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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우산 마중- 김유진

  • 기사입력 : 2016-01-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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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저 우산 가져가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엄마가 나왔다.

    “아니! 비도 안 오는데 우산은 왜?”

    “혹시 비 올지도 몰라서.”

    은정이는 아버지가 계신 안방을 향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아버지, 저 우산 가지고 가요.”

    “조용히 해. 아버지 주무셔.”

    “아버지는 왜 아직도 주무신데?”

    “나도 모르겠다. 요즘 자꾸 힘들어하시네…”

    엄마의 근심이 가득한 얼굴을 보니 속이 상했다. 은정이는 비도 올 것 같지 않은 화창한 세상으로 우산을 들고 나선다. 발걸음이 무겁다. 요즘 은정이의 마음 한편에는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집에서 주무시고 계신 아버지에겐 절대 들키고 싶지 않다. 그 비밀은 지금 한 손에 들려 있는 우산과 관계가 있다.

    “은정아, 같이 가자!”

    돌아보니 지혜였다. 웃으며 뛰어오는 지혜를 보고 은정이 얼굴이 환해졌다.

    “은정아, 너 또 우산 가져 가냐? 너 왜 요즘 계속 우산을 들고 다녀?”

    “뭐… 그냥.”

    “우산 들고 다니는 게 얼마나 성가신 일인데… 너 참 이상하다.”

    “난 비 맞는 거 싫어. 혹시 비올까 봐 계속 가지고 다니는 거야.”

    “비 오면 비도 맞고 그러는 거지. 너 왜 그래.”

    “아유. 난 그래.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은정이는 웃으며 지혜 손을 잡았다. 그렇지만 날마다 우산을 들고 다니는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 친한 친구인 지혜에게도 숨기고 싶다. 지혜랑은 많은 것이 통하지만 젊은 부모님을 둔 지혜는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몇 주 전 아버지가 우산을 가지고 교실로 찾아온 날, 은정이는 교실에서 교문을 들어서는 아버지를 봤다. 그때 은정이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옆에 앉은 짝에게까지 들릴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은정이는 아버지가 교실이 있는 건물로 가까이 오자 바로 화장실로 뛰었다. 그리고 종이 울릴 때까지 나가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는 교실에 은정이가 없으면 반 아이들 중 누군가에게 우산을 맡기고 갈 것이다. 은정이가 교실로 들어오자 반 친구가 우산을 내밀었다.

    “은정아, 이거 좀 전에 어떤 할아버지가 너에게 주라고 놓고 가셨어. 할아버지도 함께 살아?”

    친구의 질문에 그냥 고맙단 말만 하고 얼른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입으로 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보여 그렇게 생각한 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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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정이는 늦둥이이다. 은정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마흔넷, 아빠는 쉰다섯이었다. 엄마랑 같이 다닐 때는 할머니와 손녀로 오해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니다. 은정이와 아버지가 함께 다니면 누구나 손녀와 할아버지로 봤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 딸과 아버지라고 말했다. 나중에는 그런 상황이 익숙해져 버렸다. 할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둔 것을 학교 아이들은 거의 모른다. 같은 반 아이들 중에 아는 아이는 없다. 지혜는 은정이 아버지를 알고 있지만 다른 반이다.

    작년에 지혜도 처음 은정이네 집에 놀러왔을 때 은정이 아버지를 보고 할아버지로 오해했다. 지혜에게 아버지라고 말해 줬더니 깜짝 놀랐다. 그게 다였다. 그 뒤로 은정이는 아버지에 대해 지혜와 말한 적이 거의 없다. 지혜가 아빠랑 운동하는 걸 본 뒤로 지혜의 젊은 아빠를 부러워했다. 서로 비밀 없이 털어놓는 사이지만 지혜에게도 그 마음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의 젊은 부모님을 부러워하면 할수록 은정이는 자꾸 자신의 부모님을 숨기고 싶어졌다.

