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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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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말의 체취와 체온, 격(格)- 이승주(시인)

  • 기사입력 : 2010-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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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에 대해서 사적인 얘기부터 먼저 하자면, 남들이 나더러 말에 대해서 예민한 편이라고 하는 지적에 나는 동의한다. 그것은 내 기질적인 특성으로 해서도 그렇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말과 심리를 매만지는 연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하튼 나는 남들이 하는 말이나 농담에도 좀 진지하게 반응하는 편이고 더러는 상처를 받는다. 그것은 물론 나의 수양과도 관계가 되겠지만, 그 상처가 가슴이나 뇌리에 못박히면 오래간다.

    하여, 어느새부턴가 나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의 사귐이나 모임의 자리를 가리는 편이다. 그리고 단호하지 못한 성격 탓으로 불가피하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그때부터 심리적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당신도 얼마쯤은 그러하리라. 공자도 예순에 이르러서야 이순(耳順)이라고 하셨지 않은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학교 다닐 때, 똑똑하고 정직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사회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일부 정치인, 학자, 공직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책임의식이 결여된 기만과 술수와 당리당략에 따른 비방과 모함의 말들을 보면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이 똑똑하기는 하겠지만 정직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런 말들은 좀 심하게 말하자면 죄악의 말이라 할 것이다.

    말에도 무릇 격(格)이 있고 체취(體臭)와 체온(體溫)이 있다. 자기를 높이는 말과 상대방을 높이는 말은 격이 다르다. ‘향기’라는 말과 ‘냄새’라는 말은 체취가 다르지 않은가. ‘향기’라는 말은 꽃밭에 든 듯 정신을 맑게 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하지만, ‘냄새’라는 말은 왠지 역한 느낌이 들고 코를 쥐게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그 말의 따뜻함이나 차가움을 경험한다. 이를테면 ‘배신’이나 ‘음모’, ‘술수’, ‘보복’이라는 말은 비수처럼 서늘하고 차갑지만, ‘사랑’이나 ‘배려’, ‘나눔’이라는 말은 우리의 마음을 봄볕처럼 따뜻하게 덥혀준다. 말이 서로를 냉랭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오랜 반목을 끝내고 두 손을 맞잡고 포옹하게 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바야흐로 또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6·2지방선거가 이십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눈에 잘 띄는 웬만한 빌딩의 외벽은 그지없이 선량하게만 보이는 후보자들의 사진을 커다랗게 박아넣은 현수막들로 일찌감치 도배되었다. 평소에는 평생 얼굴 한 번 볼 일 없을 것 같은 후보자들도 얼굴 알리기에 바쁘다. 유권자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오랜 지인이라도 만난 듯 악수를 청하고 허리를 숙여 한 표를 부탁한다. 당장 절실하기 때문이다.

    선거철은 화려한 치장을 한 말들이 난무하는 한바탕이다. 선거철이 아니라도 나는 기름기가 번들번들한 말들보다는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몸에는 좋은 현미처럼 진정이 담긴, 다소 어눌하더라도 소박한 말이 좋다. 일전에 공천 심사를 앞두고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에게 거액의 돈다발을 건네려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경기도 여주 군수, 각종 비리와 뇌물 수수 혐의가 드러나자 위조여권으로 도피성 혐의의 출국을 꾀한 사실이 들통나 남우세를 당한 충남 당진 군수를 보라.

    어디 그들뿐이랴, 그네들 역시도 이전에 군수에 당선될 때 만나는 유권자들에게 다른 후보자들보다 자기가 가장 깨끗하고 충실한 군민의 머슴이 되겠노라 외쳤을 것이다.

    이번 선거철에는 부글부글 위선의 거품이 묻어나는 말, 비방의 말보다는 사람과 말의 격을 높이는 진실한 말들로 선거의 격도 높아졌으면 좋겠다. 또 우리 사회가 힘들고 어려울수록 서로에게 역겨움과 상처를 주는 말보다는 신선함과 관용과 이해의 맑고 따뜻한 말들로 넘쳐났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말은 사람들 사이에 봄기운이 돌게 하고, 냉소와 야유의 말은 증오의 각질을 더욱 두껍게 할 뿐이므로.

    이승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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