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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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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6) 귀한 인연이기를

잘못 든 길에서 만난 마을, 부부의 새로운 삶 열렸다

  • 기사입력 : 2022-08-22 08: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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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령군 안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인 궁류면 입사마을에서 각종 심부름을 하며 마을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경남신문 심부름센터’의 개업이 6주 지났습니다. 심부름꾼이자 마기꾼(마을기록꾼)을 자처한 저희 취재팀, 어느새 마을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어서 주민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심부름센터 단골손님이신 빈달성(83) 어머님은 제가 깜빡하고 두고 간 모자를 세탁해 지난주에 손에 쥐어주시는가 하면, 마을의 젊은이 이미옥(57) 어머님과 영상꾼 이아름 인턴PD는 매일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 친구가 없어 마을에 잘 나오지 않던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생 신광재(12)군 기억하시나요? 광재가 학교를 마치고 타고 들어오는 스쿨버스가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광재야!”하고 불러 마을 정자 앞에서 만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드론 삼매경에 빠지기도 하고요. ‘저희를 어려워 하시면 어쩌나’ 하던 마기꾼들의 처음 걱정과 달리 낯선 이들에게도 마음을 활짝 열어주시는 마을 주민분들이 보고싶어 빨리 입사마을로 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문득, ‘진짜 입사마을에 귀촌해 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혼자 하다가 피식 웃기도 합니다. 입사마을의 매력에 빠져 먼저 귀촌한 부부를 뵙고나서부터인데요. 귀촌에 뜻이 있는 독자분들이라면 이번 편이 더 와닿으실지도 모릅니다. 자, 한번 들어보세요.

    노무식·김민경 부부가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에 귀촌해 손수 지은 집 거실 창가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무식·김민경 부부가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에 귀촌해 손수 지은 집 거실 창가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무식,김민경 부부가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에 귀촌해 손수 지은 집 마당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노무식,김민경 부부가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에 귀촌해 손수 지은 집 마당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어? 이 길이 아닌데?”

    입사마을로 들어서면 마을 한 가운데 정자를 마주보고 있는 집 한 채가 있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텃밭을 끼고 있고, 집 문 앞에는 높이가 같은 장독대가 일렬로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는 집인데요. 이곳에는 온화한 미소가 얼굴에 만연한 노무식(71) 어르신과 생기 넘치는 표정이 보는 사람까지 활기차게 만드는 김민경(66) 어르신이 함께 살고 계십니다.

    산을 좋아하던 이 부부는 햇수로 10년 전 봄, 한우산을 처음 올라갔습니다. 낯선 산을 올랐다가 내려가는 길. 그런데 웬걸. 처음 올라갔던 그 길이 아닌 걸 산을 다 내려와서야 알게 됐습니다. 길을 잃고 당황한 부부가 마주한 마을이 바로 입사마을인데요, 길을 잘못 들어 도착한 마을에 두 사람은 한눈에 반해버렸지 뭡니까. 산자락 아래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숫자의 집들이 예쁘게 모여있고, 마을을 둘러싼 산과 들에는 싱그러운 꽃내음이 가득했고요. “공기 좋고, 하늘 예쁘고, 봄과 가을의 산도 예쁘고, 자연 그대로가 너무 좋았다”고 당시 벅차올랐던 마음을 말하는 김민경 어르신의 입가에 미소가 한참 머뭅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죠. 60대 초반, 50대 중반까지 창원과 충북 청주 등 도시에서 주로 머물렀던 두 사람의 마음 속에 ‘귀촌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피어올랐습니다. 다른 시골마을과 비교했을 때 입사마을은 개발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된 것도 이곳으로 귀촌을 마음 먹게 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쯤되면 길을 잘못 든 것이 이 부부에겐 운명이었던 셈이죠.

    노무식씨가 아내 김민경씨에게 줄 선물로 지은 집.집은 친환경소재를 이용해 주민들과 함께 지었다./김승권 기자/
    노무식씨가 아내 김민경씨에게 줄 선물로 지은 집.집은 친환경소재를 이용해 주민들과 함께 지었다./김승권 기자/

    ◇급하지 않게, 마을 주민과 함께

    그렇다고 당장 도시 생활을 접고 내려올 순 없는 노릇.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여유있는 귀촌을 하자고 마음 먹습니다. 마을을 처음 알게 된 후 두 분은 몇 년 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마을에 들러 주민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얼굴을 익혀 갔습니다. 여기서 살고 싶다는 부부의 진심도 전하고요. ‘신중한 선택과 충분한 준비’를 한 겁니다.

    “마을 주민 텃세요? 다행히 이 마을엔 그런 게 없었죠.”

