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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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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남에는 왜 이주여성상담소가 없나요?- 이온유(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 기사입력 : 2023-10-30 19: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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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따뜻한 봄날 우즈베키스탄 이주여성이 사무실로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평소 분위기 메이커라 할 정도로 성격도 밝고, 새로운 친구들에게도 친절하게 하는 분이라 무슨 부탁이 있어서 나를 찾겠지 생각했다.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뭐지 한 순간, 선글라스 뒤로 온통 검보라색으로 덮여 있는 눈이 보였다.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폭력이 있었으나 가정이 해체되는 것이 싫고 아이들과 행복한 가정을 계속 꾸리고 싶어서 몇 년을 참았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의 폭력은 자신뿐 아니라 두 딸까지 이어지면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진 국제결혼은 정보 부족과 중간 브로커의 거짓된 정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폭력의 현장에 있지만 도움을 요청할 기관이나 사람을 알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피하면 된다고 생각한 이들에게 주어진 이름은 도망가는 베트남 신부였다. 또한 실제 현장 활동가인 나에게도 위협의 순간이 있었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던 2020년 겨울 센터를 이용하는 이주여성이 도움을 요청했다. 베트남 친구가 시댁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다고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센터로 온 이주여성은 점퍼도 입지 않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5개월 된 아이를 안고 겁에 질린 이주여성을 보는 순간 빨리 따뜻하게 해주고 밥을 먹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기저귀도 분유도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허겁지겁 나왔을 이주여성이 그려졌다.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은 상태이고,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생활시설에 입소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정을 이야기해도 결과는 음성결과서를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센터활동가 이주여성 집에서 재워준다고 했다. 그다음 날에 일찍 사무실에 와서 코로나 결과를 기다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음성 결과지를 들고 생활시설에 갈 수 있었다.

    경남 이주여성의 수는 전국에서 네 번째로 많다. 경남보다 적은 전남, 전북, 경북, 부산에도 이주여성상담소가 있으나 경남에는 이주여성 폭력 피해를 다루는 전문 상담 기관이 없다. 경남의 이주여성이 타지역에 가서 상담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놀란 적이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사망하거나 사망에 이르는 이주여성이 경남에도 있다. 언어로 인한 소통의 부재나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통역을 통한 교육과 상담이 이루어진다면 큰 위험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경남의 이주여성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면 우리지역에서 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가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아니 무기력한 상태로 도움조차 요청하지 못하는 한 명의 이주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전문적인 상담소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오는 것이라는 시가 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부가 오는 것이다. 인구절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를 유입하는 대책을 이야기하지만 가족 중심의 문화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이주여성을 인정해주고, 안전이 보장될 때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이민정책도 성공할 것이다.

    이온유(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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