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룡폭포운(飛龍瀑布韻)- 박재삼
하늘의 소리가 이제
땅의 소리로 화해도
설악산(雪嶽山) 비룡폭포(飛龍瀑布)는
반은 아직 하늘의 것
어둘 녘 결국 밤하늘에
내맡기고 내려왔네.
☞ 조운이 금강산 ‘구룡폭포’의 맑고 깨끗한 물이 지닌 절대 순수 정신을 그려내는데 성공을 거두었다면, 박재삼은 ‘비룡폭포운(飛龍瀑布韻)’으로 설악의 하...2010-04-01 00:00:00
- /시가 있는 간이역을 읽고/‘까마귀 싸우는 골’의 작품 소개에 대해지난 3월 18일자 경남신문 ‘시가있는 간이역’란에 소개된 김연동 시조시인의 ‘까마귀 싸우는 골에’ 해설 글을 읽고 의아스런 생각이 들어 이렇게 소견을 밝히는 바이다.
김연동 시조시인은 “정몽주의 어머니가 아들이 29세 때 세상을 떠났고, 정적 이방원은 정몽주의 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에 태어났으며, 정몽주가 59...2010-03-25 00:00:00
- 까마귀 싸우는 골에- 정몽주 어머니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조히 씻을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떠난 법정 스님의 자리가 커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지러운 세상에 온몸을 태우며 마지막 토해내는 무언의 일갈(一喝), 소리 없는 법문을 남기고 떠나간 스님의 다비...2010-03-18 00:00:00
- 구룡폭포- 조운
사람이 몇 생(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劫)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江)도 바다도 말고 옥류(玉流)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과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八潭) 함께 ...2010-03-11 00:00:00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시대를 초월한 명기, 명창, 사랑의 화신, 계약 결혼의 선구자, 여류 시인 등으로 불리며 짙은 여운과 향기를 남기고 간 황진이의 시조다. 옛시조와 현대시조를 통틀어 격조 있는 이만한 사랑...2010-03-04 00:00:00
- 입- 천양희
환각거미는 입에다 제 알집을 물고 다닌다는데
시크리드 물고기는 입에다 제 새끼를 미소처럼 머금고 있다는데
나는 입으로 온갖 업을 저지르네
말이 망치가 되어 뒤통수를 칠 때 무심한
한마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 때 입은
얼마나 무서운 구멍인가
흰띠거품벌레는 입에다 울음을 삼킨다는데
황새는 입...2010-02-25 00:00:00
- 낙화유수- 함성호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 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2010-02-18 00:00:00
- 노인밥- 강희근
청락원에 가서
노인들 속에 끼여서 노인밥을 먹는다
서너 가지 반찬에 게된장국
잘 단련된 내 입에도 숟가락으로 들어와
제 밭뙈기 이랑인 양 스며드는구나
노인은 입으로부터 오는가
식탁을 사이하고 한끼 에우는 노인들
표정이 등걸에 핀 매화 같다
은퇴와 소외와 정년의 그늘
어깨에서 내려놓은...2010-02-11 00:00:00
- 도다리 쑥국- 박우담
진달래 개나리 매화꽃 온갖 꽃들이 자리 잡은 봄날에, 눈이 오다가 말다가 함박눈이 오다가 말다가, 진눈깨비 오다가 말다가 비가 오다가 말다가, 길이 얼었다가 녹았다가 또 얼었다가 녹았다가, 햇살이 보이다가 말다가 날씨가 꼭 마누라 같다
지금 곁눈질로 마누라 눈치 살피는데 숟갈에 얹혀온 쑥이 입술을 ...2010-02-04 00:00:00
- 유산流産- 정푸른
유산流産- 정푸른
검은 혓바닥의 커서가 횡으로 늘어진 자궁 안에 웅크리고 있다 전생과 후생이 맞닿아 있다 애를 밴 여자의 엉덩이와 가슴처럼 다른 방향을 향해 부푸는 불룩함이 난산을 숨기고 있다 Back Space키가 지난 시간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Delete키가 미래의 젖꼭지를 빨아 당겨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2010-01-28 00:00:00
- 열쇠- 김혜순
역광 속에 멀어지는 당신 뒷모습 열쇠구멍이네
그 구멍 속이 세상 밖이네
어두운 산 능선은 열쇠의 굴곡처럼 구불거리고
나는 그 긴 능선을 들어 당신을 열고 싶네
저 먼 곳, 안타깝고 환한 광야가
열쇠구멍 뒤에 매달려 있어서
나는 그 광야에 한 아름 백합을 꽂았는데
찰칵
우리 몸은 모두 빛의 ...2010-01-21 00:00:00
- 지하인간- 장정일
내 이름은 스물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2010-01-14 00:00:00
- 한계령- 이홍섭
사랑이라 하였지만
나 이쯤에서 사랑을 두고 가네
길은 만신창이
지난 폭우에
그 붉던 단풍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집도 절도 없이
애오라지 헐떡이는 길만이 고개를 넘네
사랑하라 하였지만
그 사랑을
여기에 두고 가네
집도 절도 없으니
나도 당신도 여기에 없고
애간장이 눌러 붙은 길만이...2010-01-07 00:00:00
- 오필리아- 진은영
오필리아- 진은영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붉은 물 위를 흘러가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해변으로 떠내려 간 심장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난다
어느 눈 먼 자의 젖은 손가락을 위해
텅 빈 강바닥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먹...2009-12-24 00:00:00
- 꽃을 심었다- 윤제림
꽃을 심었다 -윤제림
할머니를 심었다. 꼭꼭 밟아주었다. 청주 한 병을 다 부어주고 산을 내려왔다. 광탄면 용미리, 유명한 석불 근처다.
봄이면 할미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심었다’란 동사의 지휘를 받는 이 작품을 두고 수사법상의 문제 따위를 들먹인다는 것에 나는 반대다. 모 문예지 작...2009-12-17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