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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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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초심-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 기사입력 : 2021-11-24 20: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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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선전담 변호사로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맡은 사건이었다. 죄명은 야간건조물 침입절도죄였는데, 20대 초반인 피고인이 대학 컴퓨터실에 들어가서 컴퓨터 1대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 기소 요지였다. 그런데 피고인을 만나 보니 절대 자신은 컴퓨터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기록을 살펴보니 증거로는 현장 CCTV가 있었는데, 컴퓨터 실 내부가 아닌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CCTV 영상에 의하면 피고인이 들어갈 때 옆으로 메고 들어간 큰 가방이 컴퓨터실에서 나올 때는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여기에 대해 피고인은 컴퓨터실에서 자신의 전공과목 책과 다른 물품들을 챙겨 나왔을 뿐이라고 했다. 또한 피고인은 컴퓨터가 그 시각이 아닌 다른 시각에 절취되었을 수도 있고 내부인의 소행일 수도 있다며 거듭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피고인의 변소도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야간건조물 침입절도죄 자체가 죄명이 무거워서 법정형으로 벌금형은 없었기에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거나 아님 집행유예로 선처를 받는 것밖에는 되지 않았다. 당시 변호인으로서 중한 결과가 우려되어서 피고인에게 벌금형이 없는 중죄이기에 유죄라고 판단되면 법정 구속이 될 수도 있다며 시인할 것을 권해보기도 하였지만, 피고인은 하지도 않은 절도를 시인할 수는 없다며 그 입장이 확고했다. 결국 가방 안에 전공 서적을 비롯한 물품을 넣고 그걸 메고 있는 피고인의 사진까지 촬영해가며 열심히 무죄 변론을 하였지만, 결과는 유죄였고 더 나아가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이 되어버렸다. 사실 피해 물품이 컴퓨터 1대뿐이라는 점에서 법정 구속이란 결과는 나에게도 충격이었고 진심으로 좀 더 강하게 피고인을 설득해서 시인을 시켰어야 했었나는 후회도 되었다.

    그리고 변호사로서 10년이 넘어 최근에 맡은 국선 사건이 있는데, 쌍방 폭행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상대방과 말다툼 벌이다가 그만 가라며 손으로 목이나 가슴 부위를 1회 밀쳤는데, 상대방이 주먹과 발길질을 했고 피고인은 6주간 치료를 요하는 손가락 골절상을 입었다. 피고인은 너무 억울하여 상대방을 상해로 고소했는데, 상대방은 쌍방 폭행이었다며 피고인이 먼저 주먹으로 얼굴을 수 회 가격하기에 대응해서 때렸다고 주장했다. 쌍방 폭행의 경우 각자의 책임에 따라 기소하기에 상대방은 상해로, 피고인은 폭행으로 각자 벌금형으로 기소가 된 상태였고 상대방은 수긍하고 벌금을 낸 반면 피고인은 억울하다며 정식 재판을 구한 사건이었다. 피고인이 억울하다는 것은 자신은 상대방의 얼굴을 주먹으로 수 회 때린 사실이 없고 손으로 1회 밀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주먹으로 수 회 때렸다는 증거로는 상대방의 진술밖에 없었는데, 통상 이런 경우 상대방을 불러서 증인 신문을 해봤자 기존 진술이 번복되거나 달라지지는 않아서 유죄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폭행이라는 것은 신체에 가해지는 직·간접적인 유형력의 행사이기에 손으로 1회 밀었다는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죄명은 여전히 폭행이었다. 무죄의 가능성이 낮은 사건이었고 이런 부분을 피고인도 이미 수사를 받으면서 수사관으로부터 비슷한 설명을 들었던 터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피고인은 얼굴을 수 회 때렸다는 공소사실은 인정할 테니 변론을 통해 나온 벌금을 좀 감액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한 취지로 의견서를 내고 재판에 들어갔는데,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의 말을 곰곰이 듣던 판사님이 공소사실 부인하고 상대방을 한 번 불러 보자고 하셨다.

    변호인으로서 앞선 절도 사건처럼 결과 때문에 후회되는 순간이 있지만, 사실은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무죄 주장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피고인이 억울함을 강하게 호소하는데 방어권 행사는커녕 변호인이 시켜서 시인하게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초심을 잃고 나올 결과에만 집착하여 내내 억울해하던 피고인을 보지 못했었다. 적어도 폭행 사건의 재판에서는 법관이 변호인의 역할을 했었고 그 덕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잃었던 초심을 다시 되새겨볼 수 있었다.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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