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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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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3) 맨발의 청춘이다

밭일하던 ‘맨발의 청춘’ 읍내 장날 병원 가던 날

  • 기사입력 : 2022-07-31 21: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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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시작된 7월 마지막 주 수요일인 27일 아침. 입사마을 경로당에선 새벽 일찍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빈달성(83), 윤기연(80) 두 어머님이 ‘아침마당’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시청하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내일은 28일이군요. 의령 5일장은 3일과 8일에 열리는데, 7월의 마지막 의령 장날이 내일입니다. 자연스럽게 장날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갑니다.

    “나이를 묵으믄 온 전신이 다 아파서 ‘병원보태기’ 아이가. 약이 떨어져서 병원 가보고 가는 김에 장도 좀 볼까 싶은데….”

    “뭐 타고 가세요?”

    “1000원택시 표가 석 장 남아있다카네. 그거 타고 갈까 우야꼬 싶다.”

    “그러지 마시고 내일은 저희가 태워드릴게요. 읍내에 저희도 볼 일 있거든요.”

    “아이고 고맙구로. 1000원도 큰돈 아이가. 표는 아꼈다가 다른 사람이 쓰면 되겠다.

    의령 입사마을 밭에서 맨발로 메꽃 잡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마을주민 윤기연씨의 발.
    의령 입사마을 밭에서 맨발로 메꽃 잡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마을주민 윤기연씨의 발.


    ◇입사마을 ‘런웨이’

    어르신들은 한 달에 한두 번 20㎞남짓 떨어진 의령읍내로 외출하시는데요. 주로 드시는 약이 떨어지거나 경로당 냉장고에 식재료가 비어질 무렵입니다. 궁류면, 유곡면 등 면 단위 지역에는 병원도, 약국도, 편의점도 없어 어르신들은 ‘큰 맘 먹고’ 읍내로 나가시는 겁니다. 오전 9시 30분, 오후 3시 30분. 버스가 단 두 대뿐인지라 시간도 넉넉지 않은데다 이것저것 무거운 짐까지 더해질 걸 생각하니 외출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닙니다.

    의령군에서도 어르신들의 불편함을 모를 리 없습니다. 농어촌버스 미운행 지역, 대중교통 소외지역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행복택시’, 일명 ‘1000원택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어르신들이 콜택시를 불러 1000원만 내면 마을에서 읍면소재지나 의령읍까지 가실 수 있는 겁니다. 깐깐한 규칙도 있습니다. 1대당 2명 이상 타야 하고, 다른 곳으로 갈 때의 초과운임은 이용자들이 내야 하는데다 마을마다 월 이용 횟수도 딱 정해져 있는 겁니다. 여기에서 입사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차가 없는 어르신들이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차 있는 사람들은 이용 안 하고 급한 일이 생기는 어르신이 생기면 쓰실 수 있게 매월 20일 이전까지는 티켓을 아끼는 전통입니다. 배려와 양보의 미덕이 있지만, 어르신들이 원하실 때 편하게 교통편을 이용 못하는 점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립니다. 오늘은 저희가 ‘0원 택시’가 되어드릴 참입니다.

    도영진 기자가 의령군 의령읍의 한 마트에서 빈달성·윤기연씨와 경로당에 필요한 식자재등을 구입하고 있다.
    도영진 기자가 의령군 의령읍의 한 마트에서 빈달성·윤기연씨와 경로당에 필요한 식자재등을 구입하고 있다.

    “어?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안 계시네? 어디 가셨지?” 장날인 28일 오전 8시 40분 입사마을에 도착한 ‘마기꾼들(마을 기록꾼들)’은 두 어르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오늘이야말로 제대로 ‘발 노릇’을 할 수 있어서입니다.

    “할머니 너무 예쁘세요.”

    오전 9시 무렵. ‘손녀딸’이 된 이아름 영상꾼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달려갑니다. ‘입사 시스터즈’ 두 분이 깔끔하고 고운 옷과 신발을 신고 가방을 메고 나타나자 정자 앞은 김승권 사진꾼의 셔터 소리로 가득 찬 ‘런웨이(run way)’로 변신합니다. 외출 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운전경력 15년의 심부름꾼이 운전대를 잡습니다. 안전, 또 안전! 천천히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이래 천~천히 가니까 들판도 구경하고 좋네, 좋아” 룸미러 너머 어르신들의 미소가 보입니다.

    윤기연·빈달성씨의 장날 패션.
    윤기연·빈달성씨의 장날 패션.


    ◇‘따로 또 같이’… ‘입사 시스터즈’의 의령 장날

    두 분의 읍내 나들이는 ‘따로 또 같이’입니다. 요즘 들어 계속 속이 갑갑하고 답답한 빈달성 어르신을 읍내 내과에 먼저 내려 드리고, 윤기연 어르신은 정형외과가 있는 읍내 병원으로 향하십니다. 10여년 전 크게 넘어지면서 오른쪽 어깨와 왼 무릎을 다치셨는데, 당시 통증이 컸던 어깨만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진료받고 왼 무릎은 바쁜 농사일에 그냥 두신 겁니다.

    윤기연씨가 의령 읍내 병원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윤기연씨가 의령 읍내 병원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무릎은 피멍만 들어서 예사로 여기고 뒀는데 인공 관절 수술해야 한다 카네. 양 무릎 다 해야 한다는데 나이 먹고 하기가 참….”

