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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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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쇼생크의 죄수들

  • 기사입력 : 2000-02-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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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생크 탈출』이란 미국 영화를 보면 변화되지 않는 『틀』 속에서 자행
    되는 비리와 인권유린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죄를 뒤집어 쓴 억울한 젊
    은이가 교도행정이란 두꺼운 기존의 벽을 뚫고 세상을 향한 변화의 탈출을
    시도한다. 20여년간 치밀한 계획이 성공하는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
    다.

    재미있는 현상은 영화 속의 죄수들 대부분이 『자신은 죄가 없다』고 생각
    한다는 점이다. 모두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변호사의 농간에 당했고, 사
    회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억울함을 그렇다고 교도소 내
    에서 토로할 수는 없다. 사회와 격리된 높은 담 안에서 부도덕한 교도소장
    과 간수들에 의해 범죄의 희생물이 될 뿐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교도행정에서 죄수들의 교화는 불가능해 보인다. 교화를
    목적으로 세워진 교도소의 담이 오히려 더 많은 비리와 범죄의 온상이 되
    고 있는 것은 사회제도란 『틀』이 낳은 병폐이기도 하다.
    그 『틀』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사람들과 깨뜨리려는 진보적 사람들이
    부딪쳐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 사회 현상이다. 그러나 제도의 틀은 가끔
    씩 깨어지고 부서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관이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총선 부적격자들의 항변
    새로운 세기를 맞았지만 정치권은 50여년 쌓아온 『틀』을 깨지 않으려 몸
    부림 치고 있다. 그 몸부림은 『틀』을 깨려는 시민단체의 저항에 부딪쳤
    고 싸움은 점입가경이다.

    문제는 시민연대의 명단 발표후 단 한 사람도 자신을 『부적격자』로 자백
    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은 어려운 결단이긴
    하지만 그런 신선한 충격을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국민들에게는 실망스러
    울 뿐이다. 그리고 각 당은 거명됐던 인물들을 새삼 공천명단에 올리고 있
    다. 유권자들도 2개월 후의 투표장 가는 길목에서 잊을 것이 뻔하다.

    쇼생크 감옥에서는 장기수들에 대해 가석방 심의가 있다. 『교화됐다고 생
    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면 무조건 『기각』 판결이 내
    린다. 죄수들은 하루라도 먼저 바깥 세상에 나가고 싶어 철저히 교화됐음
    을 나타내려고 안간힘을 쏟지만 허사다.

    우리 정치권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갖가지 소명 자료를 내 놓고 자신의 무
    관함을 증명하려 애쓴다. 어떤 이는 단식 투쟁으로 맞서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습이 결코 교화된 죄수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시민단체가 내놓은 명단이 완벽한 자료라고 할 수야 없다. 그러나 명
    단에 속한 정치인들 중에는 누가봐도 정치 현장에서 사라져야 할 인물들이
    있음을 본다. 온갖 비리의 온상이었고 이전투구의 장본인이었던 인물들이었
    기에 『기각』 판결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다시 고개
    를 치켜들고 『교화됐느냐』는 질문이 있기도 전에 기고만장한 모습들이다.

    쇼생크의 장기수들이 가석방 되는 것은 30년 이상을 넘긴 노령의 죄수들
    뿐이다. 가석방 되면 사회에 적응을 못해 자살로써 생을 마감하기 일쑤다.
    그것은 죄수들에게 대한 객관적 소명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변화를 거부하는 교도행정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무책임한 심의를 할
    수는 없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따라서 시민단체가 공개한 명단
    은 가석방 심의의 소명자료가 될수 있어야 한다.

    16대 총선은 마지막 가석방 심의
    우리는 지금 쇼생크 감옥속에 갇힌 우리의 정치권에 대해 최후의 가석방
    심의를 할 채비를 갖춰야 한다. 온 유권자가 심의관이 되고 정치인들은 우
    리 앞에 앉아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들이다. 진정 미래사회로 나갈 수 있는
    정치인에게 『결정』 판결을 내려야 한다.
    저들은 아직도 『교화됐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지만 아직도 요원해 보
    인다.

    우리의 정치권에 쇼생크 감옥과 같은 비리와 범죄의 온상에서 가석방 될
    수 있는 정치인은 얼마나 될까. 인권이 보장되고 풍족한 삶을 누릴수 있는
    바깥 세상을 정치권은 왜 외면하고 쇼생크에 남으려 하는지 알수가 없다.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아 보이는 그 담만 넘으면 얼마나 쾌적하고 감미로
    운 세상이 있는가.

    심의를 하게될 유권자들도 문제다. 쇼생크의 가석방 심의관처럼 늙지 않았
    다고 무조건 기각 판결을 내리는 유권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기존의 틀을
    깨고 벽을 넘으려는 진취적인 유권자들이 돼야 이나라에 진정한 정치 개혁
    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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