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그릇에 관한 명상- 이상옥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냐현미경으로 비추면 실금으로 가득할 그대여매일 새 금이 죽죽 그어지고 있는 그대여펄벅이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운위할 때사람들은 더러 ‘성숙’이라는 고상한테제(These)를 투영하기도 하더라만뭐라고 하든 아직 지탱하고 있는 것이 고마워라언젠가 깨어져 쏟아질그 몸으로생각...2011-07-07 01:00:00
- 다시 그리움을 위하여- 정삼조어느 날 그대는그 어느 날 그대 생각한나를 생각지 못하리길가에 그대 생각한그 길가 지나면서도그 그리움 알지 못하리그러면 그리움에나는 다시 취하리니깨어난 아침그 햇살처럼그대는 그 자리그대로 있어라-정삼조 ‘다시 그리움을 위하여’ 전문, 시집 <그리움을 위하여> 서정시학 2011☞ 그리움만한 서정의 본류...2011-06-30 01:00:00
- 시루봉- 김일태누가 하늘을 높이 키우고 있는지 와서 보라가슴을 드러내 놓은 채장복 불모 장엄한 허리 베고 누워하늘에 젖 물리고 있는 산이 있다검푸르도록 유선도 선명한양지바르게 진해 바닷물 갈무리해 올려수천수만 년 먹이고도 팽팽하게붙어 있는 저 젖꼭지영험하다며 어느 왕녀도 비손 다녀갔다는젖배 부른 하늘이 잠시 조는 ...2011-06-23 01:00:00
- 내 고향 삼천포 바다- 최송량외사촌 누나 비단 치마폭깔아 놓고 손짓하는내 고향 삼천포 앞바다는호수보다 넓고 강보다 큰 기쁨이삼천 개 삼천 세계 삼천포 바다로 통한다.눈물 많아 출렁이는 답답한 사람아욕심 흔해 펄럭이는 바람난 사람아살 깎이는 설움을 신명나게 삭여 보렴뼈 깎이는 설움을 신명나게 삭여 보렴하늘 밑에 제일 고운 삼천포 앞...2011-06-16 01:00:00
- 시민극장이 있던 자리- 이달균시민극장 앞이었어10·18 마산항쟁 전야에도크리스마스 이브에도우린 무슨 약속처럼 그곳에서 만났지조조할인 입간판 앞에서영화처럼 바람에 깃을 세우며 서 있던 사람들포장마차의 불빛이 따스해지는 시각극장을 돌아가는 골목에서 먼저 어둠이 오고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닥터 지바고그 빛나는 사내들의 화음도 들려오...2011-06-09 01:00:00
- 주름- 최영욱주름바람이 강의 얼굴을 접었다 폈다 한다강에 담긴 산도 달도섰다 흔들렸다 한다바람 탓이다상처 탓이다강의 물결은 바람으로 일고지리산 꽃들은 신음으로 핀다-최영욱 ‘주름’ 전문 (시집 ‘평사리 봄밤’ 2009)☞ 지리산과 섬진강과 남쪽바다가 만나는 하동에 둥지를 틀고, 시를 쓰며, 차(茶)도 만들면서 박경리 선생의 ...2011-06-02 01:00:00
- 수습- 김승강소주 두 병을 놓고통닭 한 마리를 수습했다.수습한 뼈를분리수거용 비닐봉투에 넣고골목 어귀에 내놓았다.골목길 자동차 밑을 전전하던굶주린 고양이가 와서비닐봉투를 뜯고뼈를 수습했다.고양이가 뜯어놓은비닐봉투를 아내가 수습했다.쓰레기 수거차의 종소리가가까이 들렸을 때아내는 부엌에서 도마를 두드리고 있었...2011-05-26 01:00:00
