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 김명은
- 기사입력 : 2013-06-2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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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끓던 벨소리
불과 몇 초 만에 차가워진다
이어폰을 꽂은 남자의 구두코가 계단에서 꺾인다
전화기를 귀에 대면
조련사의 갈고리에 찢기는 코끼리소리 들린다
코끼리소리보다 컸던 여자의 귀가 바늘귀보다 작아진다
목마른 코끼리가 긴 코로 침 뱉는 소리 들리고
목덜미로 번져가던 이른 햇살이
파랗게 얼어붙는다 그는 간곡했고 그녀는 완곡했다
통쾌한 소리의 파편들, 오역처럼,
아무래도 잘못 디뎠다
남자의 팔에 끌려가던 여자의 그림자가 끊어진다
날아오르는 것이 습성인 노래들은
꽃 그림자 너머로 날아가고
두 마리 코끼리가 어둠속에 갇힌다
귓속을 가득 채우는 코끼리울음들, 그 사이에서
남자의 긴 다리가 꺾인다
- <시와환상> 2012년 겨울호
☞ 우리는 휴대폰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하여 인간과 인간의 단절된 관계를 해소하고 돌파구를 찾아보지만 그것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가 좋은 소식을 전할 때도 있지만 잘못 걸려온 전화이거나, ‘불과 몇 초 만에’ 이별을 알리는 전화일 때가 있다.
그녀만큼은 믿고 있었는데 ‘코끼리소리’로 돌변하여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남자는 ‘구두코가 계단에서 꺾이’고 ‘긴 다리가 꺾인다’ 애원해보지만 그녀는 쌀쌀하다. 이 정도가 되면 ‘코끼리소리’로만 들리겠는가. 곧 바닥에 전화기를 내동댕이치고 싶을 정도의 소음일 것이다.
지금도 휴대폰은 울리고 있다. 어떤 내용일까…. 박우담(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