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1- 강호인(시조시인)난 이제한 개의 종돌종(石鐘)쯤 되어울고 싶다세상 허허롭기가 하늘보다 깊은 날도사람 무심하여 눈물 절로 어리는 날도새벽녘 까치처럼 가야 할 은혜로운 땅에서삼생을 삼천 번쯤 윤회로 돈다 해도목숨 삼긴 날이면 살아서 푸른 세월혼신의 열정을 다해 스스로를 彫琢하는전설 속 석수장이 명품 빚는 석수장이그 아린 ...2012-08-30 01:00:00
- 처서- 박명숙(시인)귀뚜라미가 돌아왔다못갖춘마디로 운다허물 벗은 첫 소절이 물먹은 어둠을 파고든다낯익은울음을 만날 때도모노드라마로 운다가슴에 목젖을 묻고초사흘 달처럼 운다덜 여문 곡절들이 풀씨보다 쌉싸름하다가다가낯선 울음 채이면 귀청을 딸각, 끄기도 한다- 박명숙 시집 <은빛 소나기>에서☞ 계절에도 꼭짓점이 있...2012-08-23 01:00:00
- 들풀.1- 민병도(시조시인)허구헌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 민병도 시조집 <들풀>에서☞ 지금쯤 그곳에는 머리카락 풀어 헤친 듯 바람에 마구 흔들거릴 것이다. 흔들리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피 흘리며 쓰러져 놓고’ 다시 일어서는 들...2012-08-16 01:00:00
- 그리운 우물- 박옥위(시조시인)산과 산 사이의 경계는 안개가 가린다, 못 잊을 기억들이 산인 듯 에워싸도시간의 차창 밖으로 날아가는 새가 있다아득한 경계 사이에 그리운 우물 있다. 아직도 날 풍뎅이 수풀 속을 헤매는 날, 한 번씩 물 긷는 소리 첨버덩 들려온다켜켜이 자란 초록은 첩첩이 깊어 있어, 시정(市政)에 잡힌 생각이 먼지 같다 싶다가...2012-08-09 01:00:00
- 기억을 날리다 -잠자리 - 이처기(시조시인)잠자듯 가벼이 저 멀리 떠난다투명하게 헹군 자락 고요히 유영하는 훨 훠훨 손에 잡힐 듯잡히지 않는 기억이쟁여 있는 얼룩을 찾아 균형 잡은 은빛 날개잠자리 날개 망 사이로 우주가 잠겨 간다덧없이 이어져가는무상한 생애를 업고수많은 망과 망 사이 하늘하늘 떠가면서출렁이는 꿈도 꾸며 물구나무도 서 가면서기우...2012-07-26 01:00:00
- 꽃 또는 절벽- 박시교(시조시인)누군들 바라잖으리,그 삶이꽃이기를더러는 눈부시게활짝 핀감탄사기를아, 하고가슴을 때리는순간의절벽이기를- <네 사람의 노래>에서☞ 타오르는 정열의 꽃! 누군들 꽃 같은 삶을 바라지 않으랴. 더러는 눈부시게 피어나는 생을 꿈꾸지 않으리. 예술의 극치에 가 닿은 절정의 순간을 꽃인들 바라지 않겠는가. 언어...2012-07-19 01:00:00
- 근조화- 이달균꽃들이 영안실에 부동자세로 서 있다목발에 의지한 덧없고 창백한 도열언제나 벽을 등진 채 배경이 되고 만다관계를 맺지 못한 사자(死者)와의 시든 동행한 번도 저를 위해 피고 지지 못했던목 잘린 꽃들의 장례, 순장(殉葬)은 진행형이다- 이달균 시집 <장롱의 말>에서☞ 영안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2012-07-12 01:00:00
- 새 아침- 김춘랑(시조시인)망설이다놓쳐버린숱한 그세월 뒤에창가에 피어있던베고니아꽃잎 같은아니면 칠칠한 대숲울어예는 새 소리 -김춘랑 시조집 <새 꽃바침 노래>에서☞ 그러니까 물처럼 흘러 갔을게다. ‘숱한 그 세월’ 붙잡을 겨를도 없이 바람처럼 오늘을 또 놓치고 만다. 밤의 그림자가 술렁이면 곧 싱그러운 꽃술 드러내는 아침, 겨...2012-06-28 01:00:00
