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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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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뿌리산업을 지켜야 하는 이유- 홍종화 (재료연구원 재료공정연구실선임연구원·공학박사)

  • 기사입력 : 2023-11-16 20: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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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집에서 꽃을 사면 ‘이 꽃이 며칠이나 갈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뿌리가 잘린 채 꽃병에 꽂혀 고군분투하다 시드는 꽃을 보고 있노라면, ‘뿌리가 온전한 화분을 살걸’하는 후회가 든다. 꽃이 열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 뿌리는 말 그대로 ‘근간’인 것이다.

    과학에도 식물 뿌리와 같은 학문 분야가 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이 4가지 학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네 기초과학 분야는 공학, 의학, 농학과 같은 응용과학의 근간이 된다. 산업 분야에도 기초 기술이 존재한다. 다만 산업기술에서는 ‘기초’라는 단어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뿌리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뿌리기술’이란, 제품의 소재를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기초적인 공정기술이다.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의 6가지 ‘기반 공정기술’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뿌리기술을 활용한 산업을 우리는 ‘뿌리산업’이라고 부른다.

    지난 2021년 12월 16일, 뿌리산업법으로 알려진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다. 뿌리기술은 ‘사출 프레스’, ‘정밀가공’, ‘적층 제조’, ‘산업용 필름·지류’의 4가지 ‘소재 다원화 공정기술’을 포함해 10대 뿌리공정기술로 확대됐고, 이와 더불어 ‘로봇’, ‘센서’, ‘산업지능형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설계’ 등 4가지의 ‘지능화 기술’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포함됐다. 뿌리가 없으면 꽃도 열매도 없듯이, 첨단산업으로 알려진 ‘수소·전기차’, ‘우주·항공’, ‘배터리’,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신산업에서 뿌리기술은 그야말로 필수적인 기술이다. 예를 들어, 배터리 산업 하나에도 소성가공, 주조, 금형, 표면처리 기술 등 다양한 뿌리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월드클래스’ 손흥민 선수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아버지 손웅정씨가 무엇보다 축구의 기본기를 강조한 이유도 있다. 마찬가지로 산업 부문에서도 뿌리산업이 탄탄해야 첨단산업으로 견고함이 이어진다. 오랜 기간 숙련된 인재들이 성장하고, 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음으로써 축적된 기술이 선진기술로 이어진다. 뿌리산업이 무너진다는 건 인재와 경험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고, 뿌리산업이 토대가 되는 많은 주요 산업들이 필연적으로 붕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국내 산업구조에 영향이 있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뿌리산업이 무너지면 해외 기술의존도가 높아져 경제·외교는 물론, 국방·문화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내 뿌리산업을 잘 보존하고 육성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뿌리산업은 첨단산업의 발전을 꽃피울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높은 국격이라는 열매를 맺는 데 필수이기 때문이다.

    홍종화 (재료연구원 재료공정연구실선임연구원·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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