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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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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詩 권하는 사회, 詩 읽는 사람들- 서일옥(경남시조시인협회장)

  • 기사입력 : 2010-05-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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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팝나무 가로수에 하얀 쌀밥 같은 꽃송이가 눈을 부시게 한다. 온 산야는 진녹빛의 향연으로 싱그럽다. 들에는 푸른 보리가 바람에 물이랑을 이루고 비에 씻긴 감나무 이파리의 반짝임이 정말 도드라지게 아름다운 계절이다. 선거의 막바지에 든 확성기 소리가 거리마다 열풍을 불어넣고 계절을 가늠할 수 없는 날씨와 기온은 사람들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살기가 참 팍팍하고 영혼의 샘이 메말라 무료한 시간이 반복될 때 맥박을 다시 뛰게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라는 화두 앞에 나는 시(詩) 한 편을 낭독하는 것이 직방이라 생각한다. 시 한 편의 창작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난생 처음 시를 배우는 66세 미자라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자는 중학생 외손자와 소도시에 산다. 그녀는 화려한 옷과 장식을 좋아하고 늘 명랑하며 동네 노인의 간병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네 문화원에서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면서부터 시상을 찾기 위해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를 쓰게 되고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아 소녀처럼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오면서 세상이 자신의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한 여중생이 6명의 동급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해 버린 사건의 중심에 자신의 손자가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면서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죽은 소녀의 사진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TV를 보는 손자,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이 피해자 측과 돈으로 해결하려는 상황 등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그녀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한 편의 시였다.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떠나는 순간이며 다음 생을 꿈꾼다’라는 시를 남기면서 영화는 끝났다.

    오탁번 시인이 말하기를 ‘시란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초가집 골목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같은 것’이라 하였으며 허영자 시인은 ‘자기 존재의 확인이며 자기 정화의 길’이라 하였다. 우리는 시를 통하여 마음을 비우기도 하고 채우기도 한다. 세상의 잡다한 일상 속에서 시를 좋아하는 몇 사람이 모여 감미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는 시 낭송회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정말 아름답게 정제하고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곤 한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 아벨서점에서는 매월 시 낭송회가 열린다고 한다. 낭송회를 주관하는 사람은 아벨서점의 여주인인데 자신이 시인을 초청하고 시를 골라 선집(選集)을 묶고 참석자들은 이 엔솔로지에서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읽는다고 한다. 똑같은 크기의 활자이지만 낭송하는 사람의 선 자리와 지나온 자리와 꿈꾸는 자리를 모두 오갈 수 있는 이런 시간은 누구에게나 결 고운 시심을 선사해 줄 것이다. 곁들여 낭송회 후 주인이 소박하게 준비한 뒤풀이 자리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열어 갈 것이다.

    이제 닷새 후면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위정자들이 승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한 지역을 다스리는, 또는 한 기관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의미 있는 시 한 수쯤은 외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거리 어디서나 시비를 만날 수 있고 그 곁에서 자그마한 시 낭송회가 열리고 시인과 함께하는 청소년들의 맑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 더 나아가 온 국민이 좋은 시 읽기를 권하고 그런 시 읽는 사람이 늘어나는 감성의 문화정책을 펼치는 그런 정치가를 꿈꾸어 본다.

    서일옥(경남시조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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