- 흔들리는 집- 서일옥(시조시인)한 뼘 가웃 햇살 같은할머니가 배경인열 평짜리 아파트거실은 암전이다.재개발 현수막 물고칸칸마다 일렁인다되짚어보면 땟국 절인한 생애가 삭은 공간풀꽃 같던 여린 생명파지 주워 키워낸 곳밤이면 수저를 놓는거룩한 집이었다-가람시학 <제2호>에서☞ 산은 산이 아니고 집은 집이 아닌 지 오래전, 단단한 믿음...2012-06-21 01:00:00
- 엉겅퀴- 하순희(시조시인)온 몸 가득가시 세워낭자하게 피 흘리며사는 일 까마득하여소리내어 울고 있다.아무도 기억하지 않는세상 한 편 언덕에.-하순희 시집 <별 하나를 기다리며>☞ ‘온 몸 가득 가시 세우’고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낭자하게 피 흘리며’ 지상에 뿌리 뻗어야 할 소명은 무엇인가. 빈 마음 한 줄기 담아 서쪽 하늘 ...2012-06-14 01:00:00
- 어떤 경영 1- 서벌(시조시인)어떤 경영 1목수가 밀고 있는 속살이 환한 각목어느 고전의 숲에 호젓이 서 있었나드러난 생애의 무늬 물젖는 듯 선명하네.어째 나는 자꾸 깎고 썰며 다듬는가톱밥 대패밥이 쌓아 가는 적자더미결국은 곧은 뼈 하나 버려지듯 누웠네.-서벌 시조집 <걸어 다니는 절간>에서☞ 계절의 정수리를 아프게 지나면서 나이...2012-06-07 01:00:00
- 몸에게- 김정희누구일까 낯선 그림자 먼 길을 돌아왔다초록 세상 멀리 두고 저문 숲에 드신 그대한 사람 오직 한 몸을 목숨 바쳐 섬겨왔거니.마음이 깃드는 곳 집인 줄 알았더니강물이 낙조를 안고 바다로 흘러가듯이그림자 길게 드리우고어디론지 가고 있다.- 김정희 시집 <연못에서 만난 바람>에서☞ 오쇼 라즈니쉬의 ‘몸에게 ...2012-05-31 01:00:00
- 다례(茶禮)- 김연동달빛이 살(煞)을 풀 듯여울에 쏟아진다산허리 감겨 있는애증마저 묻어버리면감감히 세속을 가는 등이 시린 사람들,선명한 혈흔 같은, 불멸의 화두 같은홍매화 흩뿌리는거룩한 제단 위에풀잎에맺힌 이슬로차를 달여 올린다- 김연동 시조집 ‘시간의 흔적’에서☞ 늦은 하루를 마치고 귀가를 서두르면, 사물들은 하나 둘 지워...2012-05-24 01:00:00
- 오월- 홍진기오월은 별과 함께 눈 뜨고 잠을 잔다때로는 포연처럼 아프리카 들소처럼모정에 발싸심 나서벌떼처럼 일어선다그러나 우리는오월을 잘 모른다산야를 밀고 나오는풀꽃들의 생존까지잔인한이름 하나로춘투라 적고 있다- 홍진기 시집 <거울>에서☞ 담장 너머 꽃들이 햇살 아래 곤한 잠을 청하는 오월의 달력에는 빨간 ...2012-05-17 01:00:00
- 책- 박기섭아버지, 라는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고 어머니, 라는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그 밖의 책들은 부록에 지나지 않았다 건성으로 읽었던가 아버지, 라는 책 새삼스레 낯선 곳의 진흙 냄새가 났고 눈길을 서둘러 떠난 발자국도 보였다 면지가 찢긴 줄은 여태껏 몰랐구나목차마저 희미해진 어머니, 라는 책 거덜난 책등...2012-05-10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