    그날은, 그러니까 은정이 아버지가 교실까지 우산을 가지고 온 날은 아버지에게 급한 일이 생긴 날이었다. 비가 오면 늘 교문 앞에서 은정이를 기다리던 아버지였는데 그날은 아버지가 지방에 있는 큰집에 가야 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인데 은정이 학교 마칠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 교실까지 가져온 것이다. 아버지가 친구에게 맡기고 간 우산을 쓰고 집에 갔더니 아버지는 안 계셨다. 엄마는 은정이가 들고 있는 우산을 보자마자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도대체 왜 그러시냐! 큰집에 가야 한다고 서두르면서도 기어이 딸내미 우산은 쓰게 만드셨네!”

    은정이도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다. 엄마는 우산이 없어 비 맞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 입학한 뒤에 한 번도 비를 맞으며 뛰어간 적이 없었다. 아버지 덕분에 비 오는 날 은정이에겐 항상 우산이 있었다. 아버지가 교문 앞에서 우산을 갖고 기다렸다. 엄마와 아버지는 우산 때문에 가끔 다퉜다. 엄마는 아버지가 유난스럽다고 자주 말했다. 은정이는 아버지가 우산을 가지고 교실까지 찾아온 다음 날부터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도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갔다. 아버지에게 우산 가져간다는 말도 꼭 했다. 아버지가 교실까지 또 찾아오면 큰일이다. 날마다 우산을 챙기는 일은 많이 성가신 일이었지만 학교에서 마음 졸일 일이 없어져 안심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힘없이 신발을 벗으며 현관 왼편에 붙어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봤다.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정말 나쁜 아이야.’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이 무척 미웠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집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은정이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아픈 뒤로 엄마도 늘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관에 쭉 늘어서 있는 신발을 보니 부모님이 집에 있는 건 분명했다. 익숙한 신발들 사이로 낯선 구두가 보였다. 검은색 구두는 아버지가 양복 입을 때만 신는 구두랑 닮았지만 아버지 것보다 작았다. 손님이 오신 것 같아 은정이는 얌전히 안방 문을 열었다.

    “은정아, 어서 와. 인사드려라. 부산에 사시는 아버지 친구 분이시다.”

    은정이는 처음 보는 아버지 친구에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네가 상학이 딸이구나! 야무지게 생겼구나.”

    아버지 친구는 은정이를 보자 정말 반가워했다. 은정이와 엄마는 아버지와 친구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안방에서 나왔다.

    “엄마, 병원 갔다 왔어? 결과 나왔어? 아버지 괜찮으시대?”

    “응. 걱정 마. 심한 거 아니래.”

    감기에 걸리면 약 한 번 먹지 않고도 며칠이면 털고 일어나는 아버지였다. 그런데 이번엔 거의 한 달이 되도록 아파 은정이는 걱정을 많이 했다. 은정이 아버지는 이번에 아프면서 더 늙어버렸다. 몸은 야위었고 주름은 더 깊어졌고 머리카락은 더 희끗거렸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아버지 친구는 열차시간까지 여유가 있다고 했다. 안방에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은정이는 엄마를 도왔다.

    아버지 친구는 저녁식사를 한 뒤에 갔다. 아버지에게 은정이 데리고 부산으로 놀러오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 덕분인지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은정이는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아버지 건강 걱정을 조금 덜어 버리니 마음이 편해서인지 빨래 개는 엄마 옆에서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

    “당신, 오랜만에 친구 만나니 좋았죠?”

    “그럼 좋지. 그 친구는 워낙 어렸을 적부터 가까이 지낸 친구니까.”

    “친구에게 당신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까 좋았어요. 어렸을 때도 참외를 좋아해 별명이 참외대장이었다니….”

    “그것도 유전인가 봐. 중학교 때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참외를 좋아하셨거든.”

    은정이는 잠결에 들리는 부모님의 대화소리에 잠이 깼다. 그렇지만 그냥 누워 있었다. 그렇게 누워 있는 게 참 편하고 좋았다. 엄마는 갠 빨래를 들고 일어서다가 다시 앉으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까 친구 분 말씀으론 당신이 그 친구에게 샘을 많이 냈다면서요? 왜 그랬어요?”