    여유 있는 준비를 해온 부부가 삶의 터전을 입사마을로 옮긴 건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평산신씨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입사마을 주민들, 외지인들을 배척하기는커녕 오래된 이웃처럼 따뜻하게 품어 안았습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 지역소멸에 대한 위기감 속 귀촌이 소멸을 늦추는 대안으로 떠오르는데요,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귀농·귀촌한 인구는 51만명이 넘었습니다. 귀촌인들이 잘 정착하기 위해선 입사마을 주민분들처럼 현지인의 너그러운 마음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기계공학을 전공한 노무식 어르신은 인조대리석을 재활용하는 친환경 업체에서 중역으로 일해오셨는데요, 자신의 장기도 살리고 인체에도 무해한 집을 지어 아내에게 선물하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완벽한 솜씨는 아니지만 직접 집을 설계하고, 친환경 소재인 인조대리석 폐자재를 활용해 ‘대한민국에서 하나뿐인 집’을 지으려고 한 것이지요. 귀촌인 노무식·김민경 부부와 현지인 입사마을 주민분들의 ‘케미’는 집짓기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노무식 어르신이 ‘홀로 집짓기’ 대장정에 돌입하자 마음씨 따뜻한 마을 어르신들이 내 일처럼 도우며 집을 함께 지어나간 겁니다. 귀촌부부와 마을 주민들이 무려 7개월 간 함께 지은 대문과 담장 없는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법정스님의 시 ‘귀한 인연이기를’이 걸려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힘든 일 있어/위안을 받고 싶은/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그리고 나이기를/

    부부와 마을 사람들이 짓고 쌓아올린 건 인연이었군요.

    노무식,김민경 부부와 도영진기자와 이아름 인턴PD가 나물비빔밥 밥상 앞에서 당근 주스로 건배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노무식,김민경 부부와 도영진기자와 이아름 인턴PD가 나물비빔밥 밥상 앞에서 당근 주스로 건배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취재진이 노무식,김민경 부부 집에서 나물비빔밥을 먹고 있다./김승권 기자/
    취재진이 노무식,김민경 부부 집에서 나물비빔밥을 먹고 있다./김승권 기자/
    김민경씨가 장독 앞에서 나물비빔밥에 들어갈 고추장을 들어보이고 있다./김승권 기자/
    김민경씨가 장독 앞에서 나물비빔밥에 들어갈 고추장을 들어보이고 있다./김승권 기자/

    ◇건강한 먹거리, 건강한 마음이 만드는 건강한 귀촌생활

    귀촌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도시에서보다 더 건강하게 살자고 마음먹은 부부. 집 앞 텃밭을 ‘3無 텃밭’으로 꾸려갑니다. 농사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농부들에게 꼭 필요한 농약, 영양제, 비료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건강한 흙에서 건강한 먹거리가 나온다는 신념이 있기에, 그리고 자연이 주는 만큼만 먹어도 된다는 너그러운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마당 장독대에는 자연에서 얻은 건강한 먹거리와 유일한 조미료인 마늘만을 사용해 만든 된장, 고추장, 쌈장, 장아찌가 한 가득입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도 도시에선 누릴 수 없는 특권 중의 특권인가 봅니다. 지난 18일 오전 8시 30분. 심부름꾼이 찾은 텃밭에선 여름을 맞아 제주 한달살이를 마치고 전날 밤에 돌아온 부부가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한 달 만에 뵌 부부와 정다운 인사를 나눈 뒤 허리 높이까지 자란 풀을 함께 뽑습니다. 노무식 어르신과 손을 맞춰 절반 정도를 뽑았을 즈음이었는데요. 오늘 할 일을 다 하겠다는 심부름꾼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쉬자는 밭주인의 이상한(?) 신경전도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만 뽑읍시다. 자 어서 우리집으로 같이 밥먹으러 가요. ”

    노무식씨가 텃밭에 자란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노무식씨가 텃밭에 자란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도영진 기자가 노무식,김민경 부부의 텃밭에 자란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도영진 기자가 노무식,김민경 부부의 텃밭에 자란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제주 한달살이로 풀이 무성한 노무식,김민경 부부 텃밭에서 도영진 기자가 노무식씨의 풀 제거 작업을 돕고 있다./김승권 기자/
    제주 한달살이로 풀이 무성한 노무식,김민경 부부 텃밭에서 도영진 기자가 노무식씨의 풀 제거 작업을 돕고 있다./김승권 기자/
    풀 제거 작업을 끝낸 텃밭./김승권 기자/
    풀 제거 작업을 끝낸 텃밭./김승권 기자/

    “네? 벌써요? 저 아직 일 더 하고 싶은데요? 아직 절반이나….”

    “오늘 다 못하면 어때요. 내일 하면 되지. 내일 못하면 모레 하면 되고. 그래도 못하면 하는 수 없고.(웃음)”

    따라 들어간 집에선 나물비빔밥과 된장찌개, 고구마줄기김치로 차려진 건강한 밥상도 눈앞에 펼져집니다. 진수성찬에 감동받고, 부부의 사랑이야기에 웃음꽃 필 무렵.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창가 앞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두 사람을 향해 김승권 사진꾼이 카메라를 집어들자 노무식 어르신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아내 쪽으로 내밉니다. “이 양반이 미쳤어, 왜 이래~”하며 부끄러워하는 김민경 어르신. 이어지는 한 마디가 마기꾼들을 더 웃음짓게 만들었습니다.

    “여보, 이렇게 사니까 신혼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나물비빔밥./김승권 기자/
    나물비빔밥./김승권 기자/

    글= 도영진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지역소멸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영상은 유튜브 경남신문 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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