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8일 (수)
전체메뉴

에베레스트에 오른 월급쟁이 이야기 (5) 끝도 없는 고산병과의 사투

숨 쉴 수 없었고 먹을 수 없었고 잠들 수 없었다
기침을 격하게 해서 갈비뼈가 부서진 느낌
몸은 받아들이지 않지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역설

  • 기사입력 : 2016-02-24 22:00:00
  •   
  • 히말라야 원정의 성패는 고산병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고소증세는 원정기간 내내 끼니처럼 따라다닌다. 인간이라면 예외 없다. 남대문 지퍼 내릴 힘이 없어 누군가 지퍼를 내려줘야 소변을 본다. 무기력이 온몸을 지배해 시커먼 크레바스를 가로지르는 알루미늄 사다리 앞에서 주저앉는다. 다리에 힘이 풀려 드러눕고 일어서고 다시 드러눕기가 몇 번인지 모른다. 귀에는 벌이 날아다니고 머릿속은 소주 3병을 들이켠 다음 날의 숙취와도 같다. 잘 수 없는 것, 먹지 못하는 것 모두 고소증세다. 자신이 보고도 믿을 수 없고 태연하려 해도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고통은 또 어떤가. 아서라, 혀를 내두른다. 머리도 흔든다. 고소증세만 생각하면 에베레스트 쪽으로 오줌도 누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도 훌륭한 치료법은 있다. 내려서는 것이다. 올랐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고개를 쳐들고 계속 오르려는 인간에게 자연이 베푸는 자비는 없다. 비단 산에서만은 아닐 것.

    잊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내려가야 한다. 고소증세는 고도를 높이면 어김없이 나타나고 고도를 내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없어진다. 신이 오만한 인간에게 주는 근사한 처방이다.
    메인이미지
    로체페이스는 로체 봉우리를 향해 수직으로 뻗은 1000m 빙벽이다. 이 빙벽을 올라야 캠프3에 갈 수 있다. 대장(오른쪽)과 함께 찍은 사진 뒤편으로 개미처럼 사람들이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고소 적응을 위해 5020m 페리체 뒷산 봉우리에 오르기로 했다. 정면으로 세계 3대 미봉(美峯, 세계 3대 미봉: 아마다블람, 마차푸차레, 마테호른) 중 하나인 아마다블람(6856m, 어머니의 보석상자라는 뜻)이 보이고 뒤편으로 로부체, 촐라체가 병풍같이 펼쳐진다. 책에서만 봐 오던 봉우리를 두 눈으로 목도하며 걷는 기쁨도 잠시, 걷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처음으로 호흡이 곤란해지는 지경을 경험했다. 달에 착륙한 우주인같이 부자연스럽다. 괴로워 어찌할 줄 몰랐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거참, 어이없어 웃음이 나온다. 돌 계단이라도 나올라치면 심호흡을 몇 번이고 가다듬어야 한다. 숨이 꼴딱꼴딱 차오르고 가슴팍은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함에 미칠 지경이다. 욕이 절로 나온다. 움직일 수 없는데도 후배와 대장님은 돌탑을 쌓고 기도까지 한다. 기도하면 고개를 숙여야 하고 엄숙해야 되고 그러면 호흡하기가 힘들어질 텐데. 사소한 일에도 제 몸뚱아리만 걱정한다. 대원들은 내가 내 걱정만 하고 있는 걸 알까? 이렇게 나는 발가벗겨지고 있었다. 자신과의 싸움이 어떤 건지 이제야 알게 된다. 이래서 원정이 힘든 모양이다. 그런데, 이곳에선 원래 그렇단다. 그게 정상이란다.

    우리에게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곳이다. 속을 뒤집어 놓고 머리가 깨어지며 묵직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여기서는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확실하다 믿어왔던 모든 것, 오로지 이것만이 사실이라 생각한 것이 이곳에선 작동하지 않았다.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할 수 없고 안과 밖이 바뀌고 속과 겉이 뒤집어진 곳, 혼란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이 원정의 주인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맑아지지 않는 머리통과 항상 울렁거리는 속으로 히말라야 등반은 언감생심인 듯싶다. 이전, 내가 절망하던 한 날이 다시 나를 지배한다. 신이 있다면 나를 한 번 더 힘껏 분질러라 고함쳤다.
    메인이미지
    캠프2(6400m)에 도착한 후 다리에 힘이 풀려 곧바로 주저앉은 모습


    어느 날은 밥 먹다 트림이 나왔다. 트림으로 호흡의 균형이 깨져 100m 달리기를 한 듯 숨을 헐떡였다. 밥을 넘기기가 매우 힘들다. 한 숟갈을 뜨고 하늘을 몇 번 쳐다보고 다시 한 술 뜨기를 식사가 마칠 때까지 계속한다. 매 끼니마다 이 짓은 반복된다. 잘 들어가지 않음에도 억지로 먹는다. 먹은 만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불문율이 있다. 숟가락 놓기 전에 세 번 더 먹기. 토할 줄 알면서 세 번을 더 퍼 넣고 숟가락을 놓는다. 마지막 하나까지 꾸역꾸역 넣어라. 그래야 산다. 먹는 게 노동하는 것처럼 힘이 든다.

