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필리아- 진은영
오필리아- 진은영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붉은 물 위를 흘러가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해변으로 떠내려 간 심장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난다
어느 눈 먼 자의 젖은 손가락을 위해
텅 빈 강바닥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먹...2009-12-24 00:00:00
- 꽃을 심었다- 윤제림
꽃을 심었다 -윤제림
할머니를 심었다. 꼭꼭 밟아주었다. 청주 한 병을 다 부어주고 산을 내려왔다. 광탄면 용미리, 유명한 석불 근처다.
봄이면 할미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심었다’란 동사의 지휘를 받는 이 작품을 두고 수사법상의 문제 따위를 들먹인다는 것에 나는 반대다. 모 문예지 작...2009-12-17 00:00:00
- 목- 박서영
목 - 박서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당신의 목덜미를 만졌다
당신의 얼굴은 한때 아름다운 장화를 신었고
장화는 점점 주름살이 늘어나 밑창부터 늘어지기 시작했다
경주박물관 뒤편 목 잘린 불상들 앞에서 이렇게 속삭인 적 있다
얼굴이 장화를 신고 어딘가 가버렸다고,(……중략)
심장이 목을 통과해 얼굴...2009-12-10 00:00:00
- 나비- 송찬호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 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中에서
☞ 시인은 풍년인데...2009-11-26 00:00:00
- 앞치마를 두르고- 조말선
앞치마를 두르고 시를 쓴다 앞치마를 두르고 독서를 한다 전문가들은 앞치마를 두른다 앞치마를 두른 생선장수 앞치마를 두른 생닭장수 앞치마를 두른 화가 앞치마를 두른 엄마 앞치마를 두르면 피를 튀긴다 피 튀기게 열중이다 앞치마를 두르면 함부로 버젓이 칼을 휘두른다 앞치마를 두르고 하는 짓은 앞치마가 다...2009-11-19 00:00:00
- 한국 근대5종 세계대회 사상 첫 金2009청소년선수권서 남자 개인 안지훈·남자 단체 1위한국 근대5종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 선수단에 따르면 9일(한국시간) 대만 가오슝에서 열린 2009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남자 개인전에서 안지훈(한국체대)이 6140점으로 1위, 정진화(한국체대)가 6120점으로 2위를 차지해 각각 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9-07-11 00:00:00
- 빈들에 서서-이서린
빈들에 서서
- 이서린
나는 이제 갈란다 꽁지 빠진 깃털 너덜거리는 날개짓 푸드득 빈들 한껏 날아 오를란다 벼 벤 그루터기 그 지난 상처 같은 너른 논돌고 돌아 하늘 높이 오를란다 늙은 나무 묵직한 허리께 지나 긴긴밤 지새도록 못 다한 이야기 오래된 정자나무 둥치 아래 지나서 묵묵히 빈들 건너 갈란다 2009-06-05 00:00:00
- 시루봉-김일태
시루봉
- 김일태
누가 하늘을 높이 키우고 있는지 보라
가슴을 드러내 놓은 채
장복 불모 장엄한 허리 베고 누워
하늘에 젖 물리고 있는 산이 있다
- 시집 ‘바코드속 종이달’에서
☞ 진해시 자은본동 00-0번지에서 올려다보면 시루봉 콧날이 보였다. 진해시 자은동 000-00번지 장독대에 서면 시루봉이...2009-05-22 00:00:00
- 항해일지 4- 원 은 희
항해일지 4
- 원 은 희
다음 기항지에서 부칠
편지를 쓰고 있을 그도
바다가 몹시 그리워
몸살을 앓는 나도
서로의 두려움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시조집 『마스가제호에서의 하루』에서
☞ 그때, 이국을 떠돌며 해무(海霧) 자욱한 기항지 선술집에서 사연 많은 늙은 작부와 값싼 사랑을 밤...2009-05-19 00:00:00
-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김시탁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 김시탁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沈淳大)
초등학교 마당도 못 밟아서 글 모르지만
열여섯에 시집와서 자식 일곱 낳고
한 자식 잃었지만 육남매 거뜬하게 키운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다
<중략〉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202번지
마당 넓고 잘 지은 그 집에...2009-05-12 00:00:00
- 꽃김치-황시은
꽃김치
- 황시은
진해 충무공복지관에 들어서니 그가 내게로 왔다 노란 잠바 입은 시창작반 선배가 유채밭으로 달려간다 피어나는 유채꽃대를 꺾어 입으로 가져간다 꽃김치를 먹는다 김치이-뒤에 서 있던 칼 찬 동상이 옷매무새를 슬쩍 만진다 카메라 셔터가 혀를 날름거린다
- 시집 『난 봄이면 입덧을 한...2009-05-08 00:00:00
- 진해역-이우걸
진해역
-이우걸
시트콤 소품 같은 역사 지붕 위로
누가 날려 보낸 풍선이 떠 있다
출구엔 꽃다발을 든
생도 몇 서성이고,
만나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듯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그 순백을 만나기 위해
이 나라 4월이 되면
벚꽃 빛 표를 산다.
- 시집 ‘나를 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에서
☞ 한겨...2009-04-28 00:00:00
- 바람-이부용
바람
- 이부용
우리는 바람 바람이어라
남지 유채꽃밭으로 달려가지 않는
언덕이 좋아서 언덕에 머무는 저 유채꽃의
멱살 흔들며
노란 빛깔 내놔라
생떼 부리는 바람의 마음이어라
겨울 언저리에 부르튼 아픔 꿰맨 채
바람으로 울고
바람으로 웃고
바람으로 잠들다
바람 때문에 깨어난 흔들림 없...2009-04-24 00:00:00
- 몸 5 -손영희
몸 5
- 손영희
고요로 항변하는 잡목 숲에 불을 당기면
우르르 난데없는 수맥이 깊은 동굴 구멍 숭숭 뚫린 난간 밑으로 흐르고
나는 발이 빠져 수수천년 무릉도원 도화녀 꽃 속의 나비 어르는 순진무구
의 거침없는 여자가 되어
달디단 모반의 사랑아
꿈속에서 평생이 간다.
- 제3호에서
☞ ‘무...2009-04-17 00:00:00
- 짐 (유행두)
하느님, 누구 것입니까? 발신자 없는 등짝에 에덴동산 주소가 적혀 있는데
저한테 온 게 아닌 줄 알면서 허락없이 풀어본 죄로, 너무 일찍 탈이 나서
물크러진 삶, 무거워서 들지도 못하는 生, 쓰레기통도 꽉 차서 버릴 곳 없는데,
대학병원 중환자실은 보관료도 비싼데 하느님, 누가 이 짐을 저에게 잘못 보낸
...2009-03-3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