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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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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를 만나다

꾹꾹 눌러쓴 간절함, 문학인생 다시 쓰게 했죠

  • 기사입력 : 2022-01-11 20: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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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도 어김없이 문학이라는 토양에 새싹들이 움텄다. 202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자 류미연(58·소설), 이경주(59·시), 정두섭(56·시조), 김희숙(53·수필), 김경애(50·동화)씨다. 코로나19로 시상식이 취소돼 직접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신춘문예 당선 이후 수화기 너머로 오고 갔던 둘만의 소통으로

    끝맺을 순 없었다. 나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담론들이 더 남아 있었다. 이들의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서면으로 풀어봤다.


    처음 창작을 시작한 시기가 언제이고, 문학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류미연= 창작이란 거창한 명제를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었죠. 늘 일에 시달리면서도 ‘소설’이라는 작은 알갱이가 마음 속에 있었고, 2012년 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이상은 미루지 말자란 생각이 들어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 등록하면서 글을 쓰게 됐어요.

    △이경주=고등학교 시절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특별히 산문과 시를 가리지 않고 쓰다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주로 시를 쓰게 되었지요. 어떤 상황과 감정이든 이를 짧은 언어로 압축하고 상징하는 시가 좋았어요. 당시 박용래 시인의 시를 자주 읽으면서 우리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느끼게 되었지요. 그러면서도 시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문학을 나의 본업으로 삼기에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했고요. 졸업 후 군대에 가고, 제대 후에는 또 증권회사에 취직해 일하면서 문학과는 차츰 멀어지게 됐었죠.

    △정두섭= 그야말로 쫄딱 망해서 일단 소나기나 피하려고 취업을 했지만, 지식은 없는데 고지식해서 소위 ‘왕따’인지라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나도 죽이고 시간도 죽이려고 미루어 놓았던 숙제를 다시 꺼냈었죠.

    △김희숙= 사주 상담을 밥벌이로 하고 있어요. 상담을 오랜 시간 진행해 오면서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책을 만들고 싶어 2018년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첫 책을 출간했지요. 책을 발행해 놓고 보니 제가 쓴 글이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고 투박하여 무척 부끄러웠어요. 전국에 배포된 책을 회수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 정도로요. 글쓰기에 고민하는 저를 본 지인이 평생교육원 수필 창작반 수업을 권유했고 수필이 문학의 한 분야인지조차 모르는 문외한으로 첫걸음을 뗐죠.

    △김경애= 처음 창작한 시기라… 아마 대학 3학년 때죠. 그때는 습작품을 내야 했으니까요. 그저 좋은 작품들을 읽기만 했지 막상 쓰려니까 어찌나 막막했던지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문학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책이 좋았어요. 지금도 생각나요. 아버지가 퇴근 후 청계천 헌책방에서 전래동화전집을 햐얀 종이로 포장하고 붉은 노끈으로 묶어서 가져오신 그날이요. 그때의 감동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읽고 또 읽고. 뭐든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지금도 비오는 날에는 가끔 서울 시내 곳곳에 숨어있는 헌책방에 가요. 눅눅한 종이냄새를 찾아서요. 그렇게 책을 쫓아다니다 보니, 문학을 좋아하게 되었고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당선작은 어떻게 쓴 작품인가. 주제에 얽힌 사연이나 에피소드는.

