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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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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도 사람이 산다 (16)시즌Ⅲ 도시재생 ⓛ 밀양 진장마을 '미리미동국'

빈집이 예술 플랫폼으로… 지역예술인·주민이 만든 작은 기적

  • 기사입력 : 2021-08-14 08: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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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기획-경남에도 사람이 산다’는 각 지역에 맞는 분야별 정책을 발굴하는 공동체를 소개한 시즌Ⅰ, 각 지역에서 크고 작은 움직임을 통해 삶의 방식을 정립해나가는 이들을 소개한 시즌Ⅱ에 이어 시즌III을 통해 오래되고 쇠퇴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이들과 이들이 만들어나가는 공간을 소개한다.

    밀양 진장 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 모습./밀양시문화도시센터/
    밀양 진장 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 모습./밀양시문화도시센터/

    밀양 영남루 앞 밀양강 둑을 따라 영남루를 등지고 카페거리를 따라 2분 남짓 느긋하게 걸어가면 난간 하나가 나온다. 이 난간을 건너면 망루가 세워진 낡은 주택 옥상이 나타나고,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집 여러 채가 안마당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다. 버려져 낡은 빈집 6채를 손보고 연결해 만든 진장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이다. 미리미동국은 밀양의 원도심인 진장마을의 빈집들을 활용해 만든 밀양의 문화예술거점이자, 도시재생에 문화예술을 접목한 ‘문화적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밀양 진장 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 외관./밀양시 문화도시센터/
    밀양 진장 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 외관./밀양시 문화도시센터/

    ◇군사들이 진을 친 곳·물이 자주 든 ‘진장(陣場)’= 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이 자리잡은 내이동 내이1통과 7통 지역 내 ‘진장’은 조선시대 포, 조총부대인 별포군이 주둔하던 곳, 즉 군사들이 진을 치던 장소였다는 데에서 이름이 생겼다. 밀양부 관아에 속한 별포군의 주둔지가 현재 한국전기연구원 밀양나노센터와 국립식량과학원 기능성작물부 부근인데, 당시 제방이 없었던 이곳은 강변이 마치 넓은 운동장 같이 되어 군사 훈련장으로 삼기 안성맞춤이었다고 한다. 미리미동국 안내판이 붙은 주택 옥상에 망루(망을 보기 위해 세운 높은 다락집)가 세워져 있는 것도 이 지명의 유래를 살린 것이다.

    별포군이 진을 친 곳이라는 데서 이름 붙어졌다는 설 외에도 밀양 사람들은 물이 자주 들어 질퍽한 땅이 되어서 진장이란 지명이 붙었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이곳은 1959년 9월 사하라 태풍으로 강물이 불어나 가축들과 집이 강물에 둥둥 떠내려 왔고, 홍수가 자주 져서 사람들도 가끔 물에 떠내려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장 남자들은 강물에 인간 띠를 만들어 사람을 구조했다는 무용담도 전해져 오고, 사하라 태풍 당시 구호품으로 받은 하늘색 모포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노인들도 있다고 한다.

    지난 12일 오후 밀양 진장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 내 야외공연장에서 '청춘 마이크' 비대면 공연이 열리고 있다./밀양시 문화도시센터/
    지난 12일 오후 밀양 진장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 내 야외공연장에서 '청춘 마이크' 비대면 공연이 열리고 있다./밀양시 문화도시센터/

    ◇원도심 공동화로 곳곳엔 빈집= 오랜 홍수로 살림이 곤궁해지고 삶이 피폐해지기를 반복한 가운데서도 삶을 악착같이 살아낸 탓에 진장은 밀양에서도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이 유별난 곳이기도 하다. 물난리 속에서도 식수는 귀해 1960~1970년대엔 전신전화국과 밀양고등학교 담 사이 골목엔 공동 우물이 있어 물을 길렀다고 한다. 진장은 또 1970~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올라온 밀양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취와 하숙을 많이 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장마을은 공공시설 이전 등으로 원도심 공동화가 급격히 진행된 이후 최근까지 쇠락의 길을 걸었다. 특히 1924년 밀양공립농잠학교 때부터 자리를 지켜오며 학생수 6600여명에 달했던 밀양대가 지난 2006년 부산대에 통합되고 내이동 캠퍼스가 사라지면서 밀양 원도심은 끝모를 침체에 빠지게 됐다. 1970년대 20만명에 육박했던 밀양의 인구도 지난해 10월 10만4000명으로 반토막 났다. 비가 오면 홍수가 잘 나고 제대로 배수가 안돼 지명 그대로 ‘질퍽한 동네’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어느새 굳어졌다.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고, 강둑 아래 곳곳에 어둡고 습한 빈집이 생겨났다.

    원도심 공동화로 마을 곳곳 빈집
    공공시설 이전 등으로 급격히 쇠락
    비 오면 ‘질퍽한 동네’ 오명 굳어져

    ?지역주민·예술가·행정 의기투합
    정부 도시재생 선정, 개발 본격화
    유휴공간 문제 함께 고민하고 해결
    빈집 6채 연결 ‘미리미동국’ 만들어

    ?예술가 모이니 마을이 살아났다
    작가 20여명 작품활동, 체험·공연도
    주변에 카페·음식점 들어서며 활기
    청년공유공간·창업공간 조성 예정

    ◇마을재생과 문화예술 접목 시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원도심 공동화에 맞서 주민과 행정이 배수진을 치기 시작했다.

