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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를 찾아서] (14) 가야차(伽倻茶)

가야문화는 차향으로 시작되다
허왕후 시집올 때 가져온 차씨
백월산 ‘죽로차’로 문헌에 나와

  • 기사입력 : 2017-10-1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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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왕후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수품

    가락국 시조대왕 김수로(金首露) 왕의 왕후 허황옥(許黃玉)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혼수품 중에는 옥합에 든 차(茶)의 씨앗을 비롯, 수를 놓은 비단옷과 금, 은, 주옥으로 만든 장신구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것은 가야시대에 차의 전래를 유추할 수 있는 것으로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타난 기록이다. 따라서 가야문화는 차로부터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때가 서기 48년이다.

    구한말의 국학자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도 인도차의 전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적혀 있다.

    ‘김해의 백월산에는 죽로차가 있다. 세상에서는 수로왕후인 허씨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라고 전한다(金海白月山有竹露茶 世傳首露王妃許氏 自印度持來之茶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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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차 시배지 복원을 위해 경남문화연구원 회원들이 해마다 백월산 자락 곳곳에 차나무를 심어 가꾸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의 최초 전래 설보다 780년이나 앞선 것이다. 그렇다면 가락국의 왕도(王都)였던 김해에서 발견되고 있는 야생차나무는 지리산 차나무보다도 오래된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최초가 된다.

    삼국유사에는 또 서기 661년에 즉위한 신라 법민왕 때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제사를 부활하면서 제사상에 술, 떡 등과 함께 차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곧 가야에서 차를 재배해 음료로 마셨음을 뜻한다. 또 김수로왕 당시에 차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구전설화도 전해진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당나라의 차씨가 신라에 전래되기 이전에 가락국 종묘의 차례를 지낸 기록이 보인다. 즉 가락국 김수로왕의 15대 방손(傍孫)임을 스스로 밝힌 신라 제30대 문무왕은 즉위년(661) 3월 수로왕의 묘(廟)를 종묘에 합조(合調)하여 제사를 이어 나가라는 명을 내렸다.

    이런 기록을 보면 차는 인도에서 허황옥과 그의 오빠 장유화상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차문화의 시초는 20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해의 차는 조선시대에 ‘장군차’로, 차나무는 ‘장군수’라는 이름으로 역사기록에 자주 등장한다. 또 조정에 진상하는 찻잔을 이곳 김해에서 구웠다.

    1611년 왜국은 동래부사를 통해 김해의 찻잔 공급을 요청했으며 이렇게 공급된 찻잔을 ‘긴카이 차완’이라 부르면서 신주 모시듯 했다고 한다. 김해지방에서 이처럼 차와 도자기가 유명했던 것은 가야시대부터 차문화가 발전해온 결과로 보인다.

    또 김해지방에서 출토된 가야토기 가운데 찻잔 형태의 토기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가야시대에 차문화가 번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야차는 인도 아삼지방이 원산지

    차나무는 식물학상 산차아목(山茶亞目), 산차과(山茶科), 차속(茶屬), 차종(茶種)의 종자 식물로서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이다. 차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의 동남부와 인도의 아삼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품종은 중국종과 인도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보통 차라고 하면 차나무의 어린 잎을 따서 음료로 가공한 식품을 말한다. 차나무는 키가 2~3m인 관목(灌木)과 30여m에 달하는 교목(喬木)이 있다. 조선불교통사에 기록된 것처럼 백월산에 차나무가 있다면 인도의 아삼종일 것으로 보인다. 아삼종은 잎의 길이가 20~30cm나 되는 큰 나무로 잎은 얇고 부드러우며 짙푸른 색이다.

    김해지방에서 발견되는 야생차나무도 인도 아삼종이라면 오랜 세월 동안 우리나라 풍토에 알맞게 자연적으로 개량됐을 것은 당연하다. 지금 지리산 화개골을 비롯한 전남 보성, 제주도 등 전국에 분포돼 있는 차나무는 대부분 잎의 길이가 4~5cm인 중국 소엽종(小葉種)이거나 개량된 것이다.



    ▲분성산 자락 가야차나무 명맥 유지

    가야 고도(古都) 김해시에는 많지는 않지만 차나무가 발견되고 있다. 허왕후가 가지고 온 차씨가 싹을 틔운 후 번창을 거듭해 씨가 씨를 낳고 2000여년의 세월을 지키면서 과연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해 왔을까.

    이러한 차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김해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분성산과 그 아래 동상동 대성동 구산동 등 산자락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나 지금은 도로와 택지개발 등으로 불도저에 밀리고 포클레인에 뿌리째 파헤쳐지는 등 수난을 당해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예로부터 차밭골이라 불리는 김해시 동상동 분성산 계곡에는 현재 고목 형태의 야생 차나무들이 겨우 가야차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차나무가 허왕후와 관련이 있다면 김해지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차 전래지로서 차문화를 태동시킨 고장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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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시대 토기찻잔./국립김해박물관/



    ▲가야차 시배지 복원 노력

    현대인의 기호음료로서 한국전통차의 효시를 이룬 가야의 차문화. 이러한 차문화를 반영하듯 김해시와 인근 지방에는 차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김해시 동상동에는 차밭골, 진례면에는 차나무가 많이 나는 골짜기라는 다곡(茶谷)이 있고 창원시 동읍의 다호리(茶戶里), 김해시의 다전로(茶田路) 등의 지명으로 보아 가야차와 연관이 있는 곳으로 보인다.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있는 백월산(白月山 453m)은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나온 기록에 따라 죽로차(竹露茶)를 찾기 위한 차인들의 차 유적 답사가 자주 이뤄지는 곳이다. 정상은 북면 월백리와 마산리의 경계 지점에 있지만, 권역이 월촌리 월백리 마산리와 동읍의 석산리 금산리 봉곡리 봉강리 등 2개 읍면 8개리까지 뻗쳐 광활한 봉우리 군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백월산에 차나무가 있었다는 흔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산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남백월산의 두 성인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수도생활을 기리기 위해 신라 경덕왕이 백월산에 남사(南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다. 또한 차나무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김해지방에는 ‘장군차’라는 이름으로 차나무를 대량 재배, 가야 차문화의 맥을 이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창원 백월산에도 10여년 전부터 경남문화연구원 회원들이 가야차 시배지를 복원하기 위해 해마다 산자락 곳곳에 차씨와 차나무를 심고 있다. 화양고개에서 백월산정 사이 등산로 곳곳에는 차나무가 제법 형태를 갖춰 가며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있다.

    따라서 김해를 비롯한 옛 가야 땅에는 차나무 재배 확대와 가야차 시배지 복원 노력으로 머지않아 차향(茶香) 가득한 가야 차문화가 다시 활짝 꽃피울 것으로 기대된다.

    글·사진= 이점호 전문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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