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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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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봄날은 옵니다- 양 곡(시인)

  • 기사입력 : 2010-03-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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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모레가 춘분이니 꽃샘추위도 한풀 꺾이지 싶습니다. 요 며칠간은 날씨가 변덕이 심해 세상사도 봄날 같지가 않았습니다.

    진짜 우리가 알아야 할 일들은 슬쩍 지나쳐버리는 정치권이지만, 밖에서는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들로 애지고 막막한 마음은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독도문제란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4대강과 세종시는 어디서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의자 위에 던져놓은 5만달러는? 영화진흥위원회와 영화인들의 서명운동은? 궁금증만 더해가는 세상에 봄이 오다가도 도망을 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월 20일에는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연초의 정기총회에 굳이 참석을 한 것은 그날 다루어야 할 사안에 자못 심각한 내용이 있어서였습니다.

    창립 원로들까지 참석한 회원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어려운 결정을 해야했습니다. 문제가 된 3400만원은 이임 이사장이 익명의 지인으로부터 받은 자기앞수표 한 장을 내놓으면서 하시는 말씀으로 정리가 되고 3시간 동안의 회의는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말씀 도중에 박수가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그까짓 돈 없으면 우리가 죽느냐? 책을 안 내면 어떠냐? 벌여놓은 사업일지라도 당분간 안 하면 세상이 없어지느냐? 우리가 그동안 이런 어려움은 수도 없이 겪어왔고, 앞으로는 이보다도 더 큰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일은 여기서 끝내는 게 좋겠다!’는 문단의 어른 말씀에 아직도 우리는 세상을 더 살아봐야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심야버스를 타고 오면서 ‘아무래도 그렇지! 그 잘난 돈을 갖고 우리를 시험하다니? 우리가 언제 우리에게 돈 안준다고 불평한 적 있었던가? 한 번이라도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자랑한 적 있었던가?’라는 물음들을 창밖의 어둠 속 불빛들에게로 한없이 날려보내야 했습니다.

    ‘좋은 언어로 세상을 채워야한다’는 신임 이사장의 취임사는 역시 인용한 신동엽의 시 <좋은 언어> 그대로였습니다.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사회 현실을 보고 방관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문인들이 모여서 혼자서는 힘에 벅차니까 함께 더불어 나누며 살아가자는 뜻으로 지켜온 것이 정체성일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누가 쓰라고 해서 쓴 것도 아니듯이 누가 쓰지 말라고 한다 해서 안 쓸 수는 없습니다. 구도자가 길을 찾듯이, 노인이 방망이를 깎듯이,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듯이, 농부가 농사일을 하듯이 문인들은 진실의 글을 쓸 수밖엔 없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소리를 합니다. 문학 활동은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냐? 왜 만날 돈을 갖고 시빗거리가 되느냐? 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이란 것은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낭만이나 오락이 아니냐?

    문인들이 돈을 갖고 시비를 먼저 건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지만, 문단에서 문학을 하는 활동은 삶 그 자체이기에 문인들도 자존심이 있고 생각이 있고 돈이 있어야 생활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 작품을 즐기는 행위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여흥일 수도 있지만, 문인들이 원고료로 버는 월 소득은 2010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50만4344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절박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도 공과금을 내야하고 자식도 키워야 하고 가정도 지키며, 부끄럽지만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이러니까 누군가는 ‘또 그러면 글을 안 쓰면 되겠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문인들이 글을 안 쓰면 이 모든 문제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황사가 일고 눈·비가 와서 ‘좀 부족하거나 좋지 못한 언어’들이 세상을 한순간 뒤덮는다고 매화가 피고 산수유가 피고 양지쪽에서는 벌써 쑥이 돋아나는데 이땅에 봄날이 안 오기야 하겠습니까?

    양 곡(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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