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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노란 주전자- 김은경

  • 기사입력 : 2017-01-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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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주전자- 김은경


    “할머니, 나 무서워.”

    나경이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할머니를 부릅니다. 맞다! 할머니는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지. 나경이는 그때서야 그 사실이 떠오릅니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나경이는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는 게 무척 싫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무섭고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오늘같이 비가 내리고 심지어 천둥까지 치는 날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불을 켜려고 손을 뻗으려는 순간, 나경이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습니다.

    “어, 저게 뭐지?”

    나경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걸 집어 듭니다.

    “주전자가 아직도 여기에 있네.”

    나경이는 몸통이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를 들어 올립니다. 주전자를 보자 마치 할머니가 살아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노란 주전자는 할머니가 주워온 물건입니다. 할머니는 깜빡병에 걸린 뒤로부터 물건을 자꾸 주워 왔습니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런데 노란 주전자는 보통 주전자와 다르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 주전자라나요.

    엄마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나경이는 할머니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 말을 했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멀리서 오롯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이게 보통 주전자가 아녀. 내가 공원에 앉아 있는데 그릇 파는 아저씨가 온 거 아니겄냐.”

    할머니는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합니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한참 찾았잖아요. 나가고 싶으면 나경이랑 나가든가 저랑 같이 나가자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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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얼굴을 붉히며 할머니에게 말합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전자 이야기만 계속합니다.

    “그릇 구경도 할 겸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그릇들이 싸지 않겄냐. 뭘 사면 좋을까 눈에 불을 켜고 봤더니 이 주전자가 눈에 띄더라고. 첫눈에 반해 버렸지 뭐냐.”

    할머니는 찌그러진 주전자를 마치 신기한 보물 보듯 합니다. 저럴 때 할머니는 어린 아이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딱 보면 모르겠니? 누가 이런 고물 주전자를 돈 주고 팔겠어.”

    턱을 받쳐 듣고 있던 나경이를 엄마가 나무랍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래두. 돈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다 가기를 기다렸다가 그 양반한테 공짜로 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그릇 파는 양반이 글쎄 공짜로 줄 테니 부탁이 있다는 거여.”

    “할머니 그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나경이가 의심이 많은 눈초리로 묻습니다.

    “나쁜 사람 아녀. 이 할미가 딱 보면 알지. 부탁이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 얘기를 들어 달라는 거 아니겄냐. 주전자를 공짜로 주겠다는데 까짓거 이야기 하나 못 들어줄까 싶어 귀를 쫑긋하고 들었지.”

    말을 하는 할머니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들 떠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쩡해 보입니다. 나경이는 옛날의 할머니로 돌아간 것 같아 좋습니다.

    “딱 보니 할머니들 꼬셔서 물건 팔려고 한 거네.”

    엄마가 할머니를 몰아붙입니다.

    “넌 어째 사람을 그렇게 못 믿냐.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거여.”

    할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붉으락푸르락해집니다.

    “엄마 혹시 알아. 진짜 소원 주전자일지도 모르잖아. 할머니 얘기 들어봐.”

    나경이가 엄마에게 눈을 찡긋합니다.

    “할머니 그래서?”

    “그 양반도 산에 올랐다가 어떤 노인이 주전자를 줬다는구나. 그러면서 소원 주전자니 딱 한 가지 소원만 빌고 다른 사람에게 주라면서 말이야. 별 희한한 노인도 다 있네 하면서 집에 갖다 놓았다는구나. 그러곤 한참 동안 주전자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구나.”

    말을 하는 할머니의 얼굴은 마치 날아다니는 깃털처럼 부드러워 보입니다. 나경이는 점점 할머니의 말이 진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소원을 빌었다는구나.”

    “그 아저씨 소원이 뭐였어요?”

    나경이는 할머니 옆에 바짝 달라붙어 귀를 기울입니다.

    “식구들이 매일같이 웃는 게 소원이었대.”

    “애걔걔, 그게 무슨 소원이야. 말도 안 돼. 순 엉터리야.”

    나경이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몸에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소원이 이뤄졌대요?”

