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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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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산 등산객 피살사건 범인 어떻게 잡았나

DNA가 결정적 증거...수사 곳곳에 허점

  • 기사입력 : 2016-05-03 14: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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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구 미제로 남을 뻔한 ‘무학산 등산객 피살사건’의 피의자 A(47)씨가 사건 발생 189일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은 단서가 거의 없어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을 우려가 컸지만 검찰과 경찰의 끈질긴 수사로 결국 범인을 밝혀냈다.

    ◆사건개요=마산동부경찰서는 다른 절도 사건으로 대구구치소에 수감 중인 A(47)씨를 강간 등 살인, 사체은닉 등의 혐의로 검거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1시 57분께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무학산 6부 능선 등산로에서 혼자 하산하던 피해자 B(당시 51세)씨를 성폭행하기 위해 뒤따라 갔다가 미수에 그쳤다.

    A씨는 B씨가 자신의 얼굴을 봤고 범행이 발각될 것이 두려운 나머지 B씨를 폭행하고 목졸라 살해했다. A씨는 살해 후 범행을 감추기 위해 현장에 있던 흙과 낙엽으로 B씨의 시신을 덮어 은닉을 시도했다.

    피해자 B씨는 지난해 10월 28일 오전 11시 30분 무학산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고 정오께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원계마을 CCTV에 등산로에 오르는 모습이 찍혔다.

    오후 1시 10분께 산 정상에 도착한 B씨는 남편에게 사진과 함께 ‘사과를 먹는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연락이 두절됐다.

    남편의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은 하루 뒤인 29일 오후 3시 40분께 무학산 6~7부 능선 부근에서 숨진 B씨를 발견했다.

    국과수 부검결과 B씨의 사망원인은 머리 뒷부분에 받은 강한 충격으로 인한 뇌출혈로 밝혀졌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타살로 단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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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 수사기법까지 도입…잇따른 용의자 특정 실패=경찰은 사건 발생 닷새만인 지난해 11월 2일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김정완 마산동부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까지 꾸렸다. 도내 강력사건 신고보상금 중 역대 최고액인 1000만원도 내걸었다. 또 창원시내 전역 4000여대의 CCTV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분석하고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DNA 증거 21점 중 12건에서 남성 9명의 DNA를 찾아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하는 등 증거 확보에 주력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얻지 못했다.

    경찰은 또 일부 목격자를 상대로 최면수사까지 벌여가며 용의자 인상착의 확보에 나섰고,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정보를 추적해 용의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최신 수사기법까지 도입했다. 그 결과 용의자로 추정되는 몇 사람을 지목해 강도높은 수사를 벌였지만 모두 용의자가 아닌 것으로 결론내렸다.

    잇따른 용의자 특정 실패로 사건은 자칫 미궁에 빠질 조짐을 보였다. 증거 자체도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줄 시민제보도 거의 끊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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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NA가 결정적 증거=사건 해결의 열쇠는 의외의 곳에 있었다. 경찰은 일부 목격자가 진술한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은 보통 체격의 40~50대 남성'을 용의자 인상착의로 추정하고, 당시 무학산을 올랐던 비슷한 남성 4명을 순차적으로 불러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마지막 용의자로 지목된 남성을 지난 1월부터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차례 불러 조사를 했다. 그러다 지난달 경찰이 이 남성에게 또 한 번 출석을 요구하자 이번에 그는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에 불응했다. 이에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이 남성을 재조사하기로 했다.이 과정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아 기존에 감정을 의뢰했던 피해자의 옷, 소지품 등 유류품 17점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에 지난달 18일 재감정을 의뢰했다.

    사흘 뒤인 같은 달 21일 경찰은 대검찰청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결과를 통보받았다. 피해자가 착용하고 있던 장갑에서 검출된 DNA가 대검찰청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돼 있던 A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후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경찰은 보강증거를 수집 A씨를 상대로 수사를 벌인 끝에 A씨에게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거제에서 노부모와 살던 A씨는 지난해 10월 3일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마산으로 넘어와 어시장과 인근 인력시장 등을 전전했지만 마땅한 일자리는 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그는 등산을 위해 사건 당일 무학산에 올랐고, 우연히 만난 B씨를 보고 충동적으로 성폭행을 시도하려 뒤따라 갔다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A씨는 사건 발생 직후 창녕, 양산, 영천 등지를 배회하다 주차된 차량에서 금품을 훔친 혐의로 경북 영천경찰서에서 검거, 지난 1월 5일 대구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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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수사 곳곳에 허점 드러나=하지만 A씨는 6개월간 계속된 수사과정에서 단 한번도 용의선상에 오른 적이 없었다. 경찰은 수천대에 달하는 CCTV와 블랙박스 영상 등을 분석해 사건 당일 무학산을 오른 100여명의 신원을 파악하는 등 용의자를 추적했다. 또 무학산 인근 거주자들 중 성폭력 전과자나 출소자, 독신자 4000명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했다. 통신수사 등도 광범위하게 진행했다.

    사건 당일 A씨는 무학산 정상 부근과 마산여중 부근 광명암 CCTV에서 두 차례 모습이 찍혔으나 용의자로 지목된 적은 없었다. 게다가 A씨는 지난 1999년과 2007년에 성폭행, 특수강도 혐의로 복역한 전과도 있었다. 경찰은 “CCTV 영상만으로는 인적사항이나 범인을 특정하기 어려웠고, 조사 대상자가 많아 근거리 거주자를 우선적으로 조사하다보니 A씨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11차례 걸쳐 현장감식을 했고 피해자의 유류품을 포함한 증거물 163점을 국과수에 감정의뢰를 했으나 피의자 A씨의 DNA와 관련해서는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피의자 A씨의 DNA가 검출되지 않은 것은) 시료 채취 방법 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답변을 국과수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국과수 박기원 법생화학부장은 “경찰 측으로부터 긴급감정을 의뢰해 그 매뉴얼에 따라 진행하다보니 피의자의 유전자를 놓친 부분이 있었고, 검찰은 더 정밀한 감정으로 유전자를 확보한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검·경과 합의해 더 정확한 감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만약 재감정을 하지 않아 A씨의 DNA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수사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 장소가 산이라는 점도 수사 장기화에 한 몫했다. 용의자를 특정하고 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경찰은 목격자 제보에 크게 의존했다. 목격자들은 최면수사를 통해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의 인상착의를 추정했지만, 실제 피의자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경찰은 수사본부 체제를 유지하면서 끈질기게 수사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인사발령으로 수사책임자(수사과장)을 교체한 바 있어 수사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냈고, 용의자 특정에 난항을 겪으며 수사가 장기화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김정완 마산동부서장은 “피의자에 대한 범죄사실, 증거관계를 명백하게 해 검찰 송치와 공소유지 등 필요한 부분에 대해 검찰과 협력 체제를 유지하겠다”며 “장기간의 수사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경찰 수사에 협조해준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언진 기자 hop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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