    밀양시는 지난 2019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인 ‘문화적 도시 재생사업’에 ‘진장거리 문화예술의 진을 치다’라는 사업명으로 응모해 선정됐다. 이 사업은 쇠퇴 지역 내 공공이용이 가능한 공간에 시민과 소통하는 사회적 문화활동 등으로 지역 활성화와 문화적 장소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다.

    진장 마을 주민들도 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같은 해 자발적으로 ‘밀양 진장 문화·예술의 거리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사업의 추진 주체인 밀양시문화도시센터는 주민, 지역예술가와 함께 노후한 빈집과 빈 상가 등을 예술인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진장둑 해천 야외무대에서 진장1길 카페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은 마을 역사와 주민들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벽화로 꾸며나갔다. 밀양시 문화도시센터는 마을의 재생을 희망한 주민들과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하나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도맡았다.
    의기투합한 민관은 진장 안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다. 방치된 각각의 빈집을 하나로 연결해 생명력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밀양 진장 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 외관./밀양시 문화도시센터/
    밀양 진장 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 외관./밀양시 문화도시센터/

    ◇부활의 신호탄 ‘미리미동국’=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미리미동국’이다. 빈집 6채를 5년 간 무상으로 임대 받아 지역예술인 작업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미리미동국은 3세기 무렵 밀양 지역에 존재했던 삼한시대 변한의 12국 중 하나였던 나라의 이름으로 철이 풍부해 철제 농기구로 벼농사를 짓고 기름진 땅에 마, 뽕나무를 심어 풍요를 누리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미리는 우리말 ‘미리’, ‘밀’의 한자 표기이고, 미동은 ‘물둑’이라는 뜻이다. 과거에 밀양을 ‘미리벌’이라고 불렀다.

    지난 12일 찾은 미리미동국은 집 6채의 10개의 방과 공유 전시공간으로 구성돼 있었다. 밀양의 옛 지명으로 이름 붙인 밀주관, 밀성관, 추화관, 미리벌관으로 나뉘어져 공간마다의 특색이 느껴지면서도 빈집과 빈집을 ‘인트로 로드’로 구축해 옥외공간 하나의 갤러리로 통일감도 갖췄다. 굳이 출입구를 찾지 않고도 진장둑에서 바로 미리미동국까지 진입할 수 있도록 만든 옥상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안마당 중앙에는 시민동아리들의 버스킹 공연이 열릴 수 있는 공간도 자리하고 있다.

    전시와 판매를 겸하고 있는 미리미동국 내 각 전시공간은 학생·일반인의 체험학습터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현재 4개 관에 도예, 금속, 천연염색, 캘리그라피, 원예, 평면작업, 가죽공예, 전통자수 등 각 분야 작가들 20여명이 한 곳에 어울려 있다.

    미리미동국에서 만난 김은아 밀양시 문화도시센터 본부장은 “사업추진 초기에는 빈집들이 거의 폐품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라 청소하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는데, 사업비가 부족해 지역 예술인 일당까지 줄여가며 예산을 아껴야만 했다”며 “어렵게 완성된 미리미동국이 밀양 문화와 예술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전국 지자체와 문화기획자들로부터도 성공 사례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밀양 진장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에서 작가들이 작업활동을 하고 있다./도영진 기자/
    밀양 진장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에서 작가들이 작업활동을 하고 있다./도영진 기자/

    ◇성공 열쇠는 ‘주민·예술가 참여’= 미리미동국이 들어서면서 창작 공간이 부족한 지역예술인들은 작업공간을 갖게 됐고, 더불어 수익도 창출할 수 있게 됐으며, 쇠락한 마을 주변에는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는 등 침체한 지역 경기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됐다.

    흉물스럽게 남아 있던 빈집들이 살아 숨 쉬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변하자 주민들도 크게 호응했고, 이는 곧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다른 지역의 도시재생과 미리미동국의 차별화된 특징은 무엇일까?
    김 본부장도 주민 의지와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참여라고 힘줘 말한다. 주민과 예술가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책임성과 창의성이 버무려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진장 주민들이 지역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사업을 함께 펼쳐 나가는 것은 물론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며 “이때까지의 문화사업이 공연과 전시를 하는 예술가가 중심에 있었고, 도시재생은 공간을 짓는데만 집중해왔다”며 “문화예술과 도시 재생을 접목한 문화적 도시재생은 주민들이 지역의 문제를 직접 찾아 해결하는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해 유휴공간의 문제를 문화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라 더욱 민주적이다”고 강조했다.

    장병수 밀양시 문화도시센터장도 “주민들이 문화를 통해 마을이 재생되는 것을 스스로 학습하니 자발적으로 나서 진장마을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리미동국은 전시, 체험 공간에 더해 청년공유공간과 창업공간도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받아 조성하고 있다.

    장 센터장은 “빈집들의 공간의 기억을 담은 채 도시를 재생하는 것은 로컬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며 “미리미동국 주변 진장마을의 기억과 재생이 밀양 곳곳에 퍼져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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