    엄마가 설거지를 하다 말고 와서 묻습니다.

    “당연히 이뤄졌지. 소원 주전자니까.”

    할머니가 큰소리로 말을 하자 엄마가 피식 웃더니 말을 덧붙입니다.

    “근데 왜 그 귀한 소원 주전자를 엄마한테 줬대요?”

    “아까도 말하지 않았냐. 한 가지 소원만 이루면 다른 사람한테 줘야 한다고.”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엄마도 할머니도 나경이도 모두 한 가지 소원을 찾고 있습니다.

    “난 아파트 대출금이나 갚아주면 좋겠네.”

    “그럼 난 최신형 휴대폰.”

    “넌 휴대폰 있잖아. 하여튼 새것만 좋아해서 큰일이야.”

    엄마가 나경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정신 사나워서 생각할 수가 없네. 조용히들 해 봐라. 이 할미는 다른 거 안 바라. 딱 한 가지여. 새 옷 입고 나들이 가는 거.”

    “그거야 지금도 할 수 있잖아. 시시한 거 말고 다른 거 얘기해 봐. 할머니.”

    나경이가 재촉하자 할머니가 한참 생각하더니 입을 엽니다.

    “네 할아비랑 나들이 한 번 가는 게 소원이여.”

    할머니의 말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집니다. 할아버지는 나경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셨습니다. 엄마는 할머니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봅니다. 나경이는 그런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젖어 있는 게 보입니다.

    “딱 한 가지 소원이라는데 그럼 누구 소원 말할 거야?”

    나경이가 일부러 너스레를 떨며 묻습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잠긴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거야 엄마 소원이지. 엄마는 아파트 대출금만 갚으면 소원이 없겠다. 아니면 건물 한 채만 있으면 딱 좋을 텐데.”

    “난 최신형 휴대폰이 꼭 갖고 싶은데…….”

    “안 돼!”

    엄마가 눈을 흘기며 소리를 버럭 지릅니다. 나경이는 억울합니다. 소원을 말하라고 해서 말한 것뿐인데 말입니다.

    “참 희한한 게 반 년 동안 그릇 장사를 했는데 아무도 그 주전자를 집는 사람이 없었다는구나.”

    “당연하죠. 찌그러지고 더러운 주전자를 누가 가져가요?”

    “그 아저씨 혹시 엄마한테 고물 주전자 주면서 장난친 거 아니에요?”

    엄마가 다시 의심스런 눈초리로 묻습니다.

    “고물 주전자였으면 그렇게 주질 않았겄지.”

    “어떻게 줬는데?”

    “거시기 뭐냐. 백화점에서 물건 사면 리본인가 하는 거에 싸서 주지 않냐. 그 양반도 주전자를 상자에 넣어 리본을 묶어주지 않았겄냐. 받으면서 어찌나 가슴이 설레던지.”

    할머니는 아직도 가슴이 떨리는지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립니다.

    “근디 소원을 딱 한 가지만 말하라는데 뭐로 하나.”

    할머니는 고민에 휩싸인 얼굴입니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먼저 말합니다.

    “딱 한 가지라? 결정 났네. 돈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달라고 하자. 그래서 대출금도 갚고 건물도 사고 너 휴대폰도 사 줄게.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사탕도 실컷 사 드릴게.”

    엄마가 할머니에게 인심 쓰듯 말하자 할머니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합니다.

    “이것아, 내가 무슨 사탕을 좋아한다고 그려?”

    할머니의 말에 엄마와 나경이는 말문이 막힙니다. 할머니는 아픈 뒤로 틈만 나면 사탕을 사 달라고 졸랐기 때문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손으로 먹고 그것도 모자라 콜라도 매일 마십니다.

    “엄마가 사탕을 싫어한다고요?”

    “난 단 건 딱 질색이여. 회라면 몰라도.”

    “알았어요. 그럼 회 사 드릴게.”

    엄마가 시원스럽게 대답합니다.

    “엄마 거짓말하기 없기에요. 나 휴대폰 바꿔줘요. 꼭이요. 고물 휴대폰 갖고 있는 애는 나밖에 없어요.”

