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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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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소년을 격려해줘- 박영희(소설가)

  • 기사입력 : 2010-05-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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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는 자연의 애정결핍 현상인지 별스레 추위가 늦도록 오락가락하며 헷갈려 했다.

    그래도 초록이 성큼성큼 걸어왔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은 뒷산의 뭉글뭉글 피어나는 푸름보다 내 일터 담벼락에 기대어 자라는 대추나무였다.

    두 평 정도의 땅에 뒷집 할머니 내외분이 몇 년 전에 사다 심은 묘목이 자라 작년 가을엔 꽤 튼실한 대추 몇 알을 처음으로 달았다.

    가끔씩 눈이 뻑뻑해질 때나 계절을 오고감을 먼 산에서나마 가늠해 보고 싶을 때나 비 오는 날 키 낮은 동네의 지붕을 보며 커피가 마시고 싶어질 때 창가에 서면 늘 보는 풍경 속의 나의 나무였다. 내가 일터에 온 첫해에 심었으니 그냥 나는 내 나무라고 혼자 이름 지어 부른다.

    황사도 사라지고 없는 화창한 날 창문을 열다, 내 나무의 그 푸름에 키가 훌쩍 자라 바짓단이 짤막해진 상후 녀석을 보는 듯 반가움에 환호했다.

    언젠가 수줍게 그 녀석이 내미는 페퍼민트 껌처럼 탱탱한 햇살에 바람을 맞으며 파라 파라, 그 연둣잎새를 흔드는 모습은 며칠 전 검정고시를 치고 내게 와서 저 시험 정말 잘 봤어요! 합격하고도 남을 성적이래요! 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녀석과 꼭 닮았다.

    작년 이맘때 상후는 감색의 교복이 잘 어울리는 새내기 중학생이었다. 같은 동네 친구들과 떨어져 멀리 있는 중학교에 배정받고부터 녀석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이런저런 요구와 행동들은 여리고 소심했던 상후에게 스스로 학교마저 거부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설득과 당부에도 결국 상후는 학교보다 검정고시학원을 택했다.

    혹시나 좋은 길이라도 있나 싶어 아이를 앞세우고 나를 찾은 늦둥이 아들을 둔 상후엄마보다 아이의 붉게 물들어 가던 그 큰 두 눈이 더 나를 상심하게 했다. 또래들처럼 교복이 아닌 검정잠바를 입은 사복 차림으로 가방을 메고 학원에 다니는 상후를 만날 때마다 속앓이인지 결심인지 모를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숲속에 많은 길이 있다고, 하지만 설렐 게 없는 누구나 다니는 큰길보다 가시덤불이 있어도 내가 길을 내면서 가는 길을 택하겠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많은 경험과 독서를 하며 자율적인 인간으로 살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많이 불안하고 초조하다면서….

    상후는 더듬더듬 마지막으로 덧붙여 주문처럼 말했다.

    ‘선생님! 저를 격려해 주세요!’

    이상기후에도 여린 푸름을 피워낸 키 작은 내 나무와, 이제는 한자 급수시험에 도전할 거예요 하며 잇몸이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는 녀석은 내 마음속에 자라는 여리지만 굳센 내 나무들이다.

    누군가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은 두렵고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지만 때론 한없이 고맙기도 하다. 그 무겁고도 소중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준다면 나는 언제나 너를 지지하고 위로하고 토닥여 줄 것이다.

    상후야! 연두로 물드는 5월의 이름으로 너를 격려하며 지지할게. 그러니 너는 앞으로 그대로 행진하렴!

    박영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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