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6일 (목)
전체메뉴

[작가칼럼] 추억의 운동장에서- 하순희(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0-04-30 00:00:00
  •   
  • 지난 일요일, 모처럼 초등학교를 찾았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총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4월 셋째 일요일로 총동창회가 정해져 있는지 고향으로 가는 국도변의 학교 몇 곳에 안내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한 해 한 번씩 만나는 동창회는 동창들과 선후배들이 함께하는 자리여서 반가움과 설렘과 옛 추억이 어우러지는 시간이다. 지난해부터 동창회 준비로 바빴을 주관기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운동장에 들어서니 올해 임무를 맡은 후배들이 산뜻한 체육복을 입고 양쪽으로 줄을 선 채 박수로 맞이해 준다. 모두들 쑥스럽지만 반가워서 손을 흔들며 함박웃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천안함의 장병들과 호국영령들에 대한 추모와 감사의 묵념을 올린 뒤 천안함의 아픔을 새기며 예년보다 많이 축소한 동창회는 본래의 뜻을 살리며 알차게 진행되었다.

    특히나 주관을 맡은 동창회에서 뜻깊은 성금을 모아 좋은 일을 하는 중에 선뜻 큰마음을 내어 물질을 보시한 후배도 있어 더욱 대견하였다. 보시란 것이 많고 적음을 떠나 깨끗한 마음을 모으는 데 더 큰 뜻이 있긴 하지만 어려운 중에도 1000여만원의 물질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 후배의 행동은 더욱 마음에 감동으로 와 닿았다. 적선을 하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기쁨임을 그 후배는 일찌감치 알고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그러했다.

    지리산 아래, 지금은 60여 명의 후배들이 다니고 있는 모교는 언제나 아담한 모습으로 변함없이 우릴 반겨 준다.

    어린 날 우리들을 품어주고 안아서 키워준 모교의 수양 벚꽃은 올해도 어김없이 휘늘어진 모습으로 모두를 맞아주었고 화단의 돌 틈 사이 금낭화도 분홍빛 주머니를 매달고 예쁜 모습으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얼굴은 변해 주름진 훈장이 늘어났어도 마음만은 동심으로 돌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자연히 은사님들의 안부를 궁금해 하며 올여름 우리 동기만의 모임에서는 은사님을 모시자는 얘기도 오고 갔다.

    초등학교 시절, 내겐 지금도 잊히지 않고 감사드리는 선생님이 몇 분 계신다. 특히 6학년 때 은사님이셨던 그분은 편찮으신 어머니 병구완으로 진학을 포기한 나를 위해 5리 길 남짓한 자갈길을 자전거로 두세 번이나 집으로 오셔서 엄한 아버님께 중학교 진학을 허락해 달라고 다녀 가셨다. 뜻을 이루지는 못하셨지만 제자의 앞길을 걱정하시던 진심은 잊히질 않는다. 그 뒤 늦깎이로 내가 중학교엘 갔을 때도 늘 격려를 해 주셨던 분이다.

    사업을 하신다고 일찍 교단을 떠나셨지만 6학년 우리들을 위해 밤낮없이 실력을 다져 주시고 보살펴 주시던 그분의 열정은 내가 교육대학을 나온 후 첫 발령을 받은 임지에서부터 나의 교직 생활 동안 나를 돌아보게 하는 나침반이 되곤 했다.

    가슴에 좋은 스승을 가진 이는 무엇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석을 지닌 것이라고.

    살면서 생의 고비마다 도움과 격려를 주시고 이끌어 주셨던 몇 분의 스승님들이 계셨기에 올바른 선택을 하고 더 나은 길로 성장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일 년에 한 번씩 찾게 되는 모교의 운동장에서 추억에 젖어 본다.

    매년 이때 만나는 어느 후배는 늘 살갑게 맞아 준다. 무언으로 관심을 보여 주는 정겨운 마음들을 보며 생의 온기를 더욱 느끼게 된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기회가 주어질지는 몰라도 어린 날의 모교는, 고향은 시리고 허전한 날들을 알차게 채워준다. 삶에 새로운 활기를 주고 윤기를 주는 소중한 보금자리이다. 지금은 새로 지어진 옛 교실에 앉으니 지난날의 모습들이 영화의 스크린처럼 다가온다.

    동창회를 통해 서로 이어지는 전통과 진한 유대감을 느끼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되새겨 본 하루! 추억을 공유한 우리 모두는 머릿속에서 기억 속의 교가를 끄집어내어 부르며 함께 내년을 기약하였다.

    하순희(시조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