    나경이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말합니다.

    “잠깐 화장실 다녀와서…….”

    “엄마는 꼭 대답하기 싫을 때 화장실로 내빼더라.”

    그때 엄마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아빠입니다. 나경이는 얼른 전화를 받아 아빠에게 이야기를 다다다 합니다.

    “아빠, 소원 빌어야 하는데 빨리 올 거지?”

    “갑자기 무슨 소원?”

    아빠는 나경이의 뜬금없는 말에 놀란 목소리입니다.

    “할머니가 소원 주전자를 얻어왔거든. 근데 그게 딱 한 가지 소원만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엄마가 돈을 왕창 달라고 말할 거래. 그러니까 아빠 빨리 오라고.”

    “이 할미 사탕 먹고 싶으니까 애비한테 올 때 사오라고 해.”

    할머니가 입맛을 다시면서 나경이한테 말합니다.

    “아빠 들었지? 할머니가 사탕 드시고 싶대.”

    “알았어. 빨리 갈게.”

    나경이가 전화를 끊자 엄마는 벌써 소원 주전자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벌써 말하게?”

    나경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습니다.

    “왜? 아빠 올 때까지 기다리게? 그냥 하지 뭐. 아빠도 돈 생기면 좋아할 거야. 제발 우리에게 돈을 왕창 주세요.”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할머니도 나경이도 엄마의 말을 숨죽여 듣습니다. 노란 주전자에 돈이 그득그득 들어있을 거라는 생각에 나경이는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하나, 둘, 셋!

    엄마가 떨리는 손으로 주전자 뚜껑을 엽니다. 그러고는 주전자 안을 들여다봅니다.

    “뭐야, 사탕만 잔뜩 들어 있잖아.”

    “봐봐. 뭐야, 진짜잖아. 괜히 기대했네.”

    나경이가 한숨을 폭폭 내쉽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고물 주전자 얼른 갖다 버려!”

    괜히 불똥이 나경이에게 튑니다.

    “갖다 버리긴, 내가 좋아하는 사탕이 잔뜩 들어있구만.”

    할머니는 소원 주전자를 뺏어 들고는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갑니다.

    쪼오~쪽. 할머니의 사탕 빠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나경이도 사탕이 먹고 싶어집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란 주전자 뚜껑을 열어봅니다. 어? 그런데 주전자 안에 물이 들어 있습니다. 찰랑거리는 물을 보자 나경이는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주전자 안에 얼굴을 들이밀고 할머니를 부릅니다. 그랬더니 진짜 할머니가 옆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다시 한 번 할머니를 부릅니다.

    “할머니.”

    그때였습니다. 물에 비쳤던 나경이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할머니의 얼굴이 보입니다. 나경이는 깜짝 놀라 눈을 몇 번이고 깜빡거립니다. 틀림없는 할머니입니다. “할머니.”

    금세 나경이의 목소리가 젖어듭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그저 웃기만 합니다. 할머니 옆에는 머리카락이 희끗한 할아버지도 있습니다. 나경이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 옆에 있는 할머니는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입니다. 활짝 웃고 있는 할머니를 보니 나경이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걸립니다.

    “나경아, 안 자니?”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경이는 엄마에게 주전자 얘기를 할까 하다가 그만 둡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서럽게 울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잘 거예요.”

    나경이는 목소리를 큼큼, 가다듬고 대답합니다.

    가슴이 설렙니다. 노란 주전자는 소원 주전자가 맞았습니다. 비 오는 날 무서움에 떨고 있는 나경이를 위해 할머니가 찾아온 것입니다. 나경이는 할머니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소원을 이룬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나경이는 노란 주전자를 옆에 놓은 채 잠이 듭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쌔애쌔. 이제야 나경이가 꿈나라에 빠져 든 모양입니다.

    그때였습니다. 순식간에 노란 주전자에서 하얀 빛줄기 하나가 휘리릭, 하고 사라집니다.

    마치 누군가 나경이가 잠들기를 기다린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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