    △류미연= 흔히 소재는 주위에서 찾는데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 직업이 혼자 계시는 노인들의 안위를 보살피는 일인데요,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고, 등은 휘고, 손가락은 변형되었지만 그런 그들의 젊은 날을 상상하곤 했었죠. 그들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아요. 힘듦에 마음을 보태며 우정을 나누며 살아왔더군요. 특히 소외되어 살아온 ‘여성’들의 강한 유전자가 지금의 여성에게로 흐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의 ‘여성주의’ 또는 ‘젠더의식’이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먼 옛날부터 이어지다 수면 위로 오른 것이란 생각이 들었죠. 할머니들의 젊은 날을 회상시키는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어요. 녹음한 노래를 들려주면 호호 웃으며 겸연쩍어 하는 그 순간의 모습은 분명 새댁의 그것이었죠. 나의, 또는 모두의 할머니, 정월희와 곽연숙의 삶의 궤적에 굴곡과 변곡이 반복하겠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이경주= 제가 작년 말에 퇴사를 했어요. 직장생활하면서 대부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는데, 퇴사를 얼마 안 남긴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에 탄 사람들의 표정과 지하철 안 풍경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깊이 와닿았지요. 매일 직장과 집을 오가는 지하철에는 말과 표정이 없어요. 출근길 승객들의 획일화된 옷차림과 행동, 하얀 지하철 조명, 빠르게 밖을 스쳐가는 어둠, 규칙적인 소리와 흔들림, 정해진 역과 시간에 기계처럼 타고 내리는 사람들. 아침 지하철 출근길 느낌이 좀 강해서 그날 이를 소재로 한 시를 썼었죠. 그런데 회사를 떠나면서 생각해 보니 지난 32년간의 직장생활 자체가 그랬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무슨 일을 하든 거의 동일한 방식과 스타일로 비슷한 목표와 가치 속에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은퇴를 하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각자의 개성과 특성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퇴색되기 시작하죠. 단순한 지하철 풍경이 아니라 지난 32년간 먹고 살기 위해서 일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느낀 감정을 정리해 보는 의미에서 다시 고쳐 써 봤어요. 그런데 제 시를 읽어 본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쓴 거 같다 하더군요. 본인이 가진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불태우고 50대를 마무리 짓는 직장인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느끼는 공허함, 허전함 같은 것으로 이해돼요.

    △정두섭= 저라는 인간이 원체 건조해서 풍경도 사람도 그닥 관심이 없어요. 달의 뒤축에서 발화점은 ‘문자향 서권기를 몽땅 싣고 가면 골목이 무지(無知)로 깜깜하겠다’는 유치찬란이고, ‘살 만큼 살았는데 살 둥 죽을 둥 가긴 간다’는 인화점이지만 장식이에요.

    △김희숙= 산청 남사예담촌을 방문했을 때 쪽물염색을 알게 됐어요. 그러나 당시에는 겨울이라 염색과정을 볼 수 없었죠.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는 계절이 쪽물들이기에 적당한 시기라고 귀띔해 주셔서 달력에 표기해두고 쪽풀이 자라는 8월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어요. 한 여름에 염색 장인을 찾아 뵙고 쪽물을 되살리기까지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들었어요. 팔이 아프도록 쪽풀 잎사귀를 으깨어 옥빛도 내어보고 물든 천들을 마당 가득 빨래줄에 걸쳐 널어도 봤죠. 장인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양한 색이 물드는 과정을 하루 꼬박 걸려 지켜봤어요. 장인이 쪽항아리에 엎드려 무명천을 내리는 손놀림은 마치 사랑하는 이를 쓰다듬는 손길처럼 무척이나 부드럽더라고요. 그래서 ‘쪽항아리’ 글에 남녀의 마음을 빗대어 묘사했죠.

    △김경애= 당선작 ‘버스정류장’은 시골 버스정류장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계신 치매 할머니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죠. 참 고운 할머니셨어요. 그러다 가끔 버스를 타기도 하셨고, 작은 시골 마을이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계셨고 기사님도 가끔 태워 주기도 하셨고 또 동네 사람들도 오며 가며 말도 걸어주시고. 세상이 아무리 삭막해도 아직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참 뭉클했어요. 그러다 어느날엔가 할머니가 안 계시더군요. 가슴이 철렁했죠. 그리고 그 자리엔 또 다른 할머니가 앉아 계셨고. 다시 집으로 오는데 그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그 모습은 훗날, 내 부모님의 모습일 수도 있고, 또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어요. 정말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현실이죠. 그래도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대하자, 그 가슴 아픈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고 한 번 써보자, 아이의 마음으로 한 번 써보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글 쓰는 일은 당선자들에게 있어 무엇인가.

    △류미연= 글은, 발끝에 힘을 잔뜩 주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여행 같은 것이기도 했지요. 글 속의 주인공과의 조우는 함께 출발할 여행 동무 같아요. 그래서 설렘으로 나서지만 때론 나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죠. 이럴 땐 투정을 부려요. “그래서 어쩌라고!”

    뜻하지 않은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지요.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을 만나는 것처럼 말이에요. 글 속에서 빠져나오면 어딘가 여행을 하다 돌아온 느낌을 받곤 해요. 그 여행은 나른한 행복감을 주고. 그래서 또 출발하지요.

