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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기자] 김유경기자의 스페인·포르투갈 편 (2)

올리브!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 기사입력 : 2015-10-06 14: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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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편_방송인터넷부 김유경 기자/스페인·포르투갈 편
     
    (2) 올리브!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성(聖)스러운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창세기와 욥기, 시편, 로마서 등에 대해. 그렇다. 성경 이야기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노아'가 살았다. 대홍수로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봉착하자 그는 고심 끝에 탁월한 궁리를 낸다. 노아는 엄청나게 큰 배를 만들어 동물들을 태워 홍수를 피했고 그로 인해 인류의 타락에서 세상 만물을 구한 절세의 영웅이 됐다.

    홍수가 멈춘 후,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노아는 비둘기를 밖으로 날려보냈다. 이때 비둘기가 배로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에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었다.'(창세 8:11)는 구절이 있다.

    다음은 욥기. '엘리바스'가 말한다. '포도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욥 15:33) 다음은 시편. 이번엔 '다윗' 왕이 말한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시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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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봄에 개봉했던 영화 '노아'의 한 장면. 러셀 크로가 노아 역을 맡아 열연했다.(역시 러셀 크로는 모던한 역할보단 안 씻고 헐벗은 역할을 할때 훨씬 섹시하다.)
    모두 감람(橄欖)이 언급된 대목이다. 잎이 있고 꽃이 피고 그 빛은 푸르다고 하는 것을 보니, 식물인 것 같다. 맞다. 나무다. 감람수(橄欖樹)라고 부른다. 이러한 성경 구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올리브가 '감람'이라고 믿어왔다. 최초 번역자가 성경에 'Olive'라고 언급된 부분을 '감람'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오역이다.(어이쿠. 하느님 아버지, 오역이랍니다. 아멘.)

    사실 감람나무는 인도차이나, 베트남, 중국 남부 열대지방에서 자생하는 나무다. 감람나무 열매가 올리브와 흡사하게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오역한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이 많다. 게다가 우리나라 성경은 원전이 아닌 중국의 성경을 번역했기 때문에 오역된 감람나무를 그대로 차용했다. 따라서 창세기, 욥기, 시편, 로마서 등에 언급되는 성스러운 식물은 '감람'이 아닌 '올리브'라고 해야 옳다.(성경 이야기 하려니 손에 진땀이 난다. 애먼소리 한다고 형제자매님들께 한소리 들을까 심히 두렵다. 이십대 초반부터 몇 번이나 성경을 읽으려고 노력했는데 창세기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하느님 아버지, 이 어리석은 여인을 긍휼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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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한 컷. 올리브 나무로 꽉 차 있는 들판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수령이 1000년이 넘은 올리브 나무도 있다고 했다.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성경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올리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올리브라는 열매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된 것에 대해. 그 열매가 얼마나 성스러운 열매인지 알게 된 계기에 대해. 취재를 다니다가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웨이터가 반드시 물과 함께 내어오는 것이 있었다. 따뜻하게 데운 빵, 올리브유, 그리고 절인 올리브였다. 스페인, 포르투갈 모두에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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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출신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 올리브유 먹고 이렇게 느끼한 얼굴을 갖게 된 건가. 1995년에 개봉했던 어세신(Assassins)의 한 장면. 정말 버터같다.
    곧이어 샐러드를 내왔는데, 양상치, 당근, 오이, 토마토 위에 참치 통조림을 얹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위에 뿌릴 드레싱이 없었다.

    이 밍밍한 걸 그냥 먹으란 말이야?(요리조리 눈을 굴리며 요거트 드레싱 같은 걸 찾아봤지만 소용 없었다.)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그 위에 올리브유를 뿌려 먹으라고 했다. 보통 우리는 파스타 같은 요리에 올리브유를 사용하지만 그 곳 사람들에게 올리브유는 뭐랄까, 숫제 물과 같은 거 였다.(올리브유가 담긴 병은 마치 우리나라 방방곡곡 중국집의 식초병나 간장병처럼 레스토랑 테이블마다 빠지는 법이 없었다.)