    “내가?”

    “그랬대요. 당신이 예쁜 엄마를 둔 자기를 샘냈다고 아까 그러던데요.”

    “샘낸 거 아니야.”

    “그러면요?”

    “부러워서 그랬어.”

    “뭐가 부러워요?”

    “나는 그 친구에게 예쁜 엄마가 있는 걸 샘낸 게 아니야. 비 오는데 우산을 씌워 줄 사람이 있는 그 친구가 부러웠어.”

    “당신,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어도 아버지가 계셨잖아요.”

    “아버지는 줄곧 외지로 돌며 일을 다니셔서 얼굴 보기도 힘들었지. 어느 날 비가 갑자기 내려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자기 엄마랑 우산을 쓰고 지나갔어. 둘이 우산을 쓰고 꼭 붙어서 걸어가는데 참 많이 부럽더라고. 그날 이후로 울컥울컥 서러움이 올라왔어. 비 오면 우산 씌워 줄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얼마나 든든할까 하는 생각에….”

    “당신! 그래서 그렇게 은정이 우산을 챙기는 거예요?”

    “뭐… 그럴 거야. 그게 한이 되었나봐. 우리가 건강해야 은정이가 서럽지 않지. 그렇지 않아도 늦게 낳은 딸이라 사람들이 날 할아버지로 보는데…. 건강해야지. 은정이는 비 맞게 하면 안 되지. 은정이 어른 될 때까지 챙겨줘야지.”

    “은정이랑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으면 그놈의 담배부터 끊어요! 알았어요!”

    누워서 아버지 말을 들은 은정이 눈으로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잠결에 돌아눕는 척하며 몸을 돌렸다. 은정이가 돌아누워 울다가 코를 훌쩍이자,

    “우리 은정이 감기 든 거 아니야?”아버지가 은정이 이마에 손을 댔다. 아버지 손은 크고 따뜻했다.



    다음 날, 지혜는 은정이에게 같이 놀자고 졸랐다. 은정이 아버지가 많이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집에 가서 은정이랑 놀고 싶었다. 그동안 은정이랑 실컷 수다 떨며 놀고 싶은 걸 참았다. 은정이 아버지가 걱정되어 눈치만 보고 있었다. 지혜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밀린 이야기를 실컷 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둘은 부엌으로 나갔다. 지혜가 냉장고를 여니 노란 참외가 야채통에 가득 들어 있었다. 투명한 통이라 먹음직스러운 노오란 참외가 선명하게 보였다.

    “은정아! 음료수 마실래? 아이스크림 먹을래?”

    “나 참외 먹을래. 나 참외 대장이거든. 과일 중에서 참외가 제일 좋아.”

    “나 참외 잘 못 깎아. 그냥 아이스크림 먹자.”

    “내가 깎을게. 그리고 지혜야, 나 이따 집에 갈 때 참외 두 개만 줘.”

    “왜?”

    “음…. 우리 집에 참외 대장 또 있어. 참외 대장 주려고.”



    아침부터 은정이가 정신없이 서둘렀다. 지혜랑 만나기로 한 시간에 늦을 것 같았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저 우산 안 가져가요.”

    “얘가 또 뭔 소리야? 매일 아침마다 우산이 뭐 어쨌다고 소리를 질러?”

    “나 우산 안 가져가니까 혹시 비 오면 아버지에게….”

    엄마는 은정이가 진짜 맘에 안 들었다.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너 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아버지 겨우 괜찮아지셨는데 아버지에게 우산을 갖다 달라고?”

    아버지가 안방 문을 열고 나오며 웃었다.

    “은정아, 어여 학교 가라. 우산은 걱정 말고! 어제 은정이가 갖다 준 참외 먹고 아버지 다 나았다. 비 오면 아버지가 우산 갖고 마중 갈게.”

    은정이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보니 기운이 막 났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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