    △이경주= 최근 현업을 은퇴한 50~60대 분들 중에 글쓰기나 그림을 공부하고 실제 창작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아는 후배도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하더군요. 평생을 회사 일만 해 오던 사람들이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 동안 오래 간직해 오던 꿈과 자아를 찾아 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글을 쓰는 것은 이제까지 제가 느껴왔던 갈증을 해소하고, 갈수록 희미해지는 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되살리고 지키는 길 일 거예요.

    △정두섭= 이제까지는 간택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어서 내 맛을 버리고 당신의 구미에 맞게 요리하는 일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혀를 자르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 내 맛을 버리지 않는 일이고 미각과 통점이 같은 부류와 공감하는 일일 듯해요.

    △김희숙= 아직도 수필 문학이라는 거대한 숲 언저리를 맴도는 느낌이에요. 제대로 글맛을 살리지 못하고 맞춤법조차도 잘못 사용할 때가 많죠. 다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글을 쓰기 전보다 사람과 사물, 공간, 장소 등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글 쓰는 일은 부족한 나를 조금씩 채우고 비워가는 과정 같아요.

    △김경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는 거죠. 이는 누군가의 강요도 아니고요, 딱 하나. 내가 하고 싶을 일을 하는 거. 그것뿐이에요. 글이 잘 안 써지고 힘들 때도 있어요. 그때는 잠시 쉬어요. 너무 오래 쉬면 안 되고요. 쉬었다가 다시 써요. 글을 쓰다 보면 텅 빈 내 마음도 채워져요.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 혹 쓰고 싶은 주제나 글은.

    △류미연= 꾸준히 준비하고 오래 쓰고 싶어요. 늦깎이로 출발했기 때문이죠. 글쓰기는 몸은 게으르고 머리와 손은 부지런해야 할 것 같아요. 나 같은 사람한테 딱 어울리는 일인 것 같고요. 나의 주제는 늘 사람들 속에 있어요. 바위와 계란이 있다면 나는 본능적으로 계란의 편에 서요. 벼랑을 내려다보는 이들에게 벼랑은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특히 여성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요. 그들의 이야기는 나의 중심이 되곤 하죠. 후미진 골목에 선 겨울나무 같은 그들에게 내 글이 하얀 눈처럼 쌓이고 싶어요.

    △이경주= 난해하고 어려운 언어, 시인의 마음 속에만 몰입되고 시인들끼리 통하는 언어 보다는 독자들이 편하고 쉽게 느낄 수 있는 언어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근데 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요. 평범하고 일상적인 언어를 아름답게 다듬어 내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 사랑,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모든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시에도 이제까지 시인이 접하고 겪어온 환경과 경험이 녹아 있지요. 새롭고 다양한 시의 소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낯설고 다채로운 환경과 경험을 맛보고 찾아 나설 생각이에요.

    △정두섭= 버릇없는 강아지 길들이는 동물농장이 아니라 얼룩말이 사자가 되는 동물의 왕국 같은…. 통증을 잊게 하는 마약이 아니라 곪은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집도용 칼 같은…. ‘소곤소곤 들려주는’ 아니라 ‘낱낱이 보여주는’ 글을 소위 ‘꼴리는 대로’ 쓸 생각이에요.

    △김희숙= 작가라는 길이 주는 중압감이 어색하고 무거워요. 그저 천천히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진솔하게 쓰고 싶어요. 언제나 첫 독자인 두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것이 제 목표예요. 쓰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제가 하는 사주 상담과 수필 문학을 접목시켜 사주 수필을 써보고 싶어요.

    △김경애= 여러 사람들과 공감하고 위로를 주고 받는 글을 쓰고 싶어요. 특히 마주 대하기 싫은 현실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아프고 불편한 현실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을 독자들과 함께 공감하고 나누는 글을 쓰고 싶어요. 어른이나 아이나 어떤 상황에서든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니까요. 제가 지리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요, 땅에는 항상 사연이 있어요. 이름 없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도 다 사연이 있고 역사가 있어요. 또 그곳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었고요. 그곳의 사연들을 찾아서 써보고 싶어요. 그렇게 좋은 소재들을 찾아서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쓰고 싶어요.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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