    메인이미지참치를 얹은 샐러드. 여기에 올리브유를 뿌려 먹는다.
    이베리아 반도 사람들은 빵을 올리브유에 찍어 먹었다. 잼이나 버터를 발라먹는 경우를 보기가 좀처럼 어려울 정도라고 할까.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샐러드 접시에 올리브유를 한가득 붓는다. 샐러드를 먹으면서 주요리와 빵을 함께 먹는다.(염장한 고기를 쓰는 음식이 많기 때문에 짠맛을 상쇄시키기 위해 샐러드와 빵을 곁들여 먹는다.)

    이때 빵을 손으로 조금씩 뜯어 샐러드 접시 바닥에 흥건하게 흘러내린 올리브유에 적셔 먹는 거다.(그러면 빵은 촉촉해져 씹기 편하고 빵을 씹을 때마다 올리브 향이 입에 맴돈다. 한 두번 그렇게 먹고 완전히 그 매력에 빠져버렸다. 이후로 나는 집에서 빵을 구워먹을 때 꼭 올리브유에 찍어 먹는다. 덕분에 딸기잼 땅콩잼 블루베리잼은 냉장고 구석에 처박히게 됐다.)

    일설에 의하면 올리브유가 위벽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나.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과음이 예상되는 술자리를 갖기 전 우리가 숙취해소를 위해 챙겨먹는 헛개나무 추출 음료와 비슷한 맥락으로 올리브유를 한컵씩 마시기도 한단다.(듣고보니 뭔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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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브유 첨가한 '여X808' 자매품 출시 아이디어를 한번 제안해볼까?
    다음은 올리브. 블랙 올리브가 나오는 식당도 있었고 그린 올리브가 나오는 식당도 있었다. 씨를 뺀 뒤 소금과 향신료에 푹 절인 올리브의 맛은 짭짤하면서도 새콤했다. 살짝 씹으면 쉽게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뭉근한 과육이 느껴졌다. (일행 대부분이?이 짜고 맛 없는 걸 왜 먹는지 모르겠다며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덕분에 올리브는 나오는 족족 김유경 기자님이 다 드셨다. 냠냠.)

    특히 곰삭은 치즈를 얇게 저며 블랙올리브와 함께 입에 넣고 오래 씹은 뒤 마지막에 입가심으로 레드와인을 한모금 마시면 그 풍미가 기가 막혔다. 짭쪼롬하면서도 새콤하고, 느끼하면서도 깔끔했다. 이 네가지 맛이 전부 다 하나의 혀 위에서?아름다운 세레나데를 불렀다.(사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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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경님이 드신 올리브들.
    올리브 나무는 4년생 나무다. 지중해를 떠날 수 없는 숙명을 지녔다. 강수량이 적으면서 일조량이 많고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에 최적화 되어있는 수종이다. 나무 전체에 얇디 얇은 실루엣을 드리운 듯 은은한 연둣빛이 아름다워 키워보고 싶다는 욕망을 잠시잠깐 품었으나,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난 뒤 깨끗이 마음을 접었다.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뿌리가 썩어버리고, 겨울철 찬바람을 맞고는 잘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흔히 '올리브'하면 이태리, 터키, 그리스 등을 주산지로 떠올리지만 사실 전세계 올리브 최대 생산지는 스페인이다. 연간 스페인이 100만t, 이태리가 48만t 정도를 생산한다. 때문에 전 세계 올리브유 소비량의 절반 이상도 스페인이 담당한다.(집에 있는 올리브유를 꺼내어 성분표시를 유심히 살펴 보시라. 스페인 산 혹은?이태리 산에 스페인 산이 섞인 경우가 많을 거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올리브유 소비가 많아진 건 아메리칸 드림과 연관이 있단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 싱싱한 올리브를 먹을 수 없자, 그 대용으로 올리브유를 많이 먹었고 이에 맞춰 대량 수출입과 소비가 이뤄졌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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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드리드 에스파냐 공원의 세르반테스 기념상. 주변에 올리브 나무가 빼곡했다. 세르반테스가 쓴 '돈 키호테'(Don Quixote)의 배경이 된 스페인 '라 만차(la Mancha)'마을의 올리브 나무를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광장에서 골목으로, 도회지에서 농촌으로 갈수록 올리브와 올리브유의 품질은 상승세를 탔다. 본래 현지의 진짜 '맛'은 도시가 아닌 시골에 있지 않은가. 진짜 '맛'을 아는 세련된 이는 도시촌놈이 아닌 시골촌놈이 아닌가 말이다. 취재 3일째 되는 날, 포르투갈 접경지대인 에스트라두마의 어느 농가에 딸린 식당에서였다.

