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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30) 박서영 시인의 통영 비진도

이 고독한 섬 절벽 끝에 슬픈 시가 매달려 있었다
보배에 비할 만한 섬 통영 비진도

  • 기사입력 : 2016-07-1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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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서영 시인의 시 조각을 떼어보면 심미적이면서도 감각적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이다. 글에는 지은이가 묻어난다더니, 박 시인 역시 그렇다. 편안하지만 날카롭다. 그래서 늘 진부하지 않고 명쾌하다.

    박 시인은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고성에서 나고 자랐고, 시의 세계로 인도해준 시는 최승호의 ‘북어’란다. 바다 생명체인 ‘성게’와 ‘꽃게’라는 시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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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영(왼쪽) 시인이 정민주 기자와 통영 비진도 산호길을 걷고 있다./성승건 기자/

    박 시인과 통영 바다를 찾았다. 곱고 영롱한 산호색의 바닷빛에 연신 탄성이 터진다. 시인 정지용이 미륵산에 올라 ‘문필로는 그 아름다움을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 까닭이 절로 이해된다. 바다 곳곳서 삐죽이며 존재감을 뽐내는 570여개 섬 가운데 눈과 귀가 반색할 비진도로 향했다.

    통영시 한산면 비진리 비진도에는 이름에 대한 유래가 두 개 있다. 산수가 수려하고 풍광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해산물이 풍부해 ‘보배(珍)에 비(比)할 만한 섬’이란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보배로운 곳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는 설이다. 어떻게 유래되었건 보배라는 이야기다. 어떤 섬이기에 보배라 칭할까?

    비진도는 8자 모양의 내항과 외항 2개의 섬이 550m의 사주(沙洲)로 아슬하게 이어져 있다. 사주를 기준으로 한쪽은 부드러운 모래밭이고 반대쪽은 둥그런 몽돌밭이다. 어느 누가 딱 잘라 나눠놓은 것도 아닐 텐데 참 기묘한 지형이다. 비진도의 바다는 깊이에 따라 색의 층이 선명해 대가의 명작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에 질세라 파도가 온몸 부서져라 희생하며 청량한 제 목소리를 낸다. 한바탕 눈과 귀를 호강시킨 후 박 시인과 비진도의 ‘산호길’을 걸었다. 산들거리는 바람결에 초록으로 물든 통성명 못한 나무들이 바스락거린다. 좁고 불친절한 길이지만 반갑다. 시원스레 포장된 길에서 벗어나보기 참 오랜만이라 그렇다. 기분 좋게 울렁이는 길 끝에 박 시인이 쓴 ‘슬픈치’가 기다린다. 슬픈 언덕, 슬픈치. 이름이 참 슬프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리도 슬픈 이름을 지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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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비진도에 설풍치(雪風峙)라는 해안언덕이 있다. 폭설과 비바람이 심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절벽이다. 그래서 설풍치는 슬픈치로 불리기도 한다. 그 해안을 누가 다녀갔다. 길게 흘러내린 절벽치마의 올이 풀려 도도새, 여행 비둘기, 거대한 후투티, 웃는 올빼미, 큰 바다 쇠오리, 쿠바 붉은 잉꼬, 빨간 뜸부기. 깃털이 날아가 찢어진 치마에 달라붙는다. 다시 밤은 애틋해진다. 게스트 하우스의 창문을 열어놓은 채로, 달의 문을 열어놓은 채로 잠을 잔다. 흰 눈이 쏟아진다. 커튼의 올이 풀려 코끼리 새 화석의 뼈를 감싼다. 따뜻한가요? 눈사람이 끼고 있는 장갑의 올이 풀려 내 몸을 친친 감는다. 나는 달아나는 사람의 자세로 묶여 있다. 일주일 후에나 발견된 죽은 새를 안고 있다. 자세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누가 다녀갔지만 슬픈치는 여전히 슬픈치로 불린다. 해안 모퉁이에 새들이 계속 쌓인다. 사랑한 만큼 쌓인다. 침묵한 만큼 쌓인다. 게스트 하우스의 창문을 열어놓은 채로, 나는 여전히 당신의 절벽에 매달려 있다. -시 ‘슬픈치, 슬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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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영 시인과 정민주 기자가 시의 배경이 된 ‘슬픈치’를 바라보고 있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어느 날,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충무김밥 일인분을 사서 혼자 비진도를 찾았어요. 비진도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고독’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 고요함이 좋더라고요. ‘여기선 난 익명이다, 다 털고 투명해져서 돌아가야 한다’ 이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비진도와의 인연을 묻자 박 시인이 답했다.

    “섬을 돌아다니다 절벽에 서서 노루여 옆을 내려다봤는데 인간의 비겁함과 무력함이 떠올라 아찔해지더군요. 그곳이 바로 설핑이치라는 곳이에요. 눈보라가 휘날리면 바다로 쑤욱 나간 기암괴석이 은백색이 된다는 뜻을 가진 언덕인데, 설풍치(雪風峙)라고 불린답니다. 눈과 바람을 가장 많이 맞는다는 이 설풍치가 동네 사람들에게 ‘슬픈치’로 불리게 됐다네요.” 슬픈치, 이름도 참 처량하다는 말에 박 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슬픈치의 치가 ‘거미 치’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어요. 바람에 날리는 거미의 집처럼 위태로워서였을까요, 절벽이 거미의 다리처럼 길다는 뜻이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절벽을 보니 절벽이 거미의 긴 발끝에 매달린 슬픔같이 느껴졌죠.” 시에 대한 설명도 박 시인답게 심미적이다.

    길게 흘러내린 절벽치마 밑에서 파도가 일자 거친 포말이 출렁인다. 금세 소멸된다. 가엾다. 어떤 감정은 때때로 거미의 긴 발처럼 소리 없이 천천히 올 때가 있다. 파도의 발끝이 절벽을 오르기 위해 발을 내밀지만 곧 흰 포말로 부서지듯이, 모든 순간들은 깨져버리기 마련이다. 슬프게도 그때 기억들도 함께 왜곡되고 부서진다. 그래서 산산조각이라는 말에는 모든 기억들의 파편이 스며 있다.

    도도새부터 잉꼬, 뜸부기 등등. 이 시에는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 의미가 궁금하다. “슬픈치, 슬픈에는 지구에서 사라져버렸거나 보호해야 할 동물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우리가 명확하게 볼러줄 수 없는 아름답고 기묘한 시간들이 존재하듯이. 내게 온 수많은 것들을 환대해서 보내줘야 하죠. 섬에 오면 그런 느낌들이 더 선명해집니다.” 박 시인의 말이 머릿속에서 뚜렷하지 않지만 희미하지도 않게 남아 휘돈다.

    박 시인의 시를 읽으며 비진도에 관한 기억 그리고 ‘슬픈치, 슬픈’의 기억 조각들을 혼자 맞춰 본다. 그 순간들이 덩어리가 됐다가 흘러가버린다. 그곳엔 나도 있고 타인도 있고 모든 게 있고 또한 아무것도 없다. 다만 슬픔은 거미의 긴 발끝 같고 절벽 같다. 고요하고 까마득하다. 모든 기억들의 파편에서 감히 오늘을 버텨낼, 위로할 슬픔의 힘을 얻는다. 그리고는 절벽에 매달려 삶은 계속된다는 성찰의 숭고함을 배운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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