    진도를 나가보자. 이번에는 똥이다. 모두 토하고 물과 스프만 먹고도 나오는 게 똥이다. 신기할 따름이다. 에베레스트에서 똥을 눌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심호흡 크게 하고 똥을 눈다. 바지 벗는 데만도 호흡은 이미 가빠 온다. 똥을 누기도 전에 숨이 차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본론으로 들어가면 황천길을 왔다갔다 한다. 똥이 먼저인지 호흡이 먼저인지 참으로 난감하다. 똥을 누려면 호흡을 할 수 없어 힘을 줄 수 없고, 호흡을 하려면 힘을 주지 못해 똥을 누지 못한다. 엉덩이가 얼어가는 건 둘째 문제다. 오래 앉아 있자니 숨은 넘어가고 그냥 일어나자니 마음 먹은 게 아깝다. 그곳은 자꾸 얼어간다. 결국 성공하고 텐트로 들어가면 대원들의 축하의 박수가 터진다. 으쓱하다.

    메인이미지
    캠프2 텐트 안에서 고소증세를 겪고 난 직후.


    기쁜 중에도 등반은 어김없이 계속된다. 캠프3을 오르며 드러눕고 다시 서고, 다시 드러눕고를 반복한다. 피로한 몸은 공중분해될 것 같고, 지친 다리는 힘을 잃어간다. 그러나 젠장, 매정하게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너무도 선명하다. 기침을 격하게 해서 갈비뼈가 부서진 것 같은 느낌, 몸은 받아들이지 않지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역설, 진이 쏙 빠져 피곤해 미칠 지경이지만 호흡곤란과 추위로 잠을 이룰 수 없는 황망함. 70도 각도의 빙벽이 1000m로 뻗은 ‘로체페이스’에 확보줄을 걸고 기대면 가슴이 답답해 호흡을 할 수가 없다. 앞발로만 서 있어야 해서 발이 아팠으나 수직의 빙벽에 발 디디며 쉴 곳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지만 혼자 울음을 참아가며 캠프3에 올랐다. 막상 나를 기다리던 후배와 대장님을 보니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힘들고 서럽고 억울해서 캠프3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부여잡고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고 이 고통을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었다. 그날 밤은 또 어찌 그리 추웠을까. 세 명이 침낭 2개로 날밤을 새웠다. 모두들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내가 잠시 눈을 부쳤을 때 침낭 하나를 온전히 다 덮었던 모양이다. 분명히 반만 덮고 잤었는데…. 함께 울던 동지가 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오래됐지만 지면으로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캠프3 고소적응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나는 히든 크레바스(hidden Crevasse)에 빠졌다. 다쳤던 왼쪽 발목에 통증이 심해 혼자 뒤처져 하산하는 중에 사단은 벌어졌다. 빙하와 빙하 사이의 큰 틈을 크레바스라 하는데 그 틈이 눈으로 덮여 있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크레바스를 히든 크레바스라 한다. 크레바스인지 알 수 없어 이 위로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지만 어느 순간, 덮인 눈이 싱크홀처럼 꺼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때 재수 없이 그 위를 지나는 사람은 빠지게 되는 것이다.

    메인이미지
    전면의 빙벽이 로체페이스이다. 그 끝에 캠프3이 있다.


    나는 불행 중 다행으로 이 크레바스에 온 몸이 빠졌으나 양팔이 빙하 사이에 걸렸다. 그래도 빨리 빠져나오지 못해 추가 함몰이 발생하면 꼼짝없이 지옥과 같은 시커먼 틈 사이로 떨어진다. 아무도 없는 설벽에 혼자 고함쳤다. 죽을 힘을 다해 허공을 파닥거렸다. 어찌나 발버둥을 쳤던지 곡절 끝에 올라와 앉으니 사지에 힘이 풀려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용을 썼으니 사생결단의 심호흡이 이어진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가 빠진 구멍만 시커멓게 뚫려있다. 오줌이 나올 뻔했다. 바람은 또 왜 그리 미친 듯이 불어 대는지. 크레바스에 빠진 경험은 혼을 빼놓았고 경황이 없는 중에 오른손 우모장갑이 유유히 바람에 날아가고 있었다. 내 신세같이 흐느적거리며 날아간다. 화를 낼 힘도 없이 날아가는 장갑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느닷없는 물음이 번개같이 내리친다. 나는 왜 이곳을 오르는 걸까? 산에 가면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왜 이런 거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가? 이리 힘든 곳을 왜 그리 고집부리며 왔을까?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왜 오르는가?

    메인이미지
    정상 등반 직전에 페리체 마을로 후퇴해 재정비 할 때 찍은 사진. 조금이라도 내려오면 이렇게 고소증세는 사라진다.


    ☞저소병= 고산병이 있으면 저소병도 있다. 고소에는 호흡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면 저소에는 실없는 사람처럼 마냥 웃어대는 즐거움이 그 증상이다. 뇌에 부족했던 산소가 쏟아져 들어가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4,000m 페리체에서 마리화나를 두어 대 피운 사람처럼 그리도 웃어 댔는데 훗날 알고 보니 이것은 저소 증세였다.

    ☞Walking tip= 히말라야에서 걸을 때는 멈추지 말 것(물론 어렵겠지만). 잔걸음을 걷더라도 멈추지 않고 걷는 것이 중요하다. (넓은 보폭으로 크게 걸을 수도 없겠지만) 아장아장 걸으며 쉬지 않고 가는 것이 결국 제일 빨리 걷는 방법이다. 한 번 쉬어버리거나 멈추게 되면 하염없다.

    장재용(STX조선해양 혁신추진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