    나는 아마도 거기서 내 생애 최고의 올리브와 올리브유 맛을 보았던 것 같다. 옛 방앗간 건물을 개조했다는 그 레스토랑은 돼지고기 등심과 볼살 요리를 주로 취급했는데, 내가 눈을 번득였던 건 주요리보다 그날 함께 딸려나온 올리브였다. 그 곳의 올리브는 음… 뭐랄까, 햇감을 씹는 것처럼?아삭하면서도 시원했고 싱싱하면서 탁월했다. 올리브유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병에 든 모양이 마치 청정수처럼 찰랑거려 끈적임이 전혀 없었고, 생대추를 씹을 때 나는 은은한 향이 진동했다.

    차갑게 얼린 망고스틴을 어금니로 꽉 깨문 순간 잇새로 퍼지는 상큼발랄한 향 같기도 했다. 그 정도로 아름다운 향이 풍기는 올리브유는 처음이었다.(향수로 쓰고 싶을 정도로 싱그러운 향이었다. 샤넬 넘버 원?) 내가 최고라고 손을 치켜올리자 어수룩해보이는 식당 주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 농장에서 생산한 올리브유가 올해 품평 대회에서 1등상을 탔다'고. 한 병 사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짤래짤래. 이미 솔드아웃.(다들 좋은 건 알아 가지고. 쳇! 그 소리를 듣는 즉시 테이블에 놓인 병에 든 올리브유를 접시 위에 콸콸 쏟아 빵에 다 찍어먹어버렸다. 손 등에 쓱쓱 바르기도 했다.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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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칭 품평회 1등 식당 올리브유. 딱 한병만 국내로 반입하고 싶었으나 이미 동이 나 버렸다.
    이베리아 반도의 올리브는 내게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을 안겼다. 그것은 내 식성을 변화시켰고, 이제 나는 잼과 드레싱을 멀리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샐러드나 빵에는 무조건 올리브유! 조금 값이 나가는 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진짜 '맛'을 알아버린 뒤니까. 노아의 방주에 탄 비둘기처럼 홍수가 지나간 뒤의 새로운 지상낙원을 보아 버렸는데,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을 떴는데, 다시 퇴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나 더 추가하자면, 올리브 나무는 비가 잘 내리지 않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수분을 흡수해 저장하는 보습력도 탁월하단다. 때문에 올리브유는 먹는 대신 몸에 발라도 좋다는 것.

    사실 나는 요즘 올리브 바디오일도 한 병 사서 온몸에 열심히 바르고 있다.(먹고 바르고, 바르고 먹고. 이러다 곧 뽀빠이 여친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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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잘 떠올려보면 뽀빠이의 여자친구 이름이 '올리브'다. 심지어 풀네임은 '올리브 오일'이다. 이 여자, 스페인 홍보대사였나 보다.
    다시 한번 성스러운 이야기로 끝맺음을 하고자 한다. 사실 노아는 비둘기를 단 한 번 방주 바깥으로 날려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비둘기를 보냈다.

    첫번째 비둘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로 되돌아왔다. 아직 온 세상이 물로 가득 차 있어 앉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돌아온 비둘기는 올리브 나무 가지를 물고 왔다. 이는 물이 올리브 나무 높이 만큼 빠졌다는 상서로운 증거였다. 세번째 비둘기는 영영 배로 돌아오지 않았다. 물이 모두 빠졌기 때문이다. 이때 노아는 방주(方舟)의 입구를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니까 올리브는 신(神)이 인류에게 보낸 희망의 메시지이자 구원의 상징이었던 거다.
     
    성서에, 청교도에, 숙취해소에, 피부미용까지. 이 정도면 올리브. 진짜 성스러운 열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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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출신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오늘도 나는 페넬로페를 꿈꾸며 짧고 굵은 팔다리에 올리브 오일을 바른다. 부질없다 하지 말라. 꿈★은 이루어진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 '꽃보다 기자 스페인·포르투갈' 다음편에서는 '(3)바보야. 네가 그림을 보는 게 아니야, 그림이 너를 보는 거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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