    이날 병원 1층 대기실에는 윤기연 어르신처럼 장날에 맞춰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오신 어르신 20여명으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진료를 기다리는 윤기연 어르신의 맘은 급해져만 갑니다. 앞선 대기자로 인해 한참을 기다려도 모니터에 이름이 뜨지 않습니다. 같이 나와 따로 진료받고 다시 만나 함께 장을 보고 한 차로 가야 하는데, 괜히 당신 때문에 빈달성 어르신이 한참을 기다릴까봐 초조한 겁니다. 1시간남짓 기다려 10여분의 진료가 끝납니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어르신과 함께 오전 11시 50분께 들어간 읍내 한 약국. “아이고, 내 약 좀 먼저 지어주소. 12시 버스 못 타면 다음 버스가 없는데, 우야꼬” 한 어르신이 발을 동동 구르십니다. 병원이 드물고 약국 숫자가 적고 버스편도 많지 않아 벌어지는 마음 아픈 현장, 지역 소멸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순간입니다. 제가 느낀 안타까움, 의령군도 모를 리 없겠죠?

    도 기자가 윤기연씨를 모시고 의령읍의 한 약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도 기자가 윤기연씨를 모시고 의령읍의 한 약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병원 진료를 금세 마치고 윤기연 어르신을 기다리는 동안 빈달성 어르신은 이아름 영상꾼과 함께 배차(배추)씨도 사고, 마트에 먼저 도착해 한참을 기다리신 모양입니다. 편하게 앉아 쉴 공간도 없으셨을까봐 걱정했는데, 지친 기색 하나 없으셔서 마음이 놓입니다. “밥 때 다 돼 가는데 배 고파서 우짜노”라고 하시며 장보기 전 바나나우유 하나를 먼저 건네주시는데, 여태 먹어본 바나나우유 중에 가장 달달했습니다. 어르신의 다정한 마음에 힘이 불끈! 계란 두 판, 국간장, 우유 등을 박스에 가득 담아 차에 싣습니다. 의령 구경도 식후경! 어르신들과 인근 식당에서 대구뽈찜으로 점심을 한 끼 먹습니다. 식사를 다 마칠 무렵 윤기연 어르신이 화장실 가시는 척 몰래 카운터로 가서 계산 하시려다가 저희가 먼저 계산해놓은 걸 알아버리셨습니다. 저희가 당신들 때문에 고생하는 게 아닌가 못내 미안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럴리가요. 저희의 보람인걸요.

    의령읍에서 빈달성·윤기연씨가 도 기자와 점심을 먹고 있다.
    의령읍에서 빈달성·윤기연씨가 도 기자와 점심을 먹고 있다.

    “아들한테 밥 한끼 못 사주나. 아이고 참.”

    “회사에서 밥값도 넉넉하게 챙겨줍니다. 다음에 꼭 사주세요 어머님~.”


    ◇“농사꾼 마음은 농사꾼이 안다”

    입사 시스터즈를 모시고 다시 입사마을로 돌아온 마기꾼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경로당과 마을 정자에서 폭염을 피합니다. 쉬는 동안 마을 4곳을 비추는 CCTV 모니터를 손보고, 어르신들과 ‘미우나 고우나’도 보고,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기도 합니다.

    오후 4시 무렵. 마을 진입로 버스 정류장 옆 한 텃밭에서 어르신들이 밭일을 하고 계신 걸 보고 서둘러 향합니다. 입사마을 성인 중 가장 막내인 신정오(53)씨 부부의 밭인데요. 신씨 부부와 아랫마을에서 일을 도와주시러 온 두 어르신이 밭일 삼매경입니다.

    “농사꾼 마음은 농사꾼이 알지 누가 아노.”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 밭에서 윤기연씨 등 주민들과 도 기자가 양파 모종을 심기 전에 메꽃 잡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 밭에서 윤기연씨 등 주민들과 도 기자가 양파 모종을 심기 전에 메꽃 잡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입사마을은 평산 신씨 집성촌인지라 대부분 사촌, 재종, 삼종 간인데, 도련님네 일손이 부족한 걸 지나가다 본 윤기연 어르신도 소매를 걷어 올리셨습니다. 무릎이 안 좋으신 탓에 허리를 90도 가까이 굽힌 채 일에 열중이십니다. 신정오씨가 경운기로 갈아 엎으면, 라면 퍼진 모습과 닮은 하얗고 길다란 모메삭(메꽃) 넝쿨을 모두 걷어내는 게 오늘의 일입니다. 조그마한 뿌리 하나도 남으면 금세 넝쿨이 되어 작물이 크는 걸 방해한다는군요. 저와 김승권 사진꾼, 이솔희 사진꾼도 어깨 너머로 일을 배운 뒤 금세 한아름 걷어냅니다. 말 그대로 구슬땀이 뚝뚝 떨어집니다. “남의 집 귀한 아들 이래 일 시키가 안 되는데” 하시면서도 저희 손을 ‘가뭄의 단비’처럼 여기시는 게 느껴져서 또 한번 뿌듯한 순간입니다. 두 시간남짓 지났을까요.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이마의 땀을 식혀주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갈증을 달래줍니다. 몸은 힘든데 입가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오는 걸 보니 ‘일의 숭고함’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윤기연 어르신의 흙 묻은 발이 반짝반짝 빛나보인 건 이때입니다.

    “형수요, 다칠라 신발 신고 하이소.”

    “개안타. 맨발의 청춘이다, 맨발의 청춘.”


    글= 도영진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지역소멸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영상은 유튜브 경남신문 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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