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廣原-백석
廣原
- 백석
흙꽃 이는 이른 봄의 무연한 벌을
輕便鐵道가 노새의 맘을 먹고 지나간다.
멀리 바다가 뵈이는
假停車場도 없는 벌판에서
차는 머물고
젊은 새악시 둘이 나린다.
☞ 2000년대 현재, 한국 시인들은 왜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이상도 아니고, 김소월도 아니고, 정지용도 아니고, 김수...2009-03-10 00:00:00
- 아버지의 새벽 2
- 공 영 해
늦잠도 죄스러운
워낭소리
낭랑랑
쇠죽
뜸 지우던 솔가리 불,
낮은 기침소리
오십년
저쪽의 세월
아직도 날
깨우다.
- 중에서
☞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전국 관객 200만을 넘겼다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몇 주 전에 관람했다. 이 시가 영화 ‘워낭소리’와 정확히...2009-03-03 00:00:00
- 비정성시
- 김경주
시인은 신이 놓친 포로다 그러나 포로는 늘 프로다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은 너와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졌다!라고 쓰는 것은 내가 단지 이길 수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곳에 산다
그것이 너한텐 꽤 중요한가 보다.
☞ 신은 천재다. 나는 신의 포로를 면할 수 있...2009-02-27 00:00:00
- 불모산
- 송 창 우
불모산 가는 길에는 여섯 개의 로타리와 달의 협곡에 걸린
구름다리가 있고 천 걸음마다 서 있는 일주문에는 줄무늬 흰
전갈과 눈 셋 달린 수리 까마귀가 산다. 까마귀 눈이 푸른 날엔
길이 허락되지만 까마귀 눈이 붉은 날엔 길은 꼬리를 자르고
달아난다.
- 2009-02-24 00:00:00
- 만행(卍行)
- 이지엽
여름에는 나무들이 땅으로 길을 내지만
겨울에는 하늘로 길을 내나 봅니다.
선명한 잔가지의 실핏줄들이 모조리
미세한 촉들을 하늘 우물에 담근 채
파르르 떨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삼배三拜하며 맨발로 걸어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동인지 제3호‘하늘 우물’에서
☞ ...2009-02-20 00:00:00
- 폭설 -공광규
폭설
- 공 광 규
술집과 노래방을 거친
늦은 귀갓길
나는 불경하게도
이웃집 여자가 보고 싶다
그래도 이런 나를
하느님은 사랑하시는지
내 발자국을 따라오시며
자꾸자꾸 폭설로 지워주신다
-시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에서
☞ 이렇듯 남의 허물은 덮어주고, 자기 허물은 마음속 티끌 하나도 ...2009-02-17 00:00:00
- 병어회와 깻잎
- 안도현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그 꼬순 것을 깻잎에 싸서 먹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치며 달려왔다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 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에서
☞ 하필 이 시...2009-02-13 00:00:00
- 기계의 말
- 표 성 배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어쩌다 스위치를 내리고 데모를 하는 것은 내 마음과 네 마음을 함께 전하는 것이다
이런 내 마음 잘 알기에 쌩쌩 잘 돌아가다 갑자기 멈추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달리 네 마음을 전할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데모를 하는 경우도 있어 나도 당황할 때가 있다
-시집 ...2009-02-10 00:00:00
- 귀
- 서정춘
하늘은 가끔씩 신의 음성에겐 듯 하얗게 귀를 기울이는
낮달을 두시었다
-시집 ‘귀’ (시와시학사)에서
☞ 하늘도 ‘신의 음성’을 들으려고 귀 기울이고 계신데, 하물며 사람을 받들라고 사람이 내세운 사람이 사람의 말을 도무지 듣지 않으려 드니, 도대체 이 무거운 죄업을 어쩌려는 것일까?
...2009-02-06 00:00:00
- 시가 있는 간이역
고사목을 보며
- 박두규
자꾸만 변해야 한다고
변해야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사는 일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변하는 것은 나를 살리는 궁리이고
변치 않는 것은 너를 위한 궁리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본 세상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변치 않는 것들에 ...2009-02-03 00:00:00
- 봄날에 힘쓰다
- 양곡
지난 겨울
굵고 짧게 살자던
맹세 다 잊었는가
풀잎 먼저 불끈불끈 살아난다
지리산도 끙끙
함께 힘쓰는 봄
-시집 동인지 제2호 ‘하늘이 바다를 만날 때’에서
☞ 참으로 지루하고 긴 한 해가 가고, 참혹한 겨울도 다 가고 있다. 이 겨울의 막바지에 아직 지표는 어둡고 사뭇 고요하지...2009-01-30 00:00:00
- 희망- 정희성
그 별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에서
☞ 별은 희망이요, 어둠은 절망이다. 어둠이 없으면 별은 빛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절망이 없으면 희망이라는 것도 없다. 절망하는 자기 안에서...2009-01-23 00:00:00
- 아침- 나기철
올레 끝
동백나무 아래
새 한 마리
서성이다
날자
꽃 하나
핫
떨어진다
-<작은詩앗·채송화> 동인지 제3호『하늘우물』(고요아침)에서
☞ 새 한 마리의 몸짓에도 반응하는 것이 우주다. 그 우주만물의 미묘한 움직임에 또한 가장 순연하고 민감하게 조응하는 존재가 바로 시인...2009-01-20 00:00:00
- 입신
입신 - 박정애
범도 맨손에 두들겨 잡을, 아니
번쩍 들어 저잣거리 내동댕이칠 나이
결코 명예롭지 않은 명퇴로
가재 털어 낸 횟집 때맞춘 비브리오
새들도 생병이 나는 세상이라
오리불고기 삼계탕 치킨 미친 소갈비
파리만 날리다 내부수리 신장개업
이골 난 노래방 김사장
아, 아, ...2009-01-16 00:00:00
- 동백연가(冬柏戀歌)
동백연가(冬柏戀歌)
- 윤효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다, 투욱, 투우욱, 투우우욱, 툭.
-시집『햇살방석』(시학)에서
☞ “투욱, 투우욱, 투우우욱, 툭.”은 의성어일 수도, 의태어일 수도 있다. 꽃, 혹은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일 수도 있고, 못내 반가워서 등을 치는 몸짓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꽃이면 어떻고, ...2009-01-13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