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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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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노인들 가슴에 못박는 일들

  • 기사입력 : 2000-05-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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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의 푸념이라고 받아 주십시오. 노인을 공경하자는 것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주장은 또 다른 폭력 아닙니까. 도대체 노인은 어디로 가야 합
    니까?"

    며칠전 필자는 일흔살 노인 독자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신문 독자 투
    고난에 실린 글을 읽고 인생의 허무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가정의 달
    에 주는 `효자 효부상`이 여성들을 기존의 가치에 길들이는 교묘한 미끼』
    라며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한 여성단체장의 글에 대한 것이었다. 필자는
    전화를 받고 그 글을 음미했다. 그리고 가정의 존재가치는 무엇이며 인류
    가 추구하는 행복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부모공경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가정 파괴의 또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
    렀다.

    특히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달에 대한 자기주장을 펼친다. 가정
    의 행복을 위한다는 논리지만 대부분 기성세대, 그것도 남자에 대한 공격
    이 주류를 이루기 일쑤다. 물론 변화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데는 누구나 공
    감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방식에 대해 남녀노소가 조금씩은 견해를 달리한
    다. 젊은이들은 家父長的 권위주의 의식의 발로를 경계하고, 노인네들은 과
    거의 영광(?)을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여성들은 끊임없이 가정과 남성들로
    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그 사고의 차이가 또 다른 가정의 폭력으로 자리
    잡아 결국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빚고 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한다는
    가정의 달에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쓸쓸해 하고 더 큰 상처를 받는 일
    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을 옭아매었던 잘못된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하려는 주장은 백번 옳은
    일이다. 조선시대 열녀라는 제도와 같은 여성들의 삶을 희생으로만 몰아갔
    던 악습은 당연히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효자효부를 그렇게 보아야만 하
    는지는 의문이다. 마음에서 우러나 부모를 공경하고 주위로부터 칭송을 받
    아야 받는 상이다. 과거에도 있었지만 누구나 받는 것도 아니다. 더욱 중요
    한 것은 그 상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희생의 제물』이었다고 생각지 않
    는다는 점이다.

    사이버 시대,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인가. 최근 미국의 한 여론조사
    는 이 물음에 대한 좋은 답변을 주었다. 미국민 30%는 『부자가 되는 것이
    싫다』고 했다. 금전 만능의 통념을 뒤집는 새로운 시대 의식의 변화를 의
    미한다. 응답자의 94%는 『돈보다 좋은 가족관계』를 꼽았고 가정의 사랑
    (92%)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해야 한다고 답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미래사회에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바 있다.

    『사랑이 있는 가정.』 그것은 가족 구성원의 희생과 협력을 담보로 가능
    한 일이다. 가정의 소중함을 인식해온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부모 공경
    을 실천했고 그 소중한 유산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다. 세계의 많은 민족
    중에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민족은 역사속으로 사라져 갔다. 유태민
    족을 보라. 저들은 나라없는 민족으로 2천년을 유리 방황했지만 가정을 소
    중히 여기는 전통으로 세계에 군림하고 있지 않은가. 저들의 노인에 대한
    공경은 주말이면 가족을 찾고 부모를 찾는 전통을 버리지 않는데서 알 수
    있다. 헌신과 희생은 인류 역사의 발전에도 필요한 요소다. 개인적 삶을 희
    생한 데레사수녀와 슈바이쳐와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도덕성을 유지
    하며 평화를 지켜왔다. 그분들의 삶을 본받자는 교육을 『교묘한 미끼』로
    보아야 하는가.

    사회나 국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하듯, 가
    정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과거의 가치관에 대해 매도하는데만 집착하다보
    면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글 쓴이의 의도와는 다르게 독자들은 엉뚱하게 받아들여 가정 파괴를 부채
    질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가정을 지키려는 가족 구성원
    의 최소한의 희생을 요구받는 시절이다. 그 속에서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
    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효자효부라 칭송을 받고 있다. 성경에도 『네부모를
    공경하라 그것이 네가 잘되고 오래사는 길이다』고 했다. 부모 공경을 어
    찌 여성에게 강요된 희생으로만 볼 수 있는가.

    가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소중한 가정엔 소중한 가족
    이 있고 그 가족을 내가 돌보고 내가 지켜주지 않으면 대신할 누구도 없
    다. 그것은 누구나 져야할 가족 구성원의 공통적인 책임이고 그 책임은 시
    대가 변한다고 다를 수 없다. 가정 파괴를 염려하는 노인들의 가슴에 더이
    상 못을 박아서는 안된다. 성재효 논설위원 jsung49@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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