- 아름다운 수작- 배한봉아름다운 수작봄비 그치자 햇살 더 환하다씀바귀 꽃잎 위에서무당벌레 한 마리 슬금슬금 수작을 건다둥글고 검은 무늬의 빨간 비단옷이 멋쟁이 신사를 믿어도 될까간짓간짓 꽃대 흔드는 저 촌색시초록 치맛자락에촉촉한 미풍 한 소절 싸안는 거 본다그때, 맺힌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던가잠시 꽃술이 떨렸던가나 태어나...2011-05-19 01:00:00
- 내 삶의 중심에- 민창홍내 삶의 중심에 내 삶의 중심에당신이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아침을 먹으면서전쟁터 같은 출근길에서당신이 있어 가벼운 발걸음 알게 하소서.땀 흘리는 노동의 시간에도누군가와 나누는 이야기에도당신이 있어 행복함을 느끼게 하소서언행의 모순에 빠지지 않는 회개로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며내 삶의 생명수를 찾...2011-05-12 01:00:00
- 낡은 신발- 지영낡은 신발 질긴 사랑닳고 닳아 편안한 바닥에 이르기까지얼마나 많은 그리움 누비고 다녔던가구멍 난 밑창에물집 터진 길들의 아픈 상처가숨어 살고 있는데돌아보면 지나온 길 보이지 않고앞으로 가야할 길 보이지 않아낡은 신발을 벗으며누군가는 맨발의 자유를 말할 테지만나는 맨발의 아픔에 운다-지영 ‘낡은 신발’ ...2011-05-06 01:00:00
- 다산 초당에서- 오인태다산 초당에서산그늘이 내리고나무들은 모두그림자를 거둬들였다.풀들도 순순히 제 색깔을어둠 속에 맡기고,어차피 길손들은서둘러 산을 내려갔다.다시 세상은 적막하여라.이따금 낮게 산죽 쓸리는 소리.언제 오셨나. 천일각 위에달님 한 분 내려다보고 계시다.- 오인태 ‘다산 초당에서’ 전문, (시집 ‘혼자 먹는 밥’, 19...2011-04-28 01:00:00
- 가문여 생각-바다서곡4 -이상원그 여름 가문여를 찾은 것은몇 마리 깨장어에 불과했다. 감숭어는부푼 배를 싸안고 옛집을 찾았지만 아무도낚시줄을 내리지 않자 돌아가버렸다. 언제나바다를 껴안은 채 서로를 줄다리던팽팽한 시간이 사라진 무료함은 울고 싶던 것이다뭍에 갇혀 나 또한 길마저 삭제된 공간의 늪에 갇혀허파라도 내발리고 싶었지만, 그...2011-04-21 01:00:00
- 향일암(向日庵) 동백꽃- 양곡말갛게 정신을 비운겨울의 끝사랑도 팔고 사는뒷골목 지나막다른 해안가적막한 삶의 관음(觀音)피를 토하는동백꽃 파도- 양곡, ‘향일암 동백꽃’ 전문(시집 ‘길을 가다가 휴대전화를 받다’, 2009)☞ ‘동백’ 하면 백련사나 거제 지심도, 여수 오동도도 괜찮고, 선운사의...2011-04-14 01:00:00
- 산인역(山仁驛)에서 - 이상규 특급열차가마지막 남은 진달래꽃빛마저 휘감아낮은 산자락을 물들이고 사라집니다.떠나고 보낼 이도 없는 경전선 산인역‘산장’으로 이름이 바뀐 역사에는어제를 모르는 사람들만밤이 이슥토록 이별노래를 부르는데한 켠으로 밀려난 간이역엔완행 열차를 기다리는 ...2011-04-07 01:00:00
- 물섬- 송창우청화백자의 바다사금파리 빛나는 물섬을 가자인동당초 푸른 언덕을 넘으면거기, 내 짝지 살던 조가비 마을종패일이 끝난 아낙들은그림자를 끌며 제포 가는 도선을 타고밀물에는 저만치 드러누운 소섬이물 먹으러 올 것도 같은물섬, 옛 가마터에 불을 지피면먼데 놀바다 위로그리운 사람 거북이를 타고 오시리- 송창우 '...2011-03-31 14:0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