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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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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둘레길과 드림로드- 강수찬(수필가)

  • 기사입력 : 2010-06-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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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해에는 시가지를 둘러싼 산중턱에 드림로드가 있다. 처음에 이 길은 산불이 나면 큰불로 번지지 않도록 소방차가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진 임도(林道)였다. 오랫동안 나무를 심고 가꾸어서 이름도 공모하여 꿈길로 다시 태어났다. 가까운 마을에서 드림로드로 잇는 능선길이 수없이 많다.

    나의 둥지에서도 국도 2호선 큰길 하나만 벗어나면 광석골 쉼터가 있다. 진해시 청사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생태공원의 일부에 속한다. 숲속을 지나 드림로드에 오르면 진해만의 아름다운 바다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드림로드는 장복산 휴게소에서 시작하여 웅동 소사생태길까지 26km의 트레킹 코스로 연결되었다. 산허리에 길을 조성하면서 길섶에는 철따라 색깔과 향기가 다른 꽃들을 심었다. 사시사철 사색하면서 걷는 나에게는 건강과 글감을 얻을 수 있는 고마운 길이다.

    이른 봄에는 산수유와 생강나무에서 노란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어낸다. 진달래가 잠시 머물다 간 자리에는 벚꽃세상으로 하얗게 물들여진다.

    색색이 다른 영산홍과 철쭉이 무더기로 꽃망울을 터뜨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성질 급한 꽃 복숭아가 봄을 유혹한다. 빨간 깃발을 들고 행군하는 늠름한 해병의 혼을 연상한다. 수더분한 새색시 같은 황매화와 삼색병꽃나무가 마주하며 꽃의 향연이 벌어진다.

    계절마다 나무들은 형형색색 꽃을 피우면서 산과 길을 구분하는 울타리가 된다. 봄에는 하얀 꽃들로 단장한 조팝나무와 남천이 몸을 낮추어서 함께 어우러져 속삭인다. 가을에는 피라칸타와 홍가시나무가 새빨간 열매와 잎으로 나그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드림로드의 중간쯤인 청룡사 주변에는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편백나무와 삼나무들이 사열하고 있는 사이사이에 차나무가 심어져 있어 사계절을 푸른 산에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천자봉 아래 만장대 부근에는 화살나무가 집단으로 자생한다. 예전에는 봄에 홑잎(화살나무의 새순)나물을 세 번 뜯어 먹으면 부지런한 며느리로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화살나무의 단풍잎과 주홍색 열매는 가을 산을 발갛게 불태운다.

    박남준 시인은 시 ‘화살나무’에서 “그리움이란 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찢어 /갈기 세운 채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라고 읊었다. 필자에게는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그리움의 길이 있다. 지난 가을에 무학산 둘레길이 밤밭고개에서 석전사거리까지 12km의 산책로로 조성되었다. 어린이날에 야간 고등학교 반창회에서 둘레길을 걷는 모임을 가졌다. 마산여중 앞에서 출발하여 만날고개로 내려오는 코스는 반가운 친구들의 만남에서 또 다른 설렘으로 다가왔다.

    3시간 넘게 땀방울을 훔치며 걷는 길 중간쯤에 자리한 완월폭포길은 내 청소년기의 꿈길이었다. 산복도로가 생기기 전의 천 평 남짓한 계단식 천수답이 어릴 적 생활의 터전이었다. 둘레길과 이어져 무학산을 오르는 길은 땔감을 해서 지게에 지고 나르던 길이었다. 힘겨운 나뭇짐을 언덕배기에 기대놓고 멀리 합포만을 바라보면서 가난의 짐도 벗어 놓으려는 꿈을 꾸며 자랐다.

    둘레길은 살아온 인생길처럼 평탄하지 않았다. 앵지밭골이나 서원곡은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시야가 가려진 것이 조금 아쉬웠다. 편백나무숲 속에 전망이 좋은 반월동 뒷산에 자리한 정자에 잠시 머물렀다. 코앞에 보이는 돝섬과 마창대교는 마산의 랜드마크다. 마창대교가 통합 창원 시민 모두의 마음을 잇는 소통의 다리가 되기를 고대하며 한참 바라보았다. 이내 뒤따라오는 아낙네들이 “방 빼달라” 조른다. 공원으로 잘 가꾸어진 만날고개는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었다.

    둘레길과 드림로드는 모두가 꿈길이다. 하루하루를 꿈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참 행복하다.

    강수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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