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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취재] 경남에 독립·예술영화를! (2) 다양한 영화·영화공동체의 가치

‘문화 향유권’ 높이고 ‘영화 생태계’ 살찌우고

  • 기사입력 : 2015-11-1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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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함께라면 영화제’로 영화 ‘이다’ 상영을 마친 뒤 김재한 감독이 관객에게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30만이 사는 경남에는 독립·예술영화를 볼 수 있는 고정 스크린이 없다. 질문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굳이 다양한 영화를 봐야 하나?' '피보다 가까운'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저스틴 러너 감독은 자신을 '미국에 잘못 태어난 유럽·아시아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가 접했던 다양한 해외 영화들이 영화를 펼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 찍고, 우리 지역 출신 배우가 출연한 영화는 관객들이 또다른 재미를 느끼게 하는 요소다.

    관객들은 영화로 지역공동체를 되찾고, 고유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창원 출신 김한울 감독의 '김밥'을 본 한 관람객은 '어릴 때 돝섬에 소풍을 자주 갔는데 떠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창동과 같이 지역의 과거를 조명할 수 있는 영화를 많이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다양한 영화의 관람

    영화는 대중이 가장 접근하기 쉬우면서도, 다른 예술장르와는 달리 태생적으로 다양성을 위협받기 쉬운 장르다. 영화의 제작과 배급에 들어가는 자본의 크기가 다른 예술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전문가들은 생물학적으로도 종의 다양성을 보존받아야 발전을 이루듯, 다양한 영화가 상영돼야 영화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지속된다고 말한다. 다양한 규모와, 장르, 배우들로 구성된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돼야 풍성한 영화 생태계를 보장한다.

    다양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영화계 자체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관객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색다른 시각과 간접경험들이 작용하는 덕분이다.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김이석(47) 교수는 “영화는 예술로서도 존재한다. 예술영화는 자신을 되돌아본다든가, 영화로부터 위로받는 등 우리가 예술에서 기대하는 많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며 “꼭 독립·예술영화라고 구분지어 명명하지 않아도, 다양하고 좋은 영화를 놓친다는 것이 안타깝다. 특히 지역의 경우 평등해야 할 문화향유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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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열린 제1회 모퉁이극장 관객영화제에서 한지성 관객 프로그래머가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가치

    멀티플렉스에서 보기 어려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상설영화관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을 제외하면 전국에 30여개가 있다. 이곳은 다양한 영화를 찾으려는 사람들, 영화공동체의 집결지가 된다. 자연스레 영화정보를 공유하거나, 영화를 매개로 한 활동들을 이어나갈 수 있다. 영화 공간이 생기면서, 다양한 영화제가 생겨나기도 하고, 영화토론회나 영화 독서모임, 전시를 가질 수 있다.

    또한 멀티플렉스 시장에서 밀려난 독립·예술영화가 상영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을 제공하는 곳인 동시에, 이들 영화와 감독, 배우를 홍보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독립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 방법을 바꾸자 영화인들이 ‘영화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곳’이라며, 즉각적인 지원 중단에 반발한 것도 이때문이다.


    ▲영화를 뛰어넘는 영화공동체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없는 지역에서는 다양한 영화를 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 비상설로 영화를 틀거나,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빌려 영화공동체끼리 보고 싶은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전용관 건립은 큰 자본의 투입이 필요하지만, 카페·도서관·문화회관 등의 공간을 찾아 상영회를 여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 영화 관람이 가능하다. 쉽게 보기 힘든 영화를 보고, 토론을 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공동체는 한 명의 관객을 다양한 영화로 안내하고, 건강한 관객으로 육성시키는 도구가 된다. 영화 상영 자체가 사람을 모으기에 지역공동체 회복이나 원도심 재생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 지역의 노력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없는 경남은 영화 다양성 유지에 민간의 노력이 컸다. 비상설 영화관인 진주 ‘독립영화관 인디씨네’는 사회적기업인 진주미디어센터가 지난 2008년부터 운영하는 곳으로, 매달 2편의 독립·예술영화를 주말마다 상영해 도민들의 영화 관람의 폭을 넓히고 있다. 보고싶은 영화를 직접 가서 보여주는 공동체 상영을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올해 8번째로 개최한 ‘진주같은 영화제’ 등 기획전을 통해서도 다양한 영화 관람 기회를 제공한다.

    ‘함께라면 영화제’는 창원의 김재한 영화감독과 설미정 제작자가 저소득층에 라면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데서 시작한 상영회다. 도내 극장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매달 한 편씩 상영한다. 최근에는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장소를 제공해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독립·예술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도 민간의 힘으로 생겨나고 있다. 경남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이 다시 생기게 된다. 다달이 목요상영회를 가지며 프랑스 영화를 상영해오던 ACC프로젝트 하효선 관장과 경남대학교 서익진 교수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 창동 SO극장을 리모델링해 ‘시네아트 리좀’의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지자체의 지원 없이 사비로 1억 1천만원을 들여 지하 극장의 44석 의자, 스프링클러 시스템, 영사기 등을 설치하고 휴식공간과 갤러리 공간이 될 3층 리모델링도 완료했다. 티켓팅 시스템 등을 갖춘 뒤 오는 20일께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 관장은 “로컬-글로벌 네트워킹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예술 영화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많은 사람들의 토론도 이끌어내고 싶다. 또한 영화뿐 아니라 인문학적 접근이 가능한 다양한 테마 전시 등도 계획 중이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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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김이석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내 삶의 경험이 바뀌는 것”


    -우리나라 영화 다양성은 어떠한가.

