놀이를 즐기는 것을 보고 그제야 맹모는 마음을 놓았다고 했다. 그처럼 자식교육에 신경을 쓴 맹모는 분명히 휼륭한 어머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맹자의 어머니는 나무랄 데 없는 어머니였을까? 우선 장사꾼을 나쁘게 생각한 자체가 요즘의 사고와 맞지 않다. 그리고 어린이 교육에 중요한 것은 개성과 생활 환경이다. 옛날의 무덤 근처가 교육에 나쁘다고 해서 이사를 한 것은 분명히 옳은 일이지만 기왕 이사하기를 정했다면 좀 더 신중해야 할 텐데 경박했거나 생각이 모자랐다고 할 수 있다.

    율곡은 파주에서 태어나 강릉에서 자라면서 어머니 신사임당 밑에서 뛰어난 재능과 예술가의 재질을 배웠다. 신사임당을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꼽고 있지만 현재 고액권의 모델로 정할 때 여성계에서는 신사임당을 가부장적 여성상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거부한 에피소드도 있고, 모자간에 지폐의 모델이 된 것도 세계적으로 희소한 일이다. 신사임당은 7남매들을 잘 키워 그중 율곡은 재능이 아주 뛰어나 아홉 번이나 과거에 장원 급제하였으나 남편은 자기보다 모든 능력이 모자라 10년 동안 별거를 하면서 학업을 증진하기로 약속을 하고 한양으로 유학을 보냈지만 3번이나 수학을 포기하고 되돌아오자 신사임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다. 남편은 하는 수없이 학업을 계속하여 겨우 뜻을 이루어 하급관직으로 평범한 관리로 생을 마감했다.

    맹모와 신사임당의 일화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점은 교육을 위해서는 무턱대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주관대로 해서는 안되며, 잘못된 점의 원인을 알고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의 정치나 교육 그리고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으면 맹모와 같이 이사만 가게 되고 신사임당처럼 7남매는 잘 키웠지만 학업능력과 신념이 없는 남편을 세 번이나 낙향하게 하여 마음의 상처만 남게 하였다.

    특히 교육이나 학생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므로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여야 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원격수업, 격일제수업, 방과후수업, 비대면수업 등이 학생들의 인성, 사회성, 전인교육과 학력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로는 환산할 수 없다. 위정자나 교육관계자들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의 공통분모를 찾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 교육을 심각하게 재고하고 우려해야 할 것이다.

    허만복(전 경남교육삼락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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