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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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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의식의 업그레이드

  • 기사입력 : 2000-03-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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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주변에서 흔히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설전이 벌어지지
    만 이 논쟁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생명의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비롯
    된 것으로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논쟁이 매우 고상한
    듯 하지만 따지고보면 원초적인 의식 수준으로 벌이는 논쟁이라는 점이다.

    최근 16대 총선의 분위기가 의미없는 논쟁으로 또 시끄럽다. 『지역 감정
    을 누가 시작했느냐』가 논쟁의 초점이다. DJ는 3.1절 기념사에서 『자유
    당 민주당 때도 없었는데 5.16 군사정부 이래 이렇게 돼 버렸다』고 불을
    지폈다. 5.16의 핵심이었던 JP는 그 이튿날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
    중 후보가 나서면서 시작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다른 당에서 그냥 둘리
    가 없다. 서로 논쟁의 중심에 비집고 자리 잡으려는 각축으로 인해 지역감
    정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고 말았다.

    두 사람의 설전은 은근히 상대에 대한 책임전가의 인상을 풍긴다. DJ는 JP
    가 책임자라는 의미로, JP는 DJ가 책임자라는 직설적 표현을 썼다. 그렇게
    보면 결국 망국적이라 할 수 있는 지역감정 조장의 책임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혹은 두 사람 다 있다는 얘기가 된다. 두 사람이 책임을 전가하
    는 통에 아리송했던 문제가 명확해져 버린 셈이다.

    그러나 이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지역감정 문
    제는 곪을대로 곪았고 후진 정치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김대중 정권이 들
    어선후 『결자해지(結者解之)』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더 깊게 골이 패었다
    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집권하면 아량을 베풀 것이라고 기대했던 영남권
    인심도 2년을 넘기면서 자조적인 생각으로 변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도 지
    역감정 조장이 최고의 메뉴로 떠오르게 된 것 자체가 이를 입증하는 것이
    다.

    그렇다면 왜 그런 발언이 난무하는가. 공공연히 내세우는 감정적 발언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욕을 얻어 먹을지라도 자기는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려있고 그런 발언에 동조하는 유권자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을 조장
    해 표를 얻으려는 현상은 이제 고질적인 한국의 정치 풍토가 돼 버린 셈이
    다.

    原初的 의사 표시

    표의 향방이 지역감정으로 결정되는 현상은 지극히 원초적인 의사표시의
    수준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의식 단계를 『원초적 자아』단계에서 『자
    아』 『슈퍼 자아』 3단계로 분류했다. 이 분류법으로 보면 우리는 본능적
    행동 단계로 국정을 이끌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
    다. 적어도 자아단계에 조차 오르지 못한 것은 50년 헌정사의 수치라 할 것
    이다.

    서구의 시각에서 보면 더욱 가당찮은 일이다. 저들이 우리의 민주주의 발
    전에 격려는 하면서도 인정을 주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감정적
    표현이 자제되어야 하고 이성적 판단이 앞서야 하는 선진시민의 의식 수준
    에 이르지 못한다는 평가다.

    이제 정치가 변하지 않으면 또 다시 경제위기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
    감이 팽배하다.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해외 여행 씀씀이가 지난 96
    년 수준으로 되돌아 갔다. 고급 소비재의 수입이 급증하고 사람들은 그동안
    의 고통을 잊었다. 더욱 어려운 문제는 과거보다 富의 불균형이 심화돼 서
    민들의 고통이 가중되리란 점이다.

    무엇보다 정치 개혁을 그렇게 갈망하더니만 새 천년 벽두에 맞이한 선거판
    은 과거와 다를바 없어 『지역감정』과 책임없는 무차별 폭로전, 먹자판 풍
    토가 재현되고 있다. 시민단체가 나서 공천해서 안될 인물을 선정해 발표했
    지만 그것도 잠시뿐 잊은지 오래다. 새 인물 등장이 절실하지만 여론조사
    에 나타나기는 구시대 인물이 항상 앞선다.

    시민 의식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지 않으면 해결의 길이 없다. 최소한 자
    아 의식의 단계로라도 올라야 한다. 간단하게 보면 지금까지 원초적 자아
    로 인해 몰라봤던 지역감정 조장과 정치판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수괴(?)
    를 정치판에서 몰아내면 되는 일이다. 그 일은 정치인의 자정 노력에 기대
    할 수가 없게 됐다.

    사실 슈퍼 업그레이드 된 정치의식만이 지역감정으로 표가 이동하는 현상
    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현상황에서 그것은 극히 기대난이다. 의미없는 논
    쟁만 계속되는 원초적 자아 단계의 정치판에 희망을 가져야 할지 망설여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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