    ▲영화의 제작과 배급, 상영을 한 기업의 계열사가 쥐고 있는 ‘수직계열화’ 때문에 폐해가 생기고 있다. 이들이 만든 영화, 혹은 선택한 영화가 집중적인 마케팅을 거치고 상영관도 장악하면서 관객을 모아, 나머지 영화는 상영 기회를 보장받기 어렵다. 영화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린벨트와 같아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없는 지역은 더욱 상영·관람 기회를 찾지 못한다. 이때문에 영화관 티켓의 3~5%를 징수해 모으는 영화발전기금이 그 기금을 내는 지역을 위해 쓰이지 않고 있어, 관객들과 지역사회가 직접적인 이득으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경남의 영화 상영 현황을 어떻게 보나.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세상에 수없는 맛들이 있는데, 우리 동네에는 자장면만 판매하고 먹을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지역민들이라면 화가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르신들이 많은 지역에는 지나간 옛 영화를 상영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래밍이 있을 수 있는데, 너무 표준화, 획일화돼 있는 것이 문제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과 같은 공간, 어떤 가치를 지니나.

    ▲멀티플렉스부터 접한 세대들은 불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이 주는 추억, 공간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 극장들은 극장마다 색깔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극장이 있었다. 해외에서도 오래된 극장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많은데 그것은, 극장은 빈 건물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기억이 녹아들어 있는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멀티플렉스가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건 사실 삶이 바뀌는 것이다. 내 삶의 경험이 바뀌게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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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오후 부산시 중구 중앙동 모퉁이 극장에서 열린 제1회 모퉁이극장 관객영화제에서 한지성 관객 프로그래머가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슬기 기자/

    /눈에 띄는 영화공동체/ 관객과 관객을 이어주는 ‘부산 모퉁이 극장`

    관객이 프로그래머가 돼 영화 선정
    상영 후 관객끼리 토크프로그램 진행

    감독·배우도 초청해 이야기 나눠
    김현수 대표 “생산하는 관객문화 조성”


    “관객이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관객이여 길을 터주오.”

    지난 12일 밤 12시가 다 돼 가는 시각, 남녀노소, 외국인까지 포함해 40여명이 빼곡히 들어찬 방 안에서 노래가 울려퍼졌다.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개사곡이 나오는 이곳은 부산 원도심인 중앙동 40계단 근처에 있는 ‘모퉁이 극장’. 제1회 모퉁이극장 관객영화제가 열린 이날은 관객 한지성씨가 프로그래머가 돼 선정한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을 보고 관객 토크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영화가 락페스티벌이 열리는 내용을 담은 만큼 파티플래너인 한씨는 극장 내부를 락페스티벌처럼 꾸미고, MC를 보는 관객 김나영(40), 김동길(36)씨는 영화에 나오는 히피처럼 옷을 입었다. 진행에 따라 관객들은 모두 한 마디씩 감상평을 남겼다. 영화가 음악을 주로 다루고 있어 밴드 ‘오월열한시’가 초대돼 노래를 이어나갔다. 어두운 조명 아래 관객들이 돗자리 위에 앉아 노래를 따라부르고,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영화제를 즐겼다.

    비영리단체인 모퉁이 극장은 관객을 위한 극장을 만들고 싶다는 김현수(37) 대표의 생각에서 지난 2012년 5월 문을 연 곳이다. 극장은 영화제뿐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정기상영회에도 영화 상영 전 모든 관객이 서로 인사하고, 영화 상영 후 관객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감독과 배우를 초청해 영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김 대표가 부산 중구청에서 관객문화교실을 열면서, 영화를 보고 감상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진 관객들이 이 극장을 찾고, 관객활동가로 영화제 일을 돕게 되기도 했다. 김가이(31)씨도 그중 하나. 영화감상을 그림이나 글, 사진으로 표현하면서 영화를 선택해 보는 주체성을 띠게 됐고 영화에 대한 애정이 관객으로까지 가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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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오후 부산시 중구 중앙동 모퉁이 극장에서 열린 제1회 모퉁이극장 관객영화제에서 관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이슬기 기자/

    “방해받지 않고 혼자 영화 보는 걸 즐겼는데, 모퉁이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를 보고 여럿의 감상을 듣는 것이 영화를 보는 것 만큼이나 즐거워서 관객과의 만남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좋고요.”

    김 대표는 앞으로도 모퉁이 극장에서 소비만 하는 관객이 아닌, 생산하는 관객 문화를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영화를 계속 보게 해 주는 사람들을 응원하자는 뜻에서 만든 곳입니다. 앞으로도 아래로부터의 관객문화운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상영도 중요하지만 영화주체성·의식을 갖고 있는 좋은 관객, 건강한 관객 한 명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관객이 계속 다양한 영화를 보게 되니까요.”

    글·사진= 이슬기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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