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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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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역사박물관

  • 기사입력 : 2000-06-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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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가 총 사업비 400억원을 들여 ‘역사박물관’을 짓기로 한 계획에
    대해 본지는 최근 사설란을 통해 1차적으로 그 부당함을 논한바 있다. 그러
    나 이 계획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그 추진 배경에 대해 의혹
    이 간다.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거액의 예산이 소요되는 대형 사업
    을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은밀하게 추진해야만 하는지 그 연유를 알 수
    가 없다. 한 마디로 말해 이같은 행정 독단적인 행태는 비민주적인 밀실행
    정의 전형으로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돼야 할 지방자치시대에는 사라져
    야 마땅한 구시대적 악습임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창원시는 왜 엄청난 시민 혈세를 쏟아부으야만 하는 역사박물관을 무리하
    게 지으려고 하는가. 언제 시민들이 역사박물관을 지어달라고 한 적이 있으
    며 또한 그 필요성을 제기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역사박물관 건립이 그토
    록 긴요한 시민숙원사업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창원시는 분명한 답변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시민들의 손으로 시장을 뽑아 市政을 위임한 데에는
    민주적인 절차를 소중히 하면서 다수 시민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자치단체장
    으로서의 소임을 다 해야 한다는 엄숙한 뜻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그러함
    에도 다수 시민들이 원하지도 않는 대형사업을 일반 시민의 뜻을 무시한
    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서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따
    라서 시민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창원시의 역사박물관
    건립계획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당연히 철회돼야만 한다.

    첫째, 817억원의 기채를 안고 있는 창원시로서는 엄청난 시민부담을 가중
    시키는 不要不急한 사업은 삼가야 옳다. 그동안 IMF체제하에서 시민들은 수
    많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지방세를 부담해 왔다. 아직도 우리의 경제가 제자
    리를 잡은 것이 아니며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외
    면하고 반드시 필요한 사업도 아닌 곳에 거액의 혈세를 쏟아붓는다면 그 고
    통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진정 시민을 위한 행
    정을 편다면 이러한 점을 간과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창원시는
    50개에 달하는 공공시설물을 운영·관리해 나가고 있으며 이곳에 지원해야
    하는 비용만 해도 연간 1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여기에다 역사박물관까
    지 생겨나면 그 액수는 크게 증액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둘째, 독자적인 대형 역사박물관은 필요치 않다. 인근 김해시에 국립박물
    관이 있다. 이곳을 이용하면 가야시대의 유물을 비롯한 고대유물을 다량 접
    할 수가 있다. 굳이 이중투자를 해 예산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창
    원시 외동에 있는 성산패총 유물전시실에만 해도 고대유물이 다수 보존돼
    있어 언제든지 관람 가능하다. 그리고 사림동 ‘창원의 집’에는 농경시대
    의 유물이 전시돼 있어 향토민속박물관 역할을 톡톡이 하고 있다.

    셋째, 역사박물관이 세워진다고 해도 대형 전시실을 채울 유물이 없다.
    생각해 보라. 이름만 그럴듯하게 ‘역사박물관’이라 붙여 놓은 상태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만한 유물은 구비돼 있지 않고 가치를 논할 수 없는 하잘
    것 없는 유품들을 전시한다면 그야말로 예산낭비만 초래하는 이름뿐인 역사
    박물관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실제로 유물이란 하루 아침에 모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발굴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여기에
    는 오랜 시간과 많은 경비가 뒤따르며 반드시 유물이 출토된다는 보장도 없
    다. 기존 박물관의 것을 임대해 올 수도 있겠지만 손쉽게 유물을 넘겨줄 박
    물관이 어디있겠는가. 한 때 창원시는 이곳에다 南美의 한 동포가 소장하
    고 있는 각종 화폐를 기증받아 전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語不成說이요, 난센스적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설사 역사박
    물관이 건립된다고해도 무엇으로 채워나갈 것인지 걱정된다는 이야기가 내
    부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며 무엇을 어떻게 전시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조차
    제대로 서 있지 않다는 기막힌 이야기도 들린다. 한 마디로 ‘소프트웨
    어’는 不在한 가운데 ‘지어놓고 보자’는 식임을 알 수 있다. 그렇잖아
    도 시민을 위해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할 사업이 산적해 있으며 여기에 따
    른 예산확보도 어려운 실정이 아닌가.

    이렇듯 창원시의 역사박물관 건립계획은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시의 재정
    형편이나 중복투자로 인한 예산낭비란 측면에서, 그리고 가치있는 전시유
    물 확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볼 때 옳지 않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창원시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몰라도
    무리하게 건립계획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엄연한 지방자치제 하에서 시민
    의 뜻에 반하는 市政이나 대형 사업은 용인돼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창원시
    의 ‘역사박물관’ 건립계획은 철회돼야